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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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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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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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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7-02-02 0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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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민
그녀의 고민
라일락의 가느다란 몸매가 하늘거리며 향기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병원 상담실 앞뜰에는 환자와 가족들이 산책을 나와 거닐며, 혹은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때로는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기도하고, 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절절한 마음을 억누르고 슬픔을 삭이기도 한다. 창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며‘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지지하는 화살기도를 수 없이 해주었다. 그날도 점심 후 차 한잔을 하면서 창밖의 환자들을 위하여 화살기도를 하고 있는데 불쑥 문이 열리며 간호사 한명이 들어섰다. 병동근무를 하고 있는 수 선생이었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마침 계셔서 다행입니다.”
“어서 오세요. 30분후에 회의가 있어서요”
“아, 네. 회의 준비 하셔야지요,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수 선생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두 시간 후에 다시 보기로 했다. 그러나 퇴근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병동엔 돌발 상황이 잦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가운을 벗어 걸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살그머니 문이 열렸다.
“어머! 제가 너무 늦었나 봐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오느라고 늦어졌다고, 양해를 구했다. 직원을 먼저 퇴근 시키고 차를 한잔씩 나누며 일상적인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녀는 머뭇거리며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네, 실은... ”
무슨 일인지 입을 열기가 매우 힘들어 보였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커텐을 내리고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 녀는 나의 배려에 감동을 하였는지 눈가를 붉히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고 있다.‘무슨 설음이 있는 것일까?’ 크리넥스를 통째로 가져다 몇 장을 꺼내 주었다. 눈물을 훔치며 차 한 모금을 넘기더니 진정이 되었는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다복한 가정에 귀하게 자란 그 녀는 무남독녀 외동딸 이었다. 60대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며, 모친이 지난해 위암 수술을 하셨다. 항암을 끝낸 뒤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가끔씩 가까운 곳으로 내외분이 여행도 다녀올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런데, 지난달에 갑자기 모친이 쓰러져서 응급실로 입원을 하였다. 검사 결과 위암이 재발하여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가 되어서. 또다시 항암 치료 중이라고 하였다. 부친은 직장때문에 환자와 함께 있어줄 수없는 실정이라 재택 도우미가 살림을 하면서 환자 수발을 든다고 했다. 양친은, 부부애도 남달라 늘 손을 잡고 다니는 다정한 부부였다. 지금도 부친은, 퇴근하면 밤늦도록 아내를 보살피고 늦은 밤에야 주무신다고 했다. 근무 중에도 수시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자상한 분이라고 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고도 했다. 그녀는 자식이라고는 자기 하나뿐인데 병원일로 허둥대며 제 식구 건사하기도 바쁘다고 했다. 늘 죄스럽고 송구했는데, 하더니,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 있다. 듣고 있자니 답답했다. 본론은 말 못하고 이제까지 뱅뱅 돌고만 있지 않은가.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처럼 뜸을 들일까? 이번엔 내가 한마디 했다.
“정작 할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까요?”
“네, 그게... 며칠 전 엄마가 전화를 하셨어요. 바쁘더라도 집에 좀 와주면 좋겠다구요”
평상시 같으면, 집에서 푹 쉬라고 자주 오지도 못하게 하셨던 분이다. 엄마를 보자, 자주 오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더니 ‘아니다, 엄마가 누구에게도 의논을 할 수 없어서 너를 기다렸다’ 며 오히려 미안 해 하였단다. 환자는 더 야위고 항암기간이라 많이 힘들어 했다.
“얘야 이 엄마가 이상해서 그런다. 이렇게 기운이 없고 힘든데도 왜 아빠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혹시 또 다른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그 녀는 처음에 건성으로 들었기에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한참 동안 엄마와 얘기를 나누고서야 그 뜻을 알아차렸다 고했다. 그리고 며칠간 고민하다가 경험이 많으신 실장님을 찾아오게 되었단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런 일이 실제 있을 수 있는 것 인지 물었다. 사실 중증환자로서는 처음 접한 문제였기에 속으로 당황이 되었으나, 딸에게 하기 어려운 얘기를 했을 환자를 위해서라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 같았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부드럽게 대해주었다. 비록 몸은 병이 들어 힘들지만 정신건강이 건강하신 증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정신과 과장을 만났다. 이야기를 들은 닥터는, 부부가 금술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라고 당연한 듯 말씀하셨다. 그 녀에게 정신과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리고 해결방법을 논의 했다.
환자는 암제거 수술 후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을 하였다. 항암 후유증으로 머리가 빠지고 육신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분은 환자이기보다 여자였기에 추한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각방을 사용 하자고 하였다. 본인이 요청을 했지만, 점차 소외감을 느끼며 외로워지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환자인 아내를 끔직이 보살펴 주며 잠들 때까지 함께 있어주었다. 그럼에도 환자는 병들고 초라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민을 하던 딸은 아빠에게 '최근 병실 환자의 사례' 라며, 우회하여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는, 아빠도 엄마를 위해서 합방을 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권해드렸다. 부친도 흔쾌히 동조를 해 주었고 얼마 후 엄마의 밝은 모습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일로 인해 몸이 아픈 환자라고 환자 취급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세심한 관찰과 깊이 있는 관심을 기우려 합당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병실 방문 때마다 사랑의 전도사가 되었다. 환자의 배우자나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기분이 좋은 말을 듣거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뇌에서, 치유에 도움이 되는 홀몬이 분비된다는 말을 수없이 해 주었다.
환자들은 긴 시간의 투병으로 지쳐서 정서가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어떤 분은 귀여운 손자 사진을 들여다보기만해 통증이 사라진다고 한다. 즐겁고 행복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 순간, 뇌에서 도파민이나 엔돌핀 등의 유익한 홀몬이 분비된다. 이로 인해 항체기능과 면역기능이 강화되며 통증이 완화되기도 한다. 웃음요법이 효과적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잠자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 환자와 함께, 하루일과를 나누며 칭찬과 격려를 한다면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과 질 높은 투병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삶의 의지와 긍정의 투병의지’를 키우는 바람직한 케어가 된다. 연구 논문을 보면 우리나라의 인구의 비례로는 3,4명중에 한명이 암환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예비환자이거나, 또는 이미 그 가족이기도하다. 암환자가 발생하면 우선 가족들이 더 당황하게 된다. 침착하게 치료에 임하도록 도우며, 힘들 때는 병원에 상주하는 원목실을 찾거나 전문의사와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신과 의사인 미국의 퀴블러로스의 논문에 의하면 암환자에게는 5단계의 심리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간혹 환자에게 끝까지 알리지 않는 가족들이 있는데, 이는 알권리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90%의 환자들은 서서히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처음 확진결과가 나오면, 아니야, 오진이야, 하며 부정을 한다. 두 번째는 내가 왜? 분노의 단계를 거쳐 세 번째 타협의 단계에 이른다. 죽기 전에 좋을 일 해보고 싶다며, 실제 시신기증을 하기도 한다. 네 번째 우울의 단계에 이르면, 가만히 있거나 울기도하며 가족들 걱정을 깊이 한다. 마지막 수용의 단계다. 평소의 인성에 따라 분노와 우울을 거치지 않고 수용을 하며 진취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바람직한 환자도 있다. 반면 굴곡이 심한성향은 다섯 단계를 넘나들며 주위사람을 매우 힘들게 하기도 한다. 환자에게 빠짐없이 해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의 끈을 달고 나온다는 사실이다. 삶에 따라 길고 짧을 수는 있겠으나 그 끈을 평생 잘 다스려야 마지막 가는 길에 빛나는 끈이 되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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