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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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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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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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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7-02-13 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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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 감
대봉 감
엄마는 연일정씨였다. 그 연일정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청풍면에 있었다. 어머니는 언니와 국민 학생인 나를 데리고 나들이를 갔다. 외가에 대소사로 가시면서 우리를 데리고 길을 나선 것이다. 읍내에서 30리길에 금성면이 있고, 금성면을 지나야 청풍면이 있었다. 다리가 아프도록 걷고 걸으면서 금성면 친척 집에서 점심을 먹고, 또 한없이 걸었던 기억이 있다. 청풍 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넓은 강을 건널 때는, 뱃사공이 뱃전에 삐거덕삐거덕 소리를 내면서 장대 같은 노를 저었다. 나룻배가 물살을 거슬러 가면 강바람이 스치며 얼굴을 간질러서 기분이 참 좋았다. 처음 타보는 나룻배였기에 즐겁고 신기했다. 아쉬움을 안고 배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니 빨간 감알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골 동네가 있었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그득했다. 난생 처음으로 본 감나무가, 온 마을에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감나무들은 모두 아기주먹 만한 크기로 자박자박 열려서 줄기가 축축 늘어져있었다. 외가 친척들이 사는 동네였다. 키 작은 나도 손을 뻗어 따먹을 수가 있는 토종 감나무였다.
달콤한 홍시가 얼마나 맛있던지 먹고 또 먹었다. 언니는 그 맛있는 감을 몇 개만 먹고 더 먹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그만 먹으라고 구박을 했다. 이튿날도 감을 따먹는 내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너 내일이면 똥꼬 막혀죽는다’난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언니가 이상 했다. 변소를 자꾸 들락거리며,‘너는 괜찮니?’하고 물었다.‘응, 아무렇지도 않아.’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잔치가 끝나고 떠나려 하자, 이집 저집에서 선물 보따리들을 가져왔다. 엄마는 땡감보따리를 이고 들고, 언니도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홍시는 터지므로 땡감을 가져왔다고했다. 엄마는 땡감을 깎아서 곶감을 만들기 위해 처마 밑으로 줄줄이 달아 놓았다. 하루하루 곶감이 되어가는 감을 쳐다보았다. 여러 날이 지나자 엄마는 제사 때 쓴다며 곶감을 밀가루 단지에 넣어두셨다. 우리 집은 제사가 많다. 귀한 것은 모두 제수로 보관되었다. 내손이 닿았다면 몇 개는 빼 먹었을 곶감인데 아쉬웠다. 엄마는 제물에 손을 대면‘조상님이 노 하신다고’엄하게 하시므로 감히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다. 우리 집 다락방은 보물창고며 요술창고였다. 아무도 없을 때는 살며시 올라가 여기저기 뚜껑을 열어보고 침만 꼴깍 삼키곤 하였다. 큰 함지박 속에는 넓적한 갱엿도 들어 있고 항아리 속에는 사과와 배도 들어 있었다.
나이가 드시면서, 이렇게 알뜰하게 살림을 하시던 어머니는 시름시름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다. 목뒤로 밤톨만한 핵이 생겨나 기독병원에서 수술도 하셨다. 그럼에도 누워 계시는 날이 잦아서, 원자력병원으로 모셔와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가 나왔다. 비 암 말기라 했다. 이미 천공이 생겼으며 먼저 제거한 핵은 임파선으로 전이된 상태였다고 했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원자력병원에서는 한 달 동안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20회의 방사선 치료계획에 따라 병원엘 다녀야한다. 백일 지난 딸을 언니에게 맡기고, 광화문에 있는 원자력 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 방사선 횟수가 늘어감에 따른 부작용이 시작 되었다. 환부가 까맣게 변했다. 급기야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죽 한 술로 연명하셨다. 그 무렵 남편은 사무관 승진고시 준비로, 퇴근하면 저녁을 사먹으며 고시학원에 가서 늦도록 공부를 할 때였다. 차가 끊어져 택시를 타고 올 때도 있었다. 학원비에 저녁 값에 택시비까지 경비지출이 많아 근검절약을 하며 지낼 때였다. 식사를 못하는 어머니에게,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드렸다. 처음엔 싫다고 하셨지만 메스꺼울 때는 찬 것이 진정되므로, 유일하게 잡숫는 것이 아이스크림이었다. 해서, 어머니가 병원 가는 날은 아이스크림을 잡숫는 날이기도 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과일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 멈춰서서, 감동어린 미소로 바라보고 계셨다. 엄청스레 큰 감이었다. 큰 밥공기 덩이만 해서 나도 놀랐다. 주인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대봉감이라고 했다. 그렇게 큰 감이 있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가격 또한 입이 쩍 벌어지게 비쌌다. 물론 그만한 돈도 주머니엔 없었다. 며칠 후 어머니의 치료가 마무리 되었다. 주치선생님은 한 달 후에 와서 사진을 찍어 보자고 했으나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신 후 다시는 올라오지 못했다. 점점 쇠진하여 누워계셨고 모진통증에 시달리셨다.
이미 진통제는 소용이 없었다. 지금처럼 몰핀 경구약이 없던 시대였기에 말기 암 환자인 어머니는 통증을 견뎌내기가 죽을 것처럼 힘들어 하셨다. 막내 동생과 아버지의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엄마의 병 수발을 하는 효녀막내가 고맙고 한편 미안했다.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는 이미 목이 굳고 혀도 마비되어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신기하게 동생은 약을 달라는 신호라며 물을 떠다가 알약을 곱게 갈아 녹인 뒤 입안으로 흘려 넣어드렸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쩔쩔 매고 있었다. 동생은 엄마 눈빛 하나로 모든 걸 알아채고 있는데... 졸지에 무용지물이 된 내 자신이 동생 앞에 몹시 부끄러웠다. 다녀 온지 며칠 뒤 엄마는 먼 길을 홀로 외롭게 떠나셨다. 옆에서 주무시던 아버지도 모르게 자는 듯이 혼자 떠나신 것이었다. 돌아가신 후 염을 하기위해 엄마의 손톱을 깎으려 했다. 납작하게 뭉그러져 깎을 수가 없었다. 그제서 누워 계셨던 벽이 옴폭하게 파져있는걸 발견했다. 고통이 올적마다 벽을 긁어내며 참아내셨던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보고 통한의 오열을 토하고 말았다.
삼우제를 치룬 뒤 각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아버지께 절을 올렸다. 우리들의 절을 받으시며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형제들이 모두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를 위로해 드렸다.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두 동생과 아버지를 남겨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로 올라와 집으로 가는 길 어귀에 과일집 앞을 지났다. 그날따라 빨간 홍시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대봉 감 대신홍시라도 사다 드렸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어머니가 멈춰서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대봉감은 그 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만큼 귀한 대봉 감 이었기에 그때는 그리도 비쌌나보다. 지금은 마트마다 쌓아놓고 팔정도로 흔하고 값도 저렴한데... 떠나신지 어느덧 40년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손자들을 위해 대봉 감을 사놓고 식구들에게 아침 식전에 한 쪽씩 나누워 준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먹는 단것은 두뇌활동이 왕성해 진다고 전문가 권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한 짝을 들여 놓았다. 아침마다 한 개씩 꺼내 접시에 바쳐낸다. 말랑하게 익으면 냉동실에도 보관한다. 한여름 냉 홍시,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오늘도 대봉시 감 상자를 바라보며 엄마의 인자한 미소가 떠올라 가슴이 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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