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에 대한 단상

지난주 근무를 쉬는 날에 서울 서부운전면허시험장으로 운전면허 갱신을 하러 갔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살아가다 한 통의 통지서를 받아 펼쳐보니 어느새 운전면허 적성검사 기간이 도래한 것이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의료보험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받고 1년 내의 결과표 원본을 제출하면 적성 신체검사로 대체한다고 하여 작년에 받은 결과표를 파일에서 찾고, 여권 사진을 준비하여 시험장 종합민원실에 접수하고 “언제 면허증을 찾을 수 있어요?”하고 여쭤보니 10여 분이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10분도 지루하여 화장실을 다녀오며 봤더니 내 이름이 수령자 안내전광판에 떴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결국 5분도 안 돼서 새 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간편해지고 시간도 짧아져서 금방 면허시험장을 나서서 귀가할 수 있었다. 참 빨라서 좋다.

자동차 운전면허는 사업용 차량 여부, 탑승 제한 인원수에 따라 1종과 2종으로 구분된다. 1종은 대형 면허, 보통 면허, 소형 면허, 특수 면허 등이 있으며, 비사업용 차량뿐만 아니라 사업용 차량도 운전할 수 있다. 2종은 보통 면허, 소형 면허, 원동기 장치 자전거 면허 등이 있으며 비사업용 차량만 운전할 수 있다.

내가 지닌 면허는 1종 보통으로 더듬어 보니 19990년도에 취득한 것 같다. 그 당시 직장을 다니며 휴일에는 동료들과 낚시를 즐기던 때였다. 그때 동생 둘이 직원 수 명을 거느리고 건축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던 터라 업무용 차량과 운전 전문기사가 있었다. 그래서 휴일이면 차량 사용료 및 기사 수고비를 지급하고 동생들의 차량으로 동료들과 종종 낚시하러 다녔는데,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동생들 사업에 약간은 지장이 있었나 보다. 두 동생이 이구동성으로 “형님! 차량은 휴일에 항상 빌려 드릴 테니까 제발 운전면허 따서 직접 운전해서 낚시 다니세요.” 하는 것이다. ‘요놈들 봐라? 내가 자주 사업장에 들려 저녁에 술도 사고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웃으며 못 들은 척했으나 그런 볼멘소리를 몇 번 듣다 보니 조금 미안해서 “면허를 따고 싶어도 저녁에 퇴근하는 시간이 불규칙하고 자주 술을 마시니 학원에 다닐 여건이 안돼서 못 한다.”라고 핑계를 댔더니 “학원 수강 안 하고도 얼마든지 면허를 딸 수 있어요.” 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핑계를 댈 수도 없어 “그러면 학원 수강 안 하고 면허시험 볼 수 있게 해 줘라.”하고 꼬리를 내렸다.

얼마 후 막내아우가 어떤 사내와 우리 회사로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그때 우리 회사는 구로 전철역 옆에 있었는데, 바로 나지막한 담을 이웃하고 운전면허 학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더러는 담배를 피우면서 학원 수강생들의 운전 연습을 구경하며 실수를 하면 손가락질하며 박장대소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 내 막내아우한테 “형님. 형님.” 하며 따르는 동네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이 옆 학원의 조교이며, 이 청년은 그 둘 중 하나이며 조교들의 조장이란다.

막내아우는 나한테 10만 원을 달래서 그 사내에게 주면서 “우리 형님 책임지고 한 달 내로 운전면허 시험 볼 수 있게 가르쳐 드려라.”하고 ‘휭’ 하니 먼저 가버렸다. 그 조교는 나에게 파란 딱지 열 장을 쥐여 주며 “큰 형님. 이 티켓은 한 장에 30분씩 운전 연습용 차를 탈 수 있는데 그냥 시간에 구애받지 마시고 탈 수 있는 만큼 맘껏 타세요.” 하는 것이다. 그 10만 원에서 5만 원은 티켓 값이고 5만 원은 수고비인 셈이다. 그래서 꼼짝없이 운전 연습을 시작했다.

그 후 네댓 번 정도 연습하였을 때, 미리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하겠기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아침에 집을 나서 경기도 안산시의 저 골짜기에 있는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필기는 조교가 준 문제집을 거의 3분의 1 정도 공부한지라 접수 후 일주일 동안 나머지를 ‘열심히 공부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접수를 했더니 담당 창구 직원이 도장을 ‘꽝’ 찍어 주면서 “오후 2시에 시험 보세요.” 하는 것이다. 아뿔싸! 원래 내 계획은 오늘 접수하고 일주일 후에 시험을 보려던 것이었는데, 오전 10시 이전에 접수하니 오후에 시험을 봐야 한단다. 이미 원서에 도장이 찍혀서 그냥 가도 다시 접수하고 시험을 봐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할 수 없이 회사에 재차 양해를 구하고 구내식당에 자리를 잡아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그리고 오후에 시험을 봤더니 1종 보통 면허 합격선에 2점 모자란 78점. 결국 필기 한 번 떨어지고, 실기도 두 번 떨어지고 4전 5기로 운전면허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참으로 힘들게 취득한 내 면허증이다.

도로주행은 포니2로 했는데, 그다음 해 포니 자동차를 몰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자리한 울산으로 6개월 정도 출장을 갔었다. 아시다시피 울산은 현대의 도시라서 거리의 승용차는 모두 고급 현대자동차 제품이거나 아니면 오토바이가 도로를 달렸다. 현대그룹에서 직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그룹의 승용차를 거의 강매 수준으로 떠맡겼기 때문에 대부분 간부는 고급 승용차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단다. 물론 자 의사에 의해 구매한 직원들도 있겠지만. 그런데, 그 고급 차들을 대부분 사모님이 운전하고 다녔던 게 특별히 기억난다. 그러니까 주중에 직원들은 기름이 덜 드는 오토바이로 출퇴근하고, 승용차는 부인들이 쇼핑이나 모임에 몰고 다녔다. 물론 주말에는 남편들이 운전했겠지만. 그런데, 후에 매스컴에 발표된 사건에는 울산에 그 많은 운전자 사모님들이 뒷돈을 주고 대충대충 면허증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 도시보다 잔잔한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 되었다고 한다. 이런! 나는 필기 포함 4전 5기로 어렵게 취득한 면허를 사모님들은 뒷돈으로 쉽게 땄다니.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이 끝나면 바로 학원에 등록시켜 면허를 취득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성인은 주민등록증과 더불어 두 개의 증명서는 필수라고 강조하며 면허를 취득하게 하였는데, 요즘은 거기에 더하여 여권이 필요해서 기본 3개의 증명서가 필요한 것 같다. 덕분에 큰아들은 입대 전 2년여를 내가 내준 스틱 조작용 2인승 스쿠프 승용차로 대학교 등하교를 한 경력으로 정보통신학과를 2년 이수했음에도 통신병이 아닌 운전병으로 복무하였다고 가끔은 볼멘소리를 한다.

아내의 면허 취득도 사연이 많은 장롱면허다. 그때가 경기도 안양시의 평촌 아파트단지에서 살 때였다. 어느 시기였는지 단지 내 주부들에게 운전면허 취득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인근 운전면허 학원에서 저렴한 수강료를 내세운 영업에 의한 바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아내도 면허는 있어야 하고 기본으로 운전은 할 수 있어야만 장거리 여행 시 운전을 나와 교대로 할 수 있으니 참 바람직하다. 흔쾌히 수강료를 쥐여주며 독려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은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실기 연습을 하기 전에 일어났다. 하루는 아내가 “모래부터 차를 탄다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무서워요. 한 번 시간 내서 기본적인 것만이라도 가르쳐 줘요.” 하는 것이다. 그렇겠지. 남자인 나도 처음 운전대를 잡기 전에 까닭 모를 두려움에 밤잠을 못 이룬 적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다음날 오후 일찍 퇴근해서 아내를 데리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직 퇴근 시간이 아니어서 주차장에는 차량이 듬성듬성 몇 대가 주차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내를 운전석에 앉히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곤 친절하게 1단 기어 2단 기어 후진 등 세세히 설명을 해 주고 직접 조작을 시켰다. 10여 분 가르쳐 줬더니 제법 잘 숙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움켜쥐고 시동을 걸어 줬다. 혹시 잘못되면 사이드브레이크를 잽싸게 잡아당겨 세우려 했다. 차는 ‘포르릉’ 소리를 내며 출발 준비를 하였다. “이제 1단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서 가속페달을 살짝 밟아 봐”하고 말했더니 아내는 조심스럽게 가속페달을 밟았는데, 차가 스르륵 앞으로 나가자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아이고! 어떡해?” 하면서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는 것이었다. ‘그럴 줄 알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잡고 준비했었지.’ 하며 힘껏 잡아당겼는데, 글쎄 내 통제를 무시하고 차는 앞으로 계속 돌진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스피드 마크를 그리며.... 참 환장하겠다. 사이드브레이크로 충분히 정지시킬 수 있다고 짐작한 게 내 결정적 오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파노라마처럼 다가오는 눈앞의 전경에 한 손은 핸들을 다른 한 손은 아내의 발을 떼어내려고 애를 썼는데, 결국 어느 주민의 엘란트라 뒤 범퍼를 들이박고 방향을 약간 틀어 주차장 벽까지 들이박고서야 가까스로 정지했다. “괜찮아. 운전하다 보면 이런 사고는 얼마든지 날 수 있으니 미리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아.”라고 하며 놀란 아내를 다독이고 내려서 보니 다행히 주차장 기둥에 충돌은 피했지만, 엘란트라 뒤 범퍼가 망가지고 새하얀 컬러의 내 ‘뉴 캐피탈’ 승용차 앞부분이 왕창 망가져 버렸다.

결국 보험처리도 어려워 지인의 자동차 수리점에서 파손된 내 차와 범퍼만 파손된 엘란트라를 현금으로 수리했는데, 약 20여 년 전인 90년대 중반에 2백만 원가량의 수리비를 지출했다. 그래도 아내는 씩씩하게 학원을 나가고 결국 2급 운전면허를 손에 쥐게 되었는데, 다만 실제 운전은 여태까지 절대 거부하고 있다. 그러니 20여 년 무사고라서 정부에서 그냥 1급으로 전환해 준다고 통지서가 왔는데, 역시 손사래 치며 거부하고 있다. 결국, 아내의 면허증은 운전에 필요한 증명서가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확인하는 제2의 증명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 넷은 제2의 증명서인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내년부터 적성검사 및 갱신을 65세~74세는 5년 주기로 받아야 하고 75세 이상은 3년 주기로 단축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 10년간 70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2만 9천여 건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도 늘어 간다고 하는데, 2013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약 9천 명 반납자 가운데 65세 이상 반납자가 7 천여 명이라고 한다.

이 글을 마치면서 곰곰이 따져보니 나의 다음 적성검사는 10년 후인 2028년으로 적혀 있다. 그렇다면 내 나이는 73세가 되는 것이다. 그때 다시 면허를 갱신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몇 번 더 면허를 갱신할 수 있을까?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다. 혹시 이것이 나의 마지막으로 받은 갱신 면허증이 아닐는지. 올해의 여름밤은 무더위와 함께 깊어만 가고 있다.

2018년 6월 중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