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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25 15:28
ㆍIP: 118.xxx.213
슈킹 (86회)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로 사무실을 그만두고 선배가 다른 사채사무실로 옮긴

후 한번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때 준 것이 이 두번째 명함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 현우가 수산물 가공업체에 취직한 다음에 한두 번 통화만 하였으니

선배를 못 만난 지도 거의 1년이 되었다.

 그는 두 개 남은 선불폰 중 하나로 선배의 휴대폰 번호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결번이나 다른 사람이 받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여보세요. 고성수입니다."

 실망스럽게도 선배의 목소리였다.

 "선배님, 저 현우예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스스로 불러보는 본명을 들으면서 그는 기분이 야릇했다.

 "현우라고! 정말이야. 야, 오랜만이다. 이 무심한 놈아, 네가 어떻게 지내는가

늘 궁금했었는데 이제 전화하냐. 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너에게 연락할 수가

없었어. 거기에 지인들 연락처가 다 저장되어 있었거든. 이 휴대폰은 새로 장만한

건데 다행히 번호는 전에 것을 그대로 쓰고 있어. 이 번호가 내 밥줄인 건 너도 알잖아."

 선배는 한참만에 연락한 그가 무척 반가운지 그대로 두면 몇 시간이라도 통화할

것만 같았다.

 "현우야, 앞으로 이 번호로 전화하면 되냐? 조만간에 내가 연락할 테니 그때 우리

마음껏 이야기하면서 회포나 풀자꾸나. 잘 지내!"

 안도의 숨을 몰아쉬면서 그는 '오늘의 할 일' 세 번째 숫자에 적힌 '선배 소재 파악 확인'

옆에다 O.K, O.K, O.K라고 계속 써내려 갔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기의 신상정보 누출을

절반은 막은 것이다. 선배의 휴대폰 분실이라는 우연성이 그에게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

 김 이사의 말은 완전히 믿을 수 없다. 십여 명이나 되는 직원 중에 선배와 모두 연락을

안 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사실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는 미래금융과 선배와 꾸준히 연락이 되고 선배가 그의 휴대폰번호를 아는 상황이라면

이 작업을 계속하느냐 그만두느냐의 문제를 갖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했었다. 그런

것이 하루하루 지나서 오늘까지 온 것이다. 그나마 현우가 최선책을 세운 것이 작업이

끝나자마자 먼저 선배에게 연락해 자기의 소재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무 내용을 모르는 선배는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일단은 알았다고 할

것이다. 여기까지도 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지도 모른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선배는 그가 개입한 것을 자연히 알게 되고 그 이미지는 평생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선배가 끝까지 입을 다문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수사기관에서

여러 방법으로 회유과 설득을 할 것은 뻔한 일이다. 당신이 피해자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또한 선배도 사채사무실에서 일하므로 사채업자의 편을 들거나 동조할 수도 있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 아닌가! 지금까지 현우와 선배의 관계가 평범하고 정상적이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지 이 사건으로 진실을 안다면 우리 사이는 깨질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를 어떻게 보고 평가할 것인가!

 그래서 최후에는 이 작업을 포기하려고까지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과 불안이

지금 선배와의 통화로 말끔히 정리된 것이다. 이제 절반 남은 과제는 그들의 휴대폰에

저장된 현우의 휴대폰 번호를 삭제하는 일이다. 이것은 이미 그가 계획을 세워 놓았기에

그리 크게 염려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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