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7-09 12:22

ㆍIP: 118.xxx.100

소운의 일요 放談(장마 이야기)

나이가 들면서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겨울이 예전같이 춥지 않다든지, 기억에 남은 먹거리를 맛보고는 옛 맛이 아니네,
같은 소소한 것까지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근본이 바뀐 것인지 느끼는 환경이
바뀐 것인지가 애매하기도 해서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어리던 시절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방안의 물이 얼던 것을 돌아보면, 난방 시설이 그만큼 허술했으니 추웠을 것이고, 입성이라야
제대로 된 겨울옷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추위를 제대로 피할 방법이 없었으니 당연히 추웠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한 삼한사온이 우리 겨울 날씨의 특징이라는 학설에
기후적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하다. 또, 한강을 보더라도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어 걸어서 건너
다녔는데, 지금의 한강은 얼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을 보면, 옛날이 확실히 춥기는 추웠던 모양이다.

겨울이 덜 추워지듯, 여름철 장마도 예전 같지 않게 비가 덜 내리는 것 같다.
옛 분들은 집을 짓거나 살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집터가 장마 때 물에 잠기지나 않을까 하는
것을 살피는 일이었다. 우기가 아닐 때 보면, 수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장마 때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해에 피해를 본 경험에서 나오는 집터 살피는 안목이 옛 분들에게는 있었다.
집을 사거나 세를 얻을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이 장마 때 집터가 물에 잠기는지 살피는 일이었다.
(덕소를 지나다 보면 덕소 읍을 막 지나 우측에 아파트가 서 있고,
그 언덕 정상을 못 미쳐 다리가 있다. 70년대 초인가 장마 때, 이 다리가 물에 잠겨 난간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소운이 직접 겪은 사실이다)

70년 대만 해도 장마 때가 되면 수해를 입은 수재민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전두환 대통령 때 수해가 크게 났었고, 북한의 김일성이 수해 물자를 보내겠다고 제안을 해 왔다.
당연히 남한이 거절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해 본 정치적 공세를 뜻밖에도 한국에서 받겠다고
역공세로 나왔다. 나중 얘기지만 당시 북에서 수해 물자를 마련하느라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옥양목이라는 옷감과, 보내온 쌀은 남한 사람이 쓰고 입을 물건이 아니었기에, 쌀은 떡을 해 먹거나
가공식품 원료로 썼고, 옷감은 아무도 달라는 사람이 없어 뭣에 썼는지 궁금하다.
(쌀을 실어 온 차가 돌아갈 때 우리가 보내 준 답례품은 당 간부들에게 나눠 줬다는 얘기도 있다)

장마 때가 되면, 물구경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리 난간 바로 밑까지 가득 찬 흙탕물이 곧 다리를 쓸고 내려 갈듯 무섭게 흘렀고 다리 위에는
물구경 꾼들이 가득히 모였다. 젊은이들은 긴 장대 끝에 갈고리를 달아 떠내려오는 물건들을 건져
올리기에 바빴다. 지붕이 통째로 떠내려오기도 하고 소나 돼지가 떠내려오기도 해서 잘하면 한 건
건지는 때가 홍수 때 이기도 했고 구경하는 우리는 신이 나서 연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당하는 분들은 비극이지만, 구경 중에 으뜸이 물구경 불구경이라는 옛말이 엄연히 있었다.

옛 통치자들은 치산치수를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 물을 다스리려 했다.
한양을 흐르는 청계천 바닥을 준설하고자 인력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우기 때 산에서 쓸려 온 토사로 인해 개천의 바닥이 높아져 홍수 때 만 되면 물이 범람해 수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댐도 많이 건설하고 한 탓에 수해를 입는 경우도 거의 없고 그런 탓인지
집을 지을 때 수해를 염두에 두는 경우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세상 이치가 참 묘해서 홍수의 피해는 적어졌지만 반대로 가뭄의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다.
식목일 즈음에 심은 나무는 웬만하면 죽지 않고 잘 크게 마련인데 근래에는 그렇지도 않다.
작년에 개나리를 꺽어다 삽목 했지만 비가 오지 않아 한그루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더니 올해도
회양목 묘목을 심은 뒤 물을 열심히 줘야 했다. 봄에 비가 오지 않아 그대로 두었더라면 다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텃밭에 심은 채소도 일부러 물을 주지 않으면 다 말라죽게 생긴 게 요즘 기후이다.

올해의 장마는 장마라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감질나게 비가 내린다
원래 장마는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가 계속 내리는데, 시늉만 장마로 끝날까 걱정이다.
우산이 없어 형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내리던 비를 바라보던 시절이 오히려 그립기도 하다.
이러다 장마 때 하늘을 쳐다보며 비를 기다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해 봤다.
날씨가 습해 지나기가 정말 어렵다. 시원한 빗줄기라도 쏟아졌으면 하늘을 쳐다봤다.
뿌옇게 흐린 하늘이 무겁게 대지를 누르고 있다. 명색이 장마인데 이래서야!

천둥, 소운/박목철

까맣게 타는 농민의 마음
시늉만 하다 만 단비 멋쩍어
어험! 헛기침하듯
우르르 꽝!
천둥소리

백낙은 2017-07-10 17:23	소운 작가님. 옛날을 추억하게 하는 장마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렸던 시절의 겨울은 정말 추웠지요. 그 추위를 가족 사랑으로 녹이며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눈 비비며 밖으로 나오면 아버님이 쇠죽 가마 앞에 신발을 따뜻하게 데펴 주셨고 쇠죽 솥 안에 양동이에다가 따뜻한 세숫물 준비해 두셨답니다. 난방 시설도 허술하고, 입성도 변변찮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지냈지요.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환경이 다가온다면 어떨까요? 동이에서만 자란 콩나물처럼 요람 속에서만 자라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나 저나 우리 세대는 그 모진 환경을 이겨낸 승리자라 여깁니다. 그리고 특히 이곳 동해안에는 비가 거의 안왔습니다. 산에도 말라 죽는 나무가 많습니다. 올해 농사는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까맣게 타는 농민의 마음 잘 헤아려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이석희 2017-07-10 19:14	소운님! 확실히 늙기는 늙었지 싶습니다. 나이야 익히 아는 바이지만 더욱 더 실감나는 게 있으니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신이 나요. 잘 모르는 이야기는 이내 심드렁해지고 얼쩍지근 하게 알만한 이야기만 있으면 송곳 끝처럼 들고 일어납니다. 삼한사온, 한강 둔치 스케이트장, 한강을 황소에 짐 싣고 건넌 이야기는 멋진 실화였다고 합니다. 집에서도 마당 가에서 세수하고 방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달라 붙었고요, 안방 웃목에 놓인 물그릇이 얼었고, 중학생 선배들이 왼편 가슴 위호주머니에 꽂힌 만년필 잉크가 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충주에 온 게 2002년이었는데 한 2년 후 8월 31일 밤에 내린 비로 남한강이 범람할 상황이었어요. 그때 둔치에 심었던 양파가 썩어 냄새가 진동하는 바람에 한동안 운동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학교가 휴교를 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다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신이 나서 떠들었습니다. 재미 있었습니다.

김종덕 2017-07-10 21:07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모든 것은 변해야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는 어떻게 변했는 지 변한 만큼 사람이 살기 어렵게 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잘살기 위하여 변화하는데 기후는 사람을 살리려 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냉대당하던 자연이 인간에게 싸움을 거는 것 같은 형상입니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이야기겠지요. 사람도 악에 달하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읍니까? 이것은 자연에도 적용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는 혜택을 자연의 필요에 옮겨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 잘 살 수 있게요.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7-07-16 11:17	《Re》백낙은 님 , 너무 가물어 글을 올렸더니 이젠 물 폭탄입니다. 글쟁이가 글 쓰기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날씨도 예측이 불가능하니 함부로 글도 못 쓰겠습니다. 오늘은 주일이라 무척 바쁘시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모습 오래 보게 되기를 기대 합니다. 위원장님,

박목철 2017-07-16 11:20	《Re》이석희 님 , 시대를 함께한 추억의 공유도 좋은 인연이랍니다. 요즘 사람들 해봐야 알아 듣지도 못할 사연들이 우리 세대에 많지요, 그때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아련한 그리움도 있지요, 추억의 공감은 행복입니다. 이석희 작가님께 감사 드립니다.

박목철 2017-07-16 11:22	《Re》김종덕 님 , 작가님의 말씀이 맞는 듯 싶습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너무 무리한건 사실이지요, 화도 낼 만 합니다. 톡톡히 댓가를 치루는 것 같아요, 더운 장마철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 하십시요,

소운의 일요 放談(치과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