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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18 15:43
ㆍIP: 121.xxx.226
슈킹 (80회)

 "아 아니, 집에 좀 문제가 생겨서 그래."
 
얼떨결에 말을 돌린 그는 누나를 만나서 변명하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어수선한 마음을 돌리려 오늘의 사건 사고 중의 하나를 클릭하려는 순간

상담전화의 벨이 울렸다.

 "저...,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데 대출 자격이 어떻게 되나요?"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자의 음성이었다.

 "실례지만 지금 하시는 일을 물어봐도 될까요?"

 그 목소리에 끌려 그는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어요."

 불현듯 그의 마음에 다정하면서도 고독이 섞인 목소리의 그녀와 조금이라도

길게 통화하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의 심란한 상태에서 벚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출금액은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나요?"

 "그건 찾아뵙고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역시 다소곳한 말투였다.

 "저, 토요일도 근무하시나요. 평일은 시간내기가 힘들어서요."

 "토요일은 근무하지 않는데 어떡하지요."

 도리어 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할 수 없지요. 제가 어떻게라도 다음 주에 시간을 내서 찾아뵙도록 할게요. 어느

분을 찾아야 하지요?"

 "저는 강 실장이라고 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의 귓가에 라이락꽃 향기가 시나브로 사라져 갔다.

 그는 그녀에게 대출을 받으려면 먼저 손님의 인적사항을 알아야 거래하는

은행에서 대출 가능금액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최수혜였다. 불러준

주민번호를 보고 얼른 나이를 계산해 보니 27세였다. 일일 캘린더 메모지에 그녀의

인적사항을 적은 그는 옆에다 피아노 교사라고 썼다.

 "현수야, 너 누나 만나고 와서 울적한 것 같다고 동인이가 위로해 주고 싶대. 그리고

내일 사무실도 쉬어서 한잔 쏜다고 하니까 무조건 가는 거야. 알았지?"

 현우의 등을 툭툭 건드리며 그는 술 마신다는 기분에 벌써 흥분되어 있었다.

 현우의 주장으로 사무실 근처의 갈비 집으로 갔다. 오늘 저녁은 유난히 출출하고

사실은 술고 고팠다.

 금요일 저녁이라 식당 안의 손님들은 많았으나 가게가 넓어 복잡하지는 않았다.

둥근 양철판 가운데 연탄불이 놓여 있는 옛날 실비집을 연상시키는 추억의 식당이었다.

 "고려금융은 아이디만 풀면 되고, 대양은 입금은행만 찾으면 되고 서울은 아무

문제없고 한양금융은 경험이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이제 불과 열흘 정도밖에

안 남았으니까 우리 분발하지요."

 동인은 기분이 좋은지 자주 건배를 제의했다. 그 바람에 현우도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모두 취기가 올랐을 때 동수가 어디론가 휴대폰을 했다.

 "나야, 박 부장 오빠. 오늘 가려고 하는데 괜찮지? 강 실장하고 사무실에 같이 있는

오빠하고 셋이야. 준비 좀 해 놔."

 "어디 가려고?"

 자기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면서 현우가 물었다.

 "너도 알잖아. 며칠 전에 우리 사무실에 대출 받으러 왔던 아가씨들. 그 가게 가서

한잔 더 하려고. 동인이하고 이야기는 끝났어. 현수 너도 함께 간다고 하니까 너한테

관심 있다는 아가씨 있지. 그 아가씨 이름이 뭐더라. 하여간 너를 엄청 기다린대.

 이 자식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니까. 동인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의 물음과 동시에 윙크를 받은 동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현우는 자기를 기다린다는 아가씨의 얌전한 모습과 미소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성은

황씨로 기억나는데 술기운에 이름은 가물가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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