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6-12-01 07:44

ㆍIP: 116.xxx.166

선물
선물

따끈따끈한 햇살을 먹고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호박 줄기에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주렁주렁했다. 엄마는 잔돈푼이 필요하시면 울타리를 돌며 호박을 따 모으셨다. 60년대는 비닐봉지도 시장가방도 귀한 때라 광주리에 수북한 호박이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보자기를 씌워 끈으로 질끈 묶었다. 수건을 둘둘 말아 똬리를 만들어, 머리에 얹어주시고 호박 광주리를 올려 주셨다. 중앙시장 야채 골목으로 가면 서울상회가 있다. 그 집에 갖다 주면 된다고 하셨다. 창피스러웠지만 엄마의 심부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기만 바라면서 부지런히 내달아 그 상회에 호박 광주리를 내려놓고 나왔다. 서울상회 주인아저씨는, 호박이 윤기가 흐르고 예뻐서 금방 팔리겠다고 했다. 엄마는 가끔씩 호박을 따거나, 밭둑에서 머위 줄기를 한 아름 낫으로 베어다 주셨다. 그리고는 이삼일 뒤에 야채 값을 받아 오시곤 하였다. 어느 때는 누런 초가지붕위의 어린박도 따다 주셨다. 양반 댁 종부는 내왕이 잦은 손님접대로, 난전에 앉아 장사를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서울상회 아저씨는 점포도 크고 장사도 잘했다. 무엇보다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아서 더 좋았다. 그 아저씨는 아버지께 대소사를 상의하러 자주 왔다가, 마루에 수북한 호박을 보고 먼저 제안을 해 주셨단다. 가끔은 필요한 야채를 보내달라며 사람을 보내기도 했다. 조금 넓은 텃밭은 우리식구들이 필요한 양념과 부식거리의 보고였다. 넉넉한 소출은 엄마의 비상금 마련에 일등공신이었다.
얼추 시장을 빠져 나오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구제품 가게 아줌마가 가게 앞에 서서 손짓을 했다. 의아해 하는 나의 손목을 잡아 점포 안으로 이끌었다. 군청 여직원들이 자주 드나들던 집이라 몇 번 갔던 곳이다. 그 아줌마는, 나를 눈 여겨 보았다며 요즘 처자 같지 않아 정이 간다고 했다. 아줌마는 레이스가 예쁜, 반질반질하고 보드라운 하얀색 슬립을 꺼내 놓으셨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재빨리 싸서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그 아줌마는 직장만 확실하면 외상도 잘 주어서 단골이 많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아줌마, 월급타면 올께요. 저 외상 않해요”
하며 봉지를 꺼내 놓았다.
“알지, 김양은 외상도 않고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오지 않는 것도 잘 알지.”
“그런데 왜? ...”
아줌마는 나를 끌어다 앉히며,
“ 김양! 지난번 큰옷을 한 벌 사기에 누가 입으려고 하나 궁금했어요. 나중에 예쁘게 고쳐 입은걸 보고 놀라웠는데, 직접 재봉틀로 만들었다고 해서 정말 감동했어요. 그 날 슬립을 만져보기만 하고 그냥 가는걸 보고, 예쁜 것 하나 선물 하고 싶었어요.”
새 물건이 들어 올 때, 재고는 넝마 처리를 하는데 예쁘게 고쳐서 입은 모습을 보고 보람도 느끼고 고마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이니 예쁘게 입으라고 재차 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보며 방긋 웃더니 혹시, 사귀는 사람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 때는 함부로 연애를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더욱이 규범이 엄한 부모님 슬하에서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며칠 뒤 우리 집에 매파가 왔다고 했다. 엄마는, 어려서 아직은 이르다고 거절을 하셨다고 했다. 그 후로는 부끄러워 도무지 그 집엘 갈수가 없었다. 슬립선물로 환심을 사서 나에 대해 소상히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무렵 엄마 같던 언니는 혼인을 하고 서울로 갔다. 시부모님 모시고 시동생들 치다꺼리를 하는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바로 위의 오빠는 화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가되어 부천에 있는 방산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시집살이하는 언니에게 수시로 마른 밑반찬 거리를 장만해서 갖다 주도록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반찬거리를 핑계로 큰딸이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지 살펴보게 하셨던 것 같았다. 오빠에게는 사계절, 요 이불 호청을 빨아주시며 갈아주고 오라고 하셨다. 그러니 한 달이 멀다하고 서울을 오르내렸다. 한번 기차를 타면 5시간 걸리는 장거리다. 오빠에게 갈 때는 청량리에서 다시 부천까지 한 시간, 언니가 살고 있는 마포 종점도 전차로 한 시간이다. 왕복 열두시간여, 차를 타기 때문에 한눈 팔 겨를도 없었다. 어느 날 동대문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오르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 동네에 유명한 동대문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밤차를 탄다면 큰 시장 구경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없는 게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었다. 사람도 물건도 엄청났다. 특히 옷을 파는 점포는 예쁜 옷도 수북이 쌓여있고 무엇보다 시골에 비해 옷값이 저렴했다. 비단옷감 가게도 있었다. 엄마는 매일 광목 치마저고리에 풀을 매겨 다듬이질을 해서 입었다. 이렇게 흔한 비단옷 한 벌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엄마가 불쌍하고 한편 속이 상했다. 형부가 준 차비에 약간만 보태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비단 집으로 들어갔다. 손질할 필요도 없고 늘 새 것처럼 입을 수 있는 옷감이 있는지 물었다. 정말 그런 옷감이 있다면 엄마의 일손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있었다. 흐린 베이지색깔 치마와 흰색 저고리 감을 끊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기분도 최고였다. 엄마는 옷감을 펼쳐놓고 만져 보시다가 혼자말로‘제 옷이나 살 것이지' 하시며 행주치마로 눈물을 훔쳤다.
“엄마! 둘째딸 선물 마음에 들어요?”
“응, 그래, 아주 좋은 옷감이구나!”
며칠 후 한복을 만들어 입으셨다. 새 옷을 입으신 엄마의 모습은 귀티가 나고 고상해서 한층 돋보였다. 엄마는 아끼시느라 아주 가끔씩 외출을 하거나 특별한 손님이 오시는 날만 입으셨다. 그 옷을 입고 계시면 내 기분도 즐거웠다. 용돈을 몽땅 털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월급을 타면 계돈내고 양식을 사면 남는 게 없었기에 무엇을 마음대로 사본 적이 없었다. 직장을 다녀도 미장원 한 번 가지 않았다. 머리가 길어지면 대충 자르고, 종종 땋아서 갈래머리를 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일이 바쁠 때 마다 도움을 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월급을 혼자 마음대로 써도 되는지 무엇이든 잘 샀다. 가끔 자장면을 시켜놓거나 찐 만두를 사놓고 부르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몇 달 모은 돈으로 서울 다녀오는 길에 동대문시장에 들려 핸드백 하나를 골랐다. 그때까지 친구도 나도, 핸드백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수첩지갑 하나들고 매일 출퇴근을 했었다. 엄마 는 ‘그래, 너도 핸드배꾸 하나 있어야한다' 하셨지만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친구에게 선물을 했다.
“영아야 그동안 잘 도와줘서 고마웠어. 그래서 선물을 하고 싶었어”
“어머! 멋진 핸드백이네, 너는? 네 것도 보자”
영아는 자기선물만 샀다는 말에 멈칫 하더니, 금방 활짝 웃으며 ‘네 것은 내가 사줄께’ 한다. 극구 사양했다.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만으로도 내 마음이 흡족했다.
아버지는, 제 욕심 차리지 않고 도리를 아는 딸이 대견하다고 흐믓해 하셨다. 아버지는 언니가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것도 제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겉으로는 태연해 하셨지만, 매번 서울을 다녀오면 엄마보다 더 언니의 안부를 궁금해 하셨다. 언니는 출산이 늦어서 시모의 눈총을 받았다. 하물며 돌 각시 소리를 들어가며 속을 끓였다. 형부는 사양하는 나를 억지로 양화점에 데려가 구두를 맞춰 주었다. 그리고는 어른들께는 언니가 고생하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덕분에 멋진 구두를 신을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부모님 마음 상하실 말은 전할 수 없었는데, 형부는 괜한 돈을 썼다고 생각했다. 그 구두를 신는동안 간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물은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이 같아야 값진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세상엔 주지 말아야하고 받지 말아야하는 선물이 많다. 조건부 선물, 특혜성 선물, 청탁용 선물 등등, 악취와 흉계가 도사리는 선물에 현혹되어 패가망신 하는 사람 들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보았다. 나이 들면서 선물 중에 가장 으뜸인 선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 한 푼들이지 않아도 빛나고 따듯하고, 먹지 않아도 든든한 ‘사랑’ 이라는 멋진 선물이다. 모두들 아끼지 말고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이웃들의 마음도 따듯해지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변화할수 있을 테니까 ~
밝아오는 창밖으로 솟아오르는 햇살이, 새파란 하늘에 눈부신 아침을 열고 있다.

백낙은

2016-12-01 10:28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자가님.
옛날에 우리 어머님을 보는듯 합니다.
어머님께서 콩나물을 길러 파시기도 하시고
푸성귀, 감, 곡물 닥치는대로 내다 파셨습니다.
그리고 옛날 어른들은 물동이를 이고 가는 규수 선 보기가 제일 좋다고 했습니다.
호박 광주리를 이고 가는 작가님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 아주머니가 눈독을 들였던 것 같네요.
지금도 멋진 모자 쓴 모습을 보면 멋진데 싱싱한 규수 때는 눈이 부셨을 것입니다.
선물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김영란 법은 잘 만든 것 같네요.
사랑의 선물!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전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은안하소서.


김경렬	50년전 이야깁니다. 스물두살 꽃다운 나이였네요. 돌이켜보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폭삭 삭을줄 그때는 상상도 못했지요. 건강잘 챙기시고요. 대전에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1 17:26

이석희

2016-12-01 11:25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상당히 긴 글이지만 단숨에 내달려 읽어 내려갔습니다.
가지가지의 선물 보따리를 풀어 내시는 솜씨가
제 마음을 더욱 더 사로 잡았습니다.
마음씨 착한 소녀의 아름다운 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한편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답니다.
오늘날은 모든 게 풍족한 세상이 되었으니
유형의 선물 말고 무형의 선물을 주고 받았으면 어떨까 합니다.
내 가족과 나만의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 말고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악취가 풍기는 세상을 지적하신 말씀도 귀감이 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어서 오세요. 안녕 하시지요?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좋은 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정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대전에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12/1 17:30

정찬열

2016-12-01 15:42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저역시도 문인이 되어서 아신분입니다만
저역시 가정교육이 잘된 가정에서 자랐구나
하고 내심 속으로만 생각 해왔는데
"선물" 이라는 아름다운 글으 단숨에 읽으며
역시 생각이 적중했구나 하고 생각해본 시간입니다.
얼마나 주위사람들 환심을 삿으면 그시절에
매파를 보냈겠어요 감사히 배독했습니다.
돌아오는 12월 행사때 인사 드리겠습니다.
늘 건안 하시길 빕니다.


김경렬	안녕 하셔요? 졸작을 배람하시고 칭찬까지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늘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전에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12/1 17:34

팔자는 핑게야

주말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