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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0-05 15:29
ㆍIP: 121.xxx.68
슈킹 (52회)

 동인의 상담 내용 중에 '우리는 수수료를 절대 먼저 받지 않는다'란 의미를

이제야 할 것 같았다.

 "동인아, 만약 사무실에 단속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세 번째 전화를 끊은 후 현우가 불안한 빛을 띠며 물었다.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손님에게 선수수료를 받아 돌려주지 않는다면 사기가

되겠지만 우린 한 푼도 받은 게 없잖아요. 그리고 손님통장을 대포통장으로

팔면 법에 저촉되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굳이 걸린다면 대부업 등록을 안 한

건데 그때는 엊그제 영업해서 지금 준비중이라고 하면 넘어갈 거예요. 대부업

미등록은 경고나 최악에 벌금정도에요. 게다가 우리는 대출 실적도 없어 조세

포탈하고도 무관하니 염려할 것 없어요."

 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동인의 말은 일리가 있어 그가 생각해도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닌 듯 싶었다. 규모가

큰 사채사무실은 탈세 등으로 감시의 대상이 되겠지만 이렇게 작은 사채사무실은

하루에도 개. 페업 신고 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숫자만 해도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상담 내용이 은행 직원과 짜고 대출하는 방식이라 수사기관에서

진짜로 알고 우리보다 은행에 타깃을 두고 조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형 말대로 그건 그럴 수도  있어요. 이런 일은 항상 변수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대출 손님인 척 전화를 걸어 함정 수사를 할 수도 있고 상담한 손님들의 입을

통해 퍼질 수도 있겠지요. 만약 조사가 나오면 우리가 직접 대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라인에게 대출금액의 5%를 받기로 하고 중간에서 서류만 대행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 거예요."

 "원라인을 추궁하지 않겠어?"

 그의 목소리에 바짝 긴장이 서려 있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리고 원라인의 소재지를 묻겠지요. 그러면 이 계통에서

서로의 사무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며 휴대폰으로만 연락한다고 하는

거예요. 단 그 번호는 알려줘야겠죠."

 "그 번호라니, 원라인 번호?"

 갈수록 궁금증에 찬 그의 눈이 커지며 동그랗게 되었다.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책상으로 간 동인이 서랍에서 2개의 휴대폰을 꺼내

가지고 돌아왔다. 2개의 휴대폰 뚜껑에는 같은 모양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 대포폰은 원라인 폰이고 이것은 우리가 원라인하고 연락하는 폰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제 형도 감이 오겠지만 작업하기 얼마 전부터 이 두개 폰으로 동수 형하고

자주 통화했어요. 수사기관에서 나왔을 때 원라인 번호를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원라인 폰은 꺼놓은 상태로 두는 거지요. 그리고 이 폰을 보여주며 원라인과 통화를

주고받은 폰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원라인과 연락이 안되어

답답하다며 우리도 이제 이 일을 접을 예정이라고 선수를 치는 거지요. 그쪽에서

원라인 폰에 전화를 해도 신호는 가니까 우리 말이 맞고, 정의심하여 통화내역을

조회한다 해도 미리 비슷한 내용을 주고받은 적이 있으니 할 말이 없을 거예요."

 "원라인과의 관계를 추궁하지 않을까?"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우리가 전에 사채사무실 할 때 잠깐 알았었는데

한 달 전쯤 우연히 만나 이런식으로 서류를 받아 접수하면 수수료를 준다기에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둘러대는 거예요. 그때부터 통화한 내역은 있으니까요."

 현우는 그의 완벽한 시나리오에 말문이 막혀 한동안 동인을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서서히 나타났다.

 네 번째 전화는 덤프트럭을 운전한다는 아저씨였다. 현우가 5천만원까지 가능하다고

하자 그가 당장 방문하겠다는 것을 오후에 상담이 잡혀 있어 힘들다고 했다. 내일

출근 시간에 맞추어 오겠다는 것을 겨우 오전 11시로 미뤘다. 이미 오전 10시에 카센터

사장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온 전화는 대출기간이 길다며 상대방이 신경질적으로 끊었다.

 퇴근 무렵에 울린 전화 속의 목소리는 매우 앳된 아가씨였다. 그 아가씨는 자기가

먼저 내일 오전에는 피곤하여 시간 내기가 힘들다며 오후 2시나 3시 정도에 가면 안

되겠냐고 일방적으로 물었다. 그래도 된다고 대답한 그는 참 재미있는 아가씨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이 맹랑한 아가씨가 현우의 두 번째 아군이 될줄은 그는 꿈조차

꾸지 않았었다.

 어느새 사무실 벽시계는 6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누가 먼저 퇴근을 말한적도 없는데

서로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우리가 공무원인가? 회사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책상위의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오전 10시, 11시,

오후 2시에 상담 예약이 잡혀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자신도 비지니스가 꽤 바쁜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 현우는 사무실 문을 나서면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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