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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2-09 13:15
ㆍIP: 124.xxx.149
슈킹 (98회)

 "제일 골치 아팠던  고려금융 아이디의 비밀도 풀렸고 대양, 서울은 문제 없고

한양금융은 바지만 구하면 끝이네. 동인아, 그동안 미스터리들을 해결하느라

모두 고생했는데, 오늘 한잔 어때?"

 동수가 아까 그에게 야단맞은 것이 기억이나는지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형은 오늘 시간 어때요?"

 의자를 뒤로 힘껏 제치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내리면서 동인이

그에게 물었다.

 "나는 오늘 힘들겠는데. 누나가 무슨 상의할 일이 있다고 바쁘더라도 집에 들려

달라고 해서 말이야."

 엉겁결에 그는 그렇게 둘러댔다. 동수가 몇 번을 누나 집에는 다음에 가면 안

되겠냐고 회유하였지만 그의 단호함에 곧 포기했다.

 요사이는 오후 5시경이면 벌써 땅거미가 시작된다. 그들이 사무실을 나왔을 때는

6시 전인데도 주변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들과 헤어진 현우는 곧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건물은 지은 지 오래되어 사무실을 쓰다가 두고 간 사람들의 집기 등을

보관하는 허름한 작은 창고가 옥상 한켠에 있었다. 그는 창고 문을 열고 큰

쇼핑백에서 휴대폰 4개와 잠바를 꺼내 사무실로 다시 들어왔다.

 휴대폰 3개는 선불폰이고 하나는 대포폰이다. 선불폰 중 하나는 희현과 통화한

폰이고, 두 번째는 시영과, 세 번째는 수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희현과

시영에게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아군과는 평소

친밀감을 쌓아야  전투 시 상관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대포폰은 명의대여자와 통화하는 폰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휴대폰과 잠바가 들어 있는 쇼핑백을 창고에 감춰 두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예의 없는 동수가 그의 가방을 호기심으로 불시에 열어 볼

소지가 충분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4개의 휴대폰을 갖고 있는 합당한 이유를

변명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한 개 정도라면 어제 만났던 친구가 깜박 잊고 집에

두고 간 것이라 둘러댈 수도 있지만 4개씩이나 되는 숫자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번거롭지만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먼저 그녀들과 안부통화를 했다. 그리고 광고를 보고 연락 온 여자들과 간단히

일 내용을 이야기하고는 끊었다.

 잠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냈다. 이 옅은 밤색의 두꺼운 뿔테안경은 노점상에게

만 원에 구입한 것으로 도수가 없는 것이다.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 서니 마치

선생님이나 연구원처럼 학구파로 보였다. 이번에는 쇼핑백에서 가발을 꺼냈다.

 평소 그는 조금 짧은 머리로 가르마를 타고서 무스를 바르고 스프레이를 뿌려 늘

깔끔하고 단정했다. 그 머리 위에 귀를 반쯤 덮고 앞머리카락이 눈썹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뒤집어썼다. 털모자를 쓴 듯 머리가 따뜻해 좋았지만 무언가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그는 스스로 놀랐다. 거기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안경과 가발만을 쓴 것인데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넥타이를 풀고 겉옷인 반코트를 벗고서 잠바를 걸쳤다. 그는

사무실에 출근한 이후 한 번도 노타이로 있거나 정장이 아닌 적이 없었다. 이로써

변신은 완전하게 마무리 되었다.

 반코트를 쇼핑백에 담으면서 그는 자기가 비밀첩보원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거울을 향해 007영화의 주인공처럼 권총을 쏘는 시늉을 냈다.

그런 후 돈 찾을 여자와의 협상을 위해 사무실에서 씩씩하게 나왔다.

 그가 커피숍 문을 열고 창가 쪽에 앉아 있는 중년의 여자에게로 갔다. 손님들 중

혼자 있는 사람은 그 여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짐작대로 광고를

보고 연락한 여자였다.

 그녀는 집에서 급하게 나온 듯 입술에 립스틱만 바른 채 파카잠바와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파마기 가신 머리결과 옷차림이 그녀의 궁핍한 생활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다행히 여자는 덩치도 있고 흰 피부에 얼굴이 통통하여 머리

손질을 하고 외투만 잘 걸치면 부잣집 사모님처럼 보여 큰돈을 찾아도 의심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여자가 주민증과 등본을 내놓았다. 이 준비 서류는 통화하면서 미리 말했었고

그녀의 나이가 48세인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등본에는 남편과 딸 둘이 등재되어 있고 주소도 말소된 흔적이 없어 일단 신원은

정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가인지는 모르나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입신고

날짜가 10여 년이 넘었다. 이것은 주거가 안정적이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돈을 갖고

도망가거나 잠적할 확률은 적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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