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원

올해도 하루에 하루를 보태 한 달과 두 달을 지나 마지막 열두 번째 달의 저물녘에 다다르고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와 신년 인사를 통신기기를 이용해서 하다가 문득 예전의 연하장과 크리스마스 카드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카드를 구매해서 지인, 특히 어른들께 손글씨로 작성한 인사를 드리려고 생각했다. 매년 이때쯤에는 집배원들이 연하장 배달로 몸살을 앓았었는데, 요즘은 그냥 카드 사용 명세서가 주요 우편물인 것 같다. 그런데, 일단 카드 구매가 문제가 되었다. 예전에는 12월이면 문구점마다 각양각색의 카드가 문 앞 진열대를 가득 채웠었는데, 사라진 캐럴만큼이나 카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참 세상 많이 바뀌었다. 그저 스마트폰으로 이모티콘을 보내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아마도 카드는 교보 같은 대형 매장에서나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렵게 아내를 통해 꽃 그림이 그려져 있고 봉투가 원색으로 예쁜 카드 열 장을 구매하였다.

연하장은 15세기 독일에서 아기 예수의 모습과 신년을 축하하는 카드를 동판으로 인쇄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신년에 상대방을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 못할 경우 아랫사람을 시켜 문안의 서찰을 보내는 풍속으로 조선 시대의 세함(歲銜)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중류 이상 가정의 부인들은 문밖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여 초사흘이 지나면서 자기 집의 여종을 곱게 차려 입혀 일가친척이나 인사드려야 할 어른들을 찾아뵙도록 하였는데, 이를 문안비(文安婢)라고 하였다 한다. 이러한 풍습은 구한말 이후 우편제도가 생겨나면서 점차 사라지고 오늘날 같은 연하전보 및 연하우편이 등장하였단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직접 도안하고 물감으로 그린 카드를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했었는데, 그 연하장도 진화를 거듭하여 펼치면 입체가 되는 제품부터 캐럴 음악이 나오는 제품으로 연말을 점령하였었는데, 어느 순간 첨단 통신기술에 밀려 자취를 거의 감췄다.

열 장을 앞에 펼쳐 놓고 겉봉을 적다 보니 주소를 확실히 아는 지인도 채 열이 안 되는 여덟 분이 다였다. 그 옛날에는 몇십장을 보내는 정도의 주소록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거의 집이나 핸드폰 전화번호, 나아가 e-mail 주소가 연락처 대부분이 되었다. 그것도 참 많이도 바뀐 풍속도라 할 수 있다. 결국 여덟 장의 카드를 나름 정성껏 써서 봉하고 함박눈이 내리는 지난주에 집 근처 우체국(아마도 별정 우체국)에 부치러 갔다. 그런데, 잊고 사는 게 또 하나가 있었다. ‘가만있자. 우표는 얼마짜리를 붙여야 하나?’ 우체국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이상한 사람 보는 눈으로 “4백 2십 원짜리 붙이면 됩니다.”한다. 그래서 열 장을 달라고 하니까 그나마 찾는 사람이 드문 듯 책상 서랍에서 앨범에 갈무리된 무궁화 꽃이 그려진 우표를 50여 장 중에 열 장을 떼어서 내준다.

연하장만큼이나 우표도 찾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하기는 대량으로 청첩장을 보낼라치면 우체국에서 스탬프로 찍어서 보내거나 후불로 처리하고 그 외에는 등기나 특급우편 정도를 창구에서 돈을 내고 영수증을 받는 게 나 또한 전부였다. 우표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우편 요금을 냈다는 표시로 우편물에 붙이는 증표’라고 컴퓨터 화면은 말한다. 내친김에 더 검색한 결과로 최초의 우표는 1840년 5월 1일 영국에서 발행된 1페니 빅토리아 여왕 초상 우표(별칭 ‘페니 블랙’)라고 하며, 우리나라는 1884년 고종 21년 우편제도 설치를 왕의 칙명으로 우정총국을 4월 22일 창설하고 11월 18일에 일본에서 인쇄해서 발행한 문위우표 5종이 최초라고 하는데, 그 당시의 화폐 단위인 문(文)으로 표시되어 문위우표라고 했단다. 현재는 한국조폐공사에서 인쇄하여 발행한다. 우표의 종류는 우편요금납부의 증표로서 언제나 발매되는 일반우표와 특수우표로 나뉘는데, 특수 우표에는 어떤 일을 기념하는 기념우표, 자선 또는 공공사업 기금용인 첨가우표, 어떤 목적을 위해 취지를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발행하는 특별우표가 있단다. 최근의 특수우표는 올해 9월에 등록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나오는 남북 정상회담 기념우표가 나와 있단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우표 모으기가 중요한 취미 중의 하나여서 나도 우리나라 우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우표를 모으고 취미가 같은 친구들이랑 우표를 교환하기도 했었다. 그 우표첩은 결혼하고 몇 번 이사하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내게서 자취를 감췄다. 하긴 88올림픽 기념 주택복권도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모아서 88올림픽 기념주화 등을 받았는데, 그 앨범도 기념품도 모을 때의 정성은 어디 가고 함부로 간직하다 없어졌다. 그 우표 모으기는 아일랜드의 ‘바크’라는 인지세 수납관이 1774년 자기 나라에서 발행된 수입인지를 모았고, 프랑스의 ‘베첼’은 1840년 5월 6일 이후 우표를 수집했다 하나 최초의 수집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우표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영국령 기니아 1센트 우표, 일명 ‘1센트 마젠타’라고 하는데, 1856년에 기니아에서 만든 세상의 단 한 장의 우표라고 한다. 이 우표는 2014년 6월 소더비 경매에서 950만 달러(약 97억 3천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이 우표는 ‘두 장만 있는 것을 모두 소유한 사람이 그중 하나를 경매에 올리고서는 나머지 한 장을 경매장에서 찢어버려 세상에서 단 한 장만 남게 된 이 우표의 가격이 예상가의 두 배를 훨씬 넘는 가격으로 낙찰되었다.’는 도시전설의 모델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성룡의 영화 중 하나의 오프닝 씬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아봤더니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나 전설이 많았는데, 그건 아마도 우표의 역사가 제법 오래됐기 때문일 거로 생각해 본다. 어쨌든 420원의 운반비를 들인 내 카드를 받아본 지인들은 아주 오래전에 잊혔던 그 12월을 추억하며 감사의 인사를 보내왔다. 물론 문명의 이기 스마트폰을 이용한 정보통신의 수단으로 왔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겨울의 온정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럿이 있다는 사실을 연하장을 보내면서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그중에 또 하나는 크리스마스실인데, 대한결핵협회가 1953년 창립되면서 본격적으로 결핵 관계 사업을 위해 범국민적으로 성금 모음의 수단으로 발행한 크리스마스실이 올해 2018년은 내년 1월까지 42억 원의 목표로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도 듣기 어렵고 연말연시 분위기도 느낄 수 없어 점점 각박해지는 며칠 안 남은 올해에는 우표를 붙인 엽서, 크리스마스실, 사랑의 열매, 자선냄비 등에 관심을 모으고 온정을 나눠 아직도 사람 사는 세상이 따스함을 이 겨울에 보여줬으면 하는 오늘이다.

다시금 추억의 정을 전해준 그 품삯 420원에 감사를 표하고, 아직 2장 남은 카드를 다시 꺼내 보면서 내년 12월에는 적어도 이십 장의 카드는 부칠 수 있도록 주소록의 공간을 채우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맺는 오늘이다.

2018년 12월 20일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