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으로 잡을 수 있다던 코로나 19가 알파 변이에 이어 델타 변이까지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맹렬히 협공하는 여파로 7월 들어 확진자가 하루 1천 명이 넘는 4차 유행의 조짐을 보여 세간이 모두 걱정이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이 전염병에 발목 잡혀 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작년 초에 시작된 전염병이 이제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다행히 코로나 사태에도 작년 4월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주춤하여 작은아들 부부가 무사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근래에는 전염병의 폭발적 확산으로 큰아들의 결혼식을 가늠하기 어려운 가운데 5월 말에는 우리 부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1차 접종을 마쳤고, 큰아들도 얀센 백신으로 6월 중순에 접종을 마쳤다. 작은아들 부부는 자신의 의지대로 접종을 미루거나 못하고 있지만, 가족 구성원 5명 중 50% 이상이 1차라도 접종을 마쳤으니 가족들 모임이 다소 안심되고, 엊그제는 올해 여름휴가를 강원도 고성의 해변으로 잘 다녀왔다. 옛날에는 내가 행선지계획을 하고 먹거리계획을 잡아 가족회의로 확정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다 큰 몇 년 전부터는 저희끼리 여행코스도 잡고 가족 식사계획을 잡을 뿐만 아니라 오락이나 게임도 준비하고 진행을 해서 나는 아무런 불만 없이 아이들의 의사에 맞춰 휴가를 즐기고 있다. 올해도 게임과 식사 준비를 해서 티브이 방송에서 보았던 우대갈비도 작은아들 부부가 숯불로 맛있게 구워 술상을 준비하여서 나는 식탁에 앉아서 음주와 함께 즐기기만 하였다. 어떻게 보면 뒷방 노인네가 된 것 같기도 하여 어깨가 다소 처지는데, 한편으론 아이들이 무척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내가 도움을 주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의지하는 일들이 많아진 것 같다.

요즘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우리 삶 가까이 있고, 첨단 전자기기가 여기저기 불쑥불쑥 등장하여 오프라인 세대인 노인들은 따라가기 버겁다. 백신 접종만 해도 그렇다. 지난 6월 초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주민센터에 갔더니 복지 창구의 공무원들이 땀을 삐질삐질 흘릴 만큼 애를 쓰고 계셨다. 고령층 백신 접종 예약을 시작한 첫날인데, 고령층의 예약이다 보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노인들이 찾아와서 예약해달라고 민원이 한창이지만 정작 주민센터 공무원들은 해줄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하는 방법을 안내만 하고 있었는데, 어떤 노인은 “텔레비전에서는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예약하라고 방송해서 찾아왔는데, 처리를 왜 안 해 주냐?”며 언성을 높이고 정부와 공무원을 질타하는데, 정작 주민센터 복지 전문공무원은 상급 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없었다는 것이다.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와 항의하고 있으니 무척 난감하다고 한다. 그래도 최대한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듬기는 하였지만 어찌어찌하여 스마트폰으로 예약을 하고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백신 접종 전자증명을 받지 못하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주민센터에서 확인 스티커를 발부받고, 그 스티커를 주민등록증에 붙여서 확인용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다행히 나에겐 질병관리청에 접속하여 전자증명을 다운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코로나 백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첨단 전자기기가 우리 사회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어서 나 같은 오프라인 세대는 종종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사이트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도 제각각이라서 오랜만에 이용하려면 아이디와 패스워드 찾기도 힘들고 때로는 전자인증서도 필요하다. 따로 아이디와 패스워드 관리는 꼭 해야만 한다. 전자 민원으로 전입신고, 문서발급이나 전자결제도 그렇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나 일반 음식점과 카페도 무인주문시스템이 버티고 있는 매장이 무척 많아져서 컴퓨터에 친숙하지 못한 보통의 노인들은 난감한 노릇이다. 나는 집에서나 밖에서도 그런 난관에 부딪힐 때는 큰아들에게 종종 도움을 청한다. “이게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니?” 하면 “아빠! 그건 제가 보기에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안되면 다시 연락하세요.” 한다. 그러면 웬만한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큰 문제도 아닌데, 작은 어떤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서 막히는 것들이 허다하다. 경제, 사회, 정치나 스포츠의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큰아들은 곧바로 검색하여 나에게 자세히 설명해준다. 문제가 해결되면 아들에게 고마움의 표현을 한다. “아들에게 배웁니다. 하하하” 그러면 아들은 “어렸을 때는 대부분을 아빠한테 배웠잖아요. 하하” 하고 응답한다.

‘아들에게 배웁니다.’라는 문구는 2011년 6월에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포스코 기업 PR 광고에서 차마고도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 입혀졌다. 물건을 잔뜩 실은 노새를 끌고 차마고도를 넘는 부자의 이야기는 ‘길이 험하고 짐이 무거워 가파른 산길에 멈춰 서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노새를 아버지는 억지로 끌고 채찍질을 하지만 노새는 요지부동으로 거부하며 울어댄다. 그러다 해가 지고 부자는 준비한 음식 재료를 꺼내 요리해서 식사하는데, 아들이 음식을 나누어 들고 노새에게 먹이며 험난한 길에 정을 나눈다. 이튿날 아침에 노새들은 아들의 말에 힘들어도 고분고분 길을 간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버지는 머리를 극적이며 무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영상에 짧은 노래가 같이 흐른다.’ “멀고 먼 길 험난한 길♬ 힘들 거야 노새들도♫ 아들에게 배웁니다.♪ 랄라랄라 라라라라♬ 랄라랄라~ 라라라라~*♪ 같이 가자~ 같이 가자♬” 그러면서 마지막 내레이션이 흐른다. “차마고도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들에게 배웁니다.’라는 멘트를 종종 하는데, 이번 여름휴가에서도 두 아들에게 몇 번 했다. 사실 아들에게 배우고 지적받고 한 것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아내가 상가의 작은 사업을 접고 취업을 하려고 했던 20여 년 전쯤인가? 여기저기 알아보던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않던 그 시절에 집에서 가까운 어느 상점에 구인광고 쪽지가 붙어있더란다. 곧바로 들어가서 사장님하고 인터뷰했는데,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묻더란다. 갑자기 출근하면 정리할 것도 있어서 내일은 곤란하고 모레부터 출근하겠다고 약속하고 들뜬 마음으로 집에 와서 기쁜 소식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기로 한 매장의 사장님이 전화해서 받으니 사정이 있어서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출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아쉽고 실망한 마음으로 곱씹다가 며칠 지나서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큰아들은 머지않아 더 좋은 다른 일자리가 생길 거라고 위안을 했는데, 작은아들은 “엄마! 사장님이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지금 당장부터 근무할 수 있다고 해야지. 개인적인 일은 천천히 해도 되잖아!”하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면서 ‘면접을 보고 출근을 하는 사이가 길면 길수록 엄마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게 보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날 확률이 높고 따라서 채용을 번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고 구인광고도 없는 6십여 곳의 뷔페식당에 일일이 전화해서 주말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문의해서 채용되었다는 것이다. 고3이라 주말에만 일을 할 수 있고 뷔페식당도 평일에는 한가하고 주말에 손님이 몰려서 서로 근로시간과 노동력이 부합하여 뷔페식당을 공략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아들의 논리에 수긍하고 아내의 잘못을 시인했다. ‘아들에게 배웁니다.’ 다행히 며칠 뒤에 전 사업과 연관성 있고 아내의 취향에 맞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10년 이상 장기간 근무를 하였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큰아들은 대학 2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는데, 그 시기에 내 사업이 몰락하여 경제 형편이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큰아들은 군을 전역하고 바로 복학하지 않고 남은 2년간의 학비를 벌기 위하여 1년 6개월 정도를 보습학원의 강사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두 명의 학생을 개인과외를 하며 학비를 차곡차곡 저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큰아들은 가을 어느 날부터 근처 호프집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자고 있으면 새벽에 들어와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학원으로 출근하는 피곤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한 달을 일해도 그 당시는 한 달에 3, 4십여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과외를 한 명 더하면 일주일에 이틀만 각 2시간씩 가르쳐도 그 정도 수입을 올릴 수 있는데, 굳이 고된 야간 호프집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밤에 눈을 맞으며 아내와 함께 걸어서 집에서 20여 분 거리의 큰아들이 근무하는 호프집에 갔다. 185cm의 껑충한 키에 앞치마를 두르고 서빙을 하던 아들이 갑자기 방문한 우리를 보고 어쩐 일이시냐고 물으며 자리를 안내해 줬다. 나는 “우리 아들 일하는 모습도 보고 호프도 한잔 팔아주려고 들렸지.”하고 자리를 잡고 호프집 사장님과 인사를 나눈 후 치킨과 호프를 시켰다. 흰 눈 펑펑 내리는 겨울밤에 시원한 맥주는 참으로 목 넘김도 좋았고 무척 시원했다. 그러면서 평소 의문이던 굳이 호프집 밤일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내 물음에 “아빠! 지금은 제가 잘나가서 경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살다가 어려움이 닥치고 돈을 벌 수 없을 때가 올 수도 있는데, 그래도 가족은 먹여 살려야지요. 그럴 때 지금 이 경험이 저를 이런 일이나 다른 힘든 일이라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내성을 길러주는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철부지 아빠 엄마가 ‘아들에게 배웁니다.’ 결국, 큰아들은 계획한 대로 6개월을 채우고 호프집 근무를 끝냈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컴퓨터 시스템으로 무장한 첨단기기들에 둘러싸여 관리당하고 활용하기도 하며 프로그램화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 점차 빠른 속도로 진화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맞지만 오프라인 세대인 노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고 소외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젊은이들의 도움이 더욱 절실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어느덧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서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국제 정서에서 국가도 언제까지나 노인들만을 위해서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그냥 ‘아들에게 배웁니다.’라는 고마움의 표현을 더 많이 하며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쩍 커진 아이들을 바라보면 대견하고 든든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