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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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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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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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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7-04-16 2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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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내 동생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에 눈발이 휘날리던 날, 막내 남동생이 세상을 떴다는 비보를 접했다. 형제들이 모두 서둘러 떠나고 혼자만 고속버스로 떠나기로 했다. 장례를 치루고 올 요량으로 가방을 챙기고 약국에서 멀미약을 샀다. 남편은 내대신 손주를 돌봐야하므로 동행할 수가 없다. 미안해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하는 버스는 우등버스 처럼 넉넉했다. 마음은 무겁고 침울하기만 한데, 차창 밖은 다른 날 보다 더 여유롭고 태평스럽게 보인다. 드디어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을 했다. 눈을 감은체 창가에 머리를 기대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같이 뇌리를 스친다.
여섯 살 아래인 남동생은 계집애처럼 예뻤다. 사내 녀석이 피부도 곱고 희어서 동네 어른들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자라서는 공부도 잘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동네에 몰려다니는 얼치기 아이들과 어울리더니 학교도 빠지는 날이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종아리를 맞기도 하였다. 그 친구들은 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으며, 나쁜 짓을 일삼고 몰려다니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동생을 시켜 집에 있는 돈을 가져오라고 꼬드겼으나 요행이 내가 알게 되어 모면하게 되었던 일도 있었다. 부모님의 걱정은 말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철이 드는가 안심을 했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였다. 그 무렵 위로 사남매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에 이런 사연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연로한 부모님의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 어느 날 취직을 하겠다고 올라왔다. 우리들은 대학을 포기하고 부모님을 위해 취직을 하겠다는 말에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이미 나쁜 친구들 속에서 돈맛을 알게 된 녀석은 공부는 뒷전이고 기술자가 되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일념만 가득 했었다. 어쩔 수 없이 지인이 경영하던 FRP (유리섬유)공장에 취직을 시켜주었다. 유리섬유가 인체에 매우 해롭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어찌 되었든 그 기술로 인해 대기업 조선회사로 스카웃되어 울산에서 삼십년 직장생활을 하였다. 특기자 양성으로 일본연수도 일 년씩 다녀와 승진도 하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아파트도 장만하고 남매를 잘 키워 좋은 대학을 나왔다. 지금은 남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들 다니고 있다. 착하기는 금메달감인 동생은 하지 말아야 할 보증을 서주고 타격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일로 평생 아내에게 꼼짝도 못하고 쥐여 살았다. 궁여지책으로 주식에 손을 댔다가 빚까지 지고는 결국 형제들에게 신호를 보내게 되었다. 깜짝 놀란 형제들이 십시일반 추렴해서 급한 불을 꺼 주었으나 녹쓴 덩어리가 너무 커서 결국 파산 신청을 하고 말았다.
일 년 뒤 정년퇴임을 하였다. 다행이 그 기술로 도급을 받아, 하청 주는 일을 시작하여 사년동안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잠깐 쉬는 동안이라며 찾아왔다. 얼굴에 혈색이 좋지 않아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몸이 고단해서 쉬는 거라며 쉬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왔을 때는 많이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몸이 약해져서 시골로 내려가 살고 싶다고 했다. 큰형님이 땅을 좀 주면 좋겠다고 해서 형제들이 협의하여 시골 땅을 넘겨받았다. 형제간에 양도세가 면제 되는 대상이서 다행이었다. 농사도 건강해야 할 수 있으니 병원에 가보도록 당부를 했다. 봄이 되면 인터넷에서 귀농공부를 한 뒤에 무슨 농사를 할지 연구해 보겠다며 꿈에 부풀어 내려갔다.
한 달 뒤 울먹이는 올케의 전화를 받았다. 흉부 늑골에 혹이 발견되어 제거 수술을 하였다고 했다. 결과가 막 나왔는데 암이라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귀농에 꿈을 꾸며 희망이 부풀던 동생이 그것도 말기 암이라니 기가 막혔다. 형제들도 모두 놀라 서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걱정을 하였다. 며칠 후 항암중이라며 전화가 왔다. 1,2차 항암이 끝나고 집에서 3차 항암을 기다리며 영양 관리중이라고 했다. 항암 결과가 좋아서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간간히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혼자 말에 남편은 당장 다녀오라고 금일봉을 만들어 주었다. 멀미를 심하게 하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은 이십년도 넘었다. 큰 결심을 하고 KTX를 예약한 뒤 떠날 차비를 했다.
혼자 여행은 처음이었다. 쾌속열차라 멀리 창밖의 경치를 보노라니 어릴 때 아버지 앞에서 천자문을 배우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여식이라고 매를 들지 않으시고 동생에게만 가끔씩 종아리를 대셨다. 해서 동생에게 미안했던 생각이 났다. 동생 결혼식 때는 살기가 팍팍해서 좀 더 도와주지 못했던 일, 직장 생활에 쫓겨 맛난 밥 한번 해주지 못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목에 걸려 물도 넘어가지 않는다. 울산역에 도착하니 올케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히 점심을 끝내고 동생 내외와 태화강 십리대숲으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울창한 대숲은 바람이 불때마다 상수리가 쏠리며‘솨아’하는 소리가 아주 매력 있는 운치를 더했다. 굵은 대나무가 울창한 터널을 굽이굽이 지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발 원인은 유리섬유에 대한 의심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동생과 처음으로 오붓한 시간을 갖는 기막힌 추억의 날 이었다.
숲의 끝자락 강위로 멋진 정자가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여 거닐고 정자에 앉아 준비해간 과일을 먹으며 뜻 깊은 담소를 했다. 말기 암 환자를 상담했던 사례들을 동생마음을 헤아려가며 들려주었다. 임종준비를 잘하며 투병하던 환자이야기며, 끝까지 부인하며 가족을 힘들게 하던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죽음은 누구에게나 삶과 함께 동반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죽음의 세계는, 무작정 외롭게 달려온 현실과 달리,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곳이라 외롭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사별 가족들에게 누나가 교육했던 내용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들려주었다. 아직은 좋아질 것이란 기대로 기운을 내는 동생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에 힘이 들었다. 여담처럼 흘리면서 깨닫기를 바랄 뿐, 무력감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올케는 동생에게‘빨리 털고 일어나 돈 벌어야지’한다. 순간 그 말이 가슴속에 콕 박혀버렸다. 빨리 기운차리라고 용기를 주는 말은 아니라 생각 해지만 한편, 말실수려니 간과했다. 모처럼 영양섭취를 해주고 싶어 장어요리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장어구이를 맛있게 먹어주어 기분이 매우 흡족했다. 상행 길에 올케는 울산역으로 데려다 주며 또‘빨리 일어나 돈 벌어야 한다’는 말을 거듭하지 않는가? 기가 막혀 대꾸할 말을 잊었다. 동생이 경제적인 실수를 했기로 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돈에 환장이 됐기로 이럴 수는 없다.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동생 월급날이면 올라와 봉급은 물론, 주머니까지 뒤져간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렇듯, 하수 의 모습에 그동안 냉대를 받은 동생의 처지가 짐작되어 가슴이 미어졌다.‘못난 동생 때문에 고생이 많다’는 말만 남기고 열차에 올랐다.
겨울이 되면서 무서운 바람이 휘몰아 쳤다. 간간히 전화로 상태를 알아보곤 했는데‘한 번 더 보 싶다’는 모기만한 목소리가 가뿐 숨소리 너머로 전화선을 타고 들려 왔다. 형제들이 모두 두 번째 만나보기위해 달려갔다. 망막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불편했지만 창작시집을 들고 내려갔다. 동생은 너무 쇄진해서 눈뜰 기력조차 없었다.겨우 실눈을 뜨고 말없이 바라볼 뿐 이었다. 어릴 적 공유했던 시절의 시를 몇 편 낭송해 주었다. 들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느낌이 있느냐고 물었다. 마른입술에 잔뜩 힘을 주더니, 가슴을 가리키며‘짜안해’겨우 한마디 하였다. 그리고는 힘이 들었던지 이내 잠이 들었다. 일주일후, 곧 일을 치룰 것 같다는 문자가 왔다. 떠나기 전에 모든 잘못을 용서한다고 귀에 대고 말해주면 좋겠다, 자녀들이 돌아가며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도록 하라는 당부의 문자를 보냈다. 다녀 온지 열흘 만에 결국, 아내와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울산역은 외곽에 있어서 시내까지는 버스를 갈아 타아며 시간이 많이 소요 되었었다. 이번에는 단번에 가기위해 고속 버스를 이용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영안실에 도착하니 형제와 조카들이 멀리서 달려와 모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장례전날 입관 예절을 치루고 나온 올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급히 위층 응급실로 입원을 시키고 진정제와 영양제를 투여했다. 마지막까지 옆에서 지켜주며 힘들게 간병을 하느라고 마음을 졸였으니 오죽했으랴, 끝까지 아내 도리를 하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누워있는 올케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비록 모질게 대했어도 부부는 부부였다. 불쌍한 동생은, 늘푸른 나무아래 수목 장으로 고이 잠들었다. 푸른 정기 속에 고통 없는 안식으로 영면하기를 기도한다. 봄이오면 동생의 착한 마음이 들꽃으로 피어나리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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