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6-12-26 15:18

ㆍIP: 61.xxx.102

엄니의 아픈 손가락
엄니의 아픈 손가락

6.25사변이 나자 너나없이 모두 피난길을 떠났다. 어린 동생을 업고가시는 어머니는 머리에도 잔뜩 무언가 올려 져 있었고 언니도 어깨에 짐을 지고 갔다. 나는 다섯 살 이라고 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울면 엄마는 손톱만한 초코렛 조각을 입안에 넣어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염치는 차렸던지 그러면 한참을 걸어갔다고 했다.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울 때마다 초코렛을 먹여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던 달콤함! 나를 바라보며 조금만 참자고 머리를 쓸어 주시던 어머니의미소. 엉금엉금 기어서 재를 넘어갈 때는 언니가 내 엉덩이를 아래서 받혀주었다. 한손에 양은주전자를 들고 갔는데 그 속에는 하얀 백설기 한 덩이가 들어있었다. 배고프면 꺼내 먹는 끼니였다. 30리를 걸어갔다고 했다. 차나물 이라는 동네에 당도해서 친척의 주선으로 큰 대문 집에서 살게 되었다. 대문 앞에는 동네 오빠 언니들이 솔가지를 꺾어 와서 껍질을 벗겨내고 송기를 맛나게 먹었다. 누군가 껍질을 벗겨 주었는데 향긋한 냄새가 좋아 오래 빨고 있었다. 언니는 오래 빨면 입이 부르튼다며 빼앗아 아궁이에 던져 넣어, 울었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따뜻한 봄이 되었다. 언니는 나를 데리고 들판에 나가 냉이며 솔구지를 캤다. 아무 풀이나 캔다고 꿀밤을 맞으면서도 매양 따라다녔다.
드디어 피난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동사무소 일을 하셨고 우리는 동사무소에 딸린 살림집에서 살았다. 어느 날 밤중에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났다. 동생이 급성맹장으로 죽었다고 했다. 허전한 어머니는 밤이면 나를 품에 안으려 했고 나는 죽은 동생이 생각나 무서웠다. 언니하고만 자겠다고, 철없이 떼를 쓰곤 하였다. 얼마 후 동생이 태어났다. 어머니는 나를 많이 예뻐하셨다. 아들이 죽고 또 아들을 낳은 건 내가 터를 잘 팔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예쁘다 하셨다. 남동생은 여섯 살 차이가 났다. 죽은 동생은 장군같이 튼튼하고 잘생겼었는데, 새로 태어난 남동생은 여자처럼 곱살하고 예쁘다고 하였다. 막내 여동생은 아홉 살 아래였다. 귀엽고 깜찍해서 언니가 키우면서 끔찍이 예뻐했다. 엄마는 끝으로 남매를 공연히 낳았다고 하셨지만 정작 효자효녀는 막내 동생들이었다. 막내 여동생은 어머니가 말기 비암으로 거동이 힘들어지자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극진히 모시며 병수발을 해드렸다. 어머니가 떠나시자 슬픔을 술로 달래시던 아버지마저 간 경화로 쓰러지셨다. 적십자 병원에 입원 가료 중이었으나 병원 측의 권유로 시골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번에는 남동생이 휴직을 하고 내려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 곁을 지켜드렸다. 위로 사남매는 혼인하여 서울에 모두 살고 있었으나 아이들이 모두 어리고 그때는 자가용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대였기에 이동에 불편이 많았다. 급행열차를 타도 너덧 시간을 걸려야 했기에 한 두 시간 머물고 다시 올라와야했다. 시골집에 자주가기도 어려웠으므로 자연히 막내 동생들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많이 미안했었다, 그러나 동생들이 부모님을 지켜 드렸기에 든든하고 고마웠다.
막내 여동생이 혼인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큰오빠 내외가 부모노릇을 해야 했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맏이는 신랑 양복과 예물을 준비하고 신부 드레스는 솜씨 좋은 막내 동생 본인이 직접 만들어 입었다. 둘째 오빠는 장롱을 준비했다. 중신을 섰던 친구가 중재를 잘해서 사돈댁엔 면목이 없었지만, 겨우 필수품만 챙겨 세탁기는 내가 해주고, 언니는 전기밥통과 전기냄비, 재봉틀을 장만해서 시집을 보냈다. 시가로 들어가므로 이중으로 살림살이며 냉장고는 장만하지 않아도 된다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새살림을 기대했던 시모는 냉장고를 해오지 않아 서운해 하셨다. 동생의 불편한 마음을 부채질하듯 급기야 낡은 냉장고가 멈춰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거실바닥에 물이 가득했단다. 냉동고에 음식 재료들이 밤새 녹아 내렸던 것이다. 난감한 막내는 시모가 아시기 전에 해결하고 싶어 했다. 즉시 월부로 용량이 큰 냉장고를 배달시켜 주었다. 막내 동생이 좋아 하므로 그것으로 족했다. 막내는 시부모 두 분을 암으로 보내드렸다.‘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동생에게는 틀린 말이었다. 십여 년 동안 차례로 두 분 병수발을 극진히 하더니 두 분 다 선종 하시자 자리에 눕고 말았다. 시모는 뇌 암으로 세 차례의 수술을 하셨다. 돌아가시자 시어른은 희귀 암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막내는 힘든 간병을 감수하며 지극히 보살펴드렸다. 환자가 집안에 있으면 수발하는 사람은 골병이 들게 마련이다. 하물며 두 분이 차례로 누워 계셨으니 오죽했으랴? 그 여파로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이 짠하다. 어느 날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 집들이 한다고 형제들을 초대를 했다. 밥통이 없다기에 새로 나온 전기 압력 밥통을 홈쇼핑에서 주문해 보냈다. 식사가 끝나고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냈다. 동생은 내가 보내준 냉장고 아직 잘 쓰고 있다며, 압력 밥솥도 보낼 때 선물까지 배달되었다면서 밥맛이 아주 좋다고 좋아 했다. 우리는 동생에게‘양가 부모님께 정성을 다한 효성’을 조상님이 알아주시고, 이 좋은 집에서 살도록 복을 주신 거라고 덕담으로 힘을 실어 주었다.
얼마 후 남동생도 혼인을 하게 되었다. 혼 삿 날이 다가오는데 사림집이 해결 되지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부모노릇 하겠다던 맏이는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겠지만, 가타부타 말이 없어, 갈급한 마음에 큰오빠에게 밤늦도록 전화로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남긴 유언이 있었지만 정식 절차를 밟아 놓지 못하였기에, 막내들에게 부모노릇을 해달라는 의미를 피력하고 집과 논밭을 넘겨주었었다. 그런 내용들을 잊지는 않았겠지만, 화근을 피하기 위해 조카들의 예를 들며, 이럴 때 오빠는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고 물었다.‘갖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짜증을 냈다.‘모 아니면 도’라 했듯이동생이 사용하던 방을 세놓고 보증금을 보태달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서는 전세도 얻을 수 없는 돈이었지만 모자라는 액수를 조금씩 보태서 안양에 11평짜리 주공 아파트를 싸게 구입하였다. 이리저리 집 없이 떠돌지 말고 출퇴근이 먼 거리지만 내 집을 장만하고 열심히 저축 하라는 내 뜻을 따라주었다. 큰오빠에게는 아들만 넷이 있다. 교원 봉급으로 두 녀석의 대학과 고등학생의 아들수발에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큰올케의 내조덕분에 지탱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답답한 놈이 샘을 판다’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결국 총대를 메었던 것이다.
두 동생들은 맏이에게 서운함을 안고 있었다. 집과 논밭을 다 팔고 선산의 나무까지 팔았어도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마다 나는 서운해 하는 동생들의 마음을 잠재우곤 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 막내 남동생이 정년퇴임을 하고 설상가상으로 빚까지 떠안게 되었다. 살던 집까지 넘어가게 생겼다고 고민을 했다. 형제들이 힘을 모아 급한 불을 껐지만 동생의 마음은 달랐다.‘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다. 궁지에 몰려 이런 저런 살아갈 궁리를 하다가,‘궁여지책’으로 쓸모가 없어 남아있는 900평의 자투리땅 박토를 생각했다. 밭이라도 일구며 살아보겠다고 큰형에게 매달렸다. 형제들도 동생의 뜻을 지지해주었다. 큰 오빠는 박토라서 무슨 작물이 자라겠느냐, 했지만 결국 동생에게 이전해주었다. 동생은 귀농의 꿈에 부풀어 인터넷을 뒤지며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막내 여동생도 삼남매를 출가 시키고 손자들 재롱에 푹 빠져 있다. 지금은 김포에 전원주택을 마련해놓고 주말 농사를 지으며 귀농 준비를 하고 있다. 노후를 준비하는 동생들에게 행복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동생들은 비록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떠나시기 전 부모님에게는 더없이 든든한 나무였다. 여러 형제를 대신해 부모님을 모시고, 말없이 헌신하며 자식의 도리를 다한 자랑스러운 효자효녀였다. 살아생전 부모님이 가장 안쓰럽고 짠해 하셨던 손가락이었기에, 나에게도 두 동생들은 늘 먹먹한 마음으로 남아 있다. 하나 밖에 없는 누나노릇도 언니노릇도 제대로못하고 있으니 미안할 뿐이다. 세상 다 하는 날까지 건강하게 웃으며 살아가자. 어느새 내 마음은 너희들 텃밭으로 달려가고 있단다.

백낙은

2016-12-26 15:44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6.25도 겪으셨군요.
에구! 다섯살 짜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그 때 동생이 생각 나네요.
김천에서 청도 매전면까지 피난을 다녀 왔는데
나는 13살이었고, 동생은 여덟살이었는데
동생이 다리 아프다고 울면 내가 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내년 쯤에 팔순 기념으로 자전 수필집을 하나 내 볼까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되돌아 보니 차곡차곡 쌓아둔 추억거리네요.
그리고 알콩달콩 사시는 가족 친지의 모습 보기 좋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진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평안하소서.


김경렬	감사합니다. 어릴때도 든든항 형아 였네요. 팔순 기념 수필집 기대가 됩니다. 주옥같은 보석들이 쏟아 질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수필집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새해는 더욱 보람있는 한해가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	12/27 11:56

이석희

2016-12-26 19:49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참 다복하십니다 하고 표현하여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형제가 많아도 다복하다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딱 3남매가 남인듯 형제이고 형제인듯 남처럼 지내다가
남동생은 8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은 출가 외인이라고 하는 말처럼
멀리 서울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래도 여동생은 짝을 우리가 지어주었기에 그런지 더 살갑게 대해줍니다.
가끔 찾아오기도 하고 전화도 자주 옵니다.
남동생네는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완전히 남입니다.
연고가 있으면 전화 한통화이고 아니면 불통입니다.
조카는 조카일 뿐이고 동생은 아니기에 그런가 봅니다.
반대로 우리 처가는 6남매의 거대한 가족이어서 그런지 정답게 삽니다.
우리 처가도 막내아들이 혼자된 엄마를 모시고 삽니다.
도와 주는 형제 하나 없어도 잘 모시니 그 막내 처남 부부에게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즐기다가 목이 메이다를 번갈아가면서 읽었습니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였습니다.
건강하세요.


김경렬	감사합니다. 졸작에 깊은 애정을 보내주시니 거듭 감사 드립니다. 저도 88년에 언니가 떠난뒤 큰일때만 그 이질들을 봅니다. 그리고 5남매가 살고 있습니다. 위로 오빠두분 과 동생둘. 부모님 제사때만 한번씩 얼굴 보는게 다 입니다. 모두 제식구 거느리고 건강도 쇄하고 해서 큰일때나 겨우 한번씩 볼 정도 랍니다. 멀리 떨어져 살면 이웃 사촌만도 못한것 사실이지요.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몇일 마무리 잘 하시고 정유년 새해는 더 행복 하시기를 기도 합니다..	12/27 12:09

정찬열

2016-12-26 20:20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작가님!
부모님을 여의시고 두동생의
부모님 노릇을 하셨군요 착한 두동생에게
그보다 더라도 해주셨을 작가님 언제 보아도
따뜨한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아무리 남매형제간이라고 해도 부모님의
온화한 가르침이 없었으면 결코 쉬운일이 아니지요

"엄니의 아픈손가락" 온화한 천사의 미소가
가득한 흐름으로 배독하고 갑니다.
늘 편안 하시고 형재 자매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김경렬	늘 덕담으로 힘을 실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문협을 통해 정작가님을 만난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늘 귀감이 되시는 모습 자랑 스럽습니다. 정유년 새해는 집안이 모두 즐거운 일만 가득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합니다.	12/27 12:13

박목철 2016-12-27 10:17	글을 읽으며 제 생각을 했습니다. 피난길에 아버지를 잃은 우리를 어머니가 인솔 하셨습니다. 저는 걷기에는 어리고, 업고 가기에는 버거운 나이였지요, 뒤에서 포소리가 울려대고 저 때문에 다 죽는다고 큰 누나는 저를 버리고 가자고 어머니와 늘 다퉜습니다. 어머니는 이불 보따리 위에 저를 올려놓고 가시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럴때면 어머니는 저의 손을 잡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을래? 잘 걸을래? 하셨습니다. 저는 줄달음을 치곤 했지만 잠시 였지요, 작가님은 집안 우애가 남다르십니다. 부럽습니다. 살다보니 단명 집안이라 다 가고 저만 남아서 글을 쓰고 있네요,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작가님,

김경렬 2016-12-27 12:17	박목철 작가님! 에구머니! 그 누님 큰일날 소리 하셨네요. 갑자기 작가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싸아 해 옵니다. 그러나 혈육이 일찍 가셨다니 그 명을 이어받은 우리 작가님 100세는 문제 없으실것 같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만 가득 하시기 소원 합니다.

김종근

2016-12-29 14:25

김경렬 작가님 안녕하시지요. 반갑습니다.
작가님의 엄니의 아픈 손가락 잘 배독 하였습니다.
그 시절의스토리가 파노라마처럼 스칩니다.
다사다난 했던 금년도 마무리 할 시기이군요.
밝아오는 정유년 더욱 건강하시고 모든일 뜻대로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동생내 며느리 본다고 행사엔
참석치 못했습니다. 제가 정유생이니 저의 해 인것 같습니다.
내년엔 경제가 좀 풀렸으면 합니다.


김경렬	김종근 작가님! 반갑습니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정유생의 해라 하시니 더 행복 하실것 같습니다. 만복이 깃드는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12/29 17:26

백낙은

2016-12-31 20:59

김경렬 작가님.
송구영신의 시점에 섯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안하셔서
우리 수필 서재를 더 환희 밝혀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후의에 심심한 감사를 드리오며 내내 평안하소서.


김경렬	위원장님! 한해동안 수필방 관리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도 만복이 함께 하시기 바라며 건강 하시기 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12/31 23:01

두 즈믄의 해돋이

팔자는 핑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