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도, 화장실 물소리도, 머리 말리는 드라이기 소리도 멈추었다, 아침의 분주함은 아내와 아들이 출근하고 나니 조용하다. 창가에 스며든 햇살은 따스함이 가득 흐르며 바깥으로 유혹하지만, 창가에 진열된 몇 개의 난초와 이름 모를 화초의 푸르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묵이 흐른다. 어느 한곳에도 생명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모든 움직임이 죽었다. 지루하기보다 그저 우울함이 고개를 쳐든다. 벽에 걸린 새 달력은 아직 빳빳함과 인쇄냄새가 날아가지도 않았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책 몇 권과 카펫트위에 깔려진 담요 그리고 간식으로 놓여진 과일 몇 조각과 티브이 리모컨 등이 내가 보고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도구들이다.
벌써 몇 일째인가, 일주일 하고도 며칠이 흘렀을까? 왼쪽 다리에 통 깁스를 하고 거실에 자리를 잡은 지가, 날짜 개념이 가물거린다. 퇴원할 때만해도 병실에서의 답답함이 한순간에 해소되며 모든 게 기대 이상이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의 자유로움은 내가 평상시 꿈꾸는 일들이 아니었던가 잠도 실컷 자고, 책도 마음대로 보고, 티브이도 시청도 남의 눈치 안 받으며 맘껏 시청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불편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앉음은 금세 회의로 돌아왔다.
어느 누구한테도 수면 방해를 받지 않으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면 되고, 하지만 자는 것도 시도 때도 없이 자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밤에 찾아오는 불면증은 정말 감당키 힘들었다. 불이 꺼진 어두운밤 막상 자려고 누우면 오만가지 생각으로 밤은 깊어가지만 뜬눈으로 뒤척이며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티브이 시청도 드라마며 뉴스를 즐기는 것도 어느 정도이고 계속 비슷한 내용에 싫증나고, 몇 권의 책을 보는 것도 낙서를 끌쩍이는 것도 어느 한 순간 질려버렸다.
그러다보니 시간시간 흐르는 것들이 거미줄처럼 설키며 지렁이 같이 느린 시간이 눈에서 꿈틀된다. 정말 하는 일 없이 불편한 몸으로 시간 보내기란 어디 한곳 좀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이제는 어린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듯이 긴 시간을 가만 앉아서 있다가 아내와 아들이 일마치고 들어오면 반기며 수고했다. 말하며 추위에 빨개진 귀와 손을 어루만지며 침묵을 깨트리며 수다를 떠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로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이렇게 새해 액땜도 했으니 병원신세 지는 일은 없겠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몸의 상처보다 마음에서 오는 상처가 더 아팠고 또한 가장의 한 사람으로 활동을 못하니 집안 분위기가 활기를 잃으며 웃음조차 잃어갔다. 다시 한 번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며 가족들의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열심히 할 수 있는 일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일상에서 그 동안 큰 행복임을 알았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강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