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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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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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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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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6-12-15 0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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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는 핑게야
팔자는 핑게야!
국민 학생 때부터 살던 우리 집은 터가 넓어서 앞집이 두체였다. 한집은 주정뱅이 아저씨가 살고 있었고 한집은 구남매를 둔 부자 집이었다. 그 부자 집엔 나보다 두 살 위의 선배 언니가 살고 있었다. 얼굴이 달덩이처럼 희고 귀티가 흘렀다, 말 그대로 부자 집 큰 딸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이렇게 멋진 딸이 중학교 졸업을 하자 부엌일을 시켰다. 항상 부엌에만 있었고 간간히 장독대에서 우리 집을 바라보곤 하였다. 어느 날은 모친에게 야단을 맞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은 바로 밑에 남동생이 위로를 해 주듯 함께 있어 주었다. 가끔은 장독대에 쪼그리고 앉아 몰래 훌쩍 거리기도 하였다.
엄마와 언니가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위로 두 남매는 전실 자식이고 아래 칠 남매는 지금 부인이 들어와 낳았다며 그 언니를 불쌍하다고 했다. 아, 그래서 학교도 안보내고 일만하는 살림꾼을 만들었구나. 그래도 그 언니는 살림도 야무지고 동생들 건사를 잘한다고 이웃 어른들의 칭찬을 받고 있었다. 그 무렵, 큰 오빠가 살고 있는 원주에 가서 타이프 학원을 다녔다. 매일 학원에 가서 타이프 연습을 열심히 하였고 기계 다루는 방법도 마스터하고 삼 개월 만에 돌아왔다. 때마침 관청에 타이프가 배정 되었으나 다룰 줄 아는 타이피스트가 없었으므로 나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군청에 기능직으로 특채되어 행정계에 서무를 겸하게 되었다. 출근을 시작하였다. 이제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려고 부엌에 기대서있었다. 저녁때 퇴근을 하면 부엌일을 하다가 또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시하고 드나들자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이제는 그 언니가 보이지 않으면 되래 궁금해지기도 했다.
망부석처럼 매일 우리 집을 바라보는 그 언니의 마음은 무엇일까? 항상 웃음소리가 들린다는 우리 집이 부러운 것일까? 아니면 자유롭게 직장 생활을 하는 내가 부러운 것일까? 허긴 그 집은 큰대문하나만 출구인 ㅁ 자 집이라 감옥 아닌 감옥같은 집이었다. 내다 볼 때라곤 우리 집 뿐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언니가 시집을 간다고 소문이 났다. 이웃 집 아줌마들이 모여 농담을 하다가 혼사가 이뤄 졌다고 했다.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만 있던 그 언니가 좋은 신랑 만나서 재미나게 살면 지금보다 열배는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시집가기 전에 나를 찾아 왔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담 너머로만 보았던 그 언니를 가까이서 보니까 살결도 곱고. 웃는 모습이 함박꽃 같았다.신랑감에 대해 궁금했었나보다. 신랑감이 나를 잘알고 있드라면서, 혹시 잘 아는 사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같은 청사 내 있는 동료였기에 얼굴만 아는 사이일 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 그 총각은 별관 건축과 소속으로 늘 현장 외근을 나가는 날이 많아 대면할 일이 없었다. 군수 직인을 찍어야 하는 서류는 모두 나를 거쳐야 했는데 그는 한 번도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건축현장 기술직 인 것 같았다. 무슨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더 들을 말이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음성에 있는 시댁에서 혼인을 한다고 하며 돌아갔다,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이후 우리는 담 너머,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 언니는 구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시가에서 시부모 모시고 시 동생들 시중들기도 바쁘다고 일 년이 넘도록 한 번도 친정에 오지 않았다. 친정에서 죽도록 일만 하더니 그렇게 일복이 많은 그 언니는 또다시 시댁의 일속에묻혀 살았다. 주말이면 달려가는 신랑이 있으니 또 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언니는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간 뒤 바로 식모를 들였다며 계모는 계모라고 혼잣말을 했다. 언니는 그 처녀팔자가 자기 팔자와 매 한가지라며 한숨을 푸우 내 쉬었다. 나는 언니에게 말 같잖은 소리 한다며‘ 팔자는 무슨..’그런건 다 자기가 스스로 극복하는 거라고 반박을 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일이 생기고 부정적인 사람은 늘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꼬이는 거라고 말했다. 언니는,‘너는 좋겠다. 뭐든지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니 귀신도 도망가겠다’라고 빈정거렸다.‘넌 팔자가 좋아서 나중에는 잘살 거야.’하면서 자기는 어릴 때부터 고생을 했으니 시집을 가도 고생할 것 같다고 했다. 언니의 자조적인 말이 귀에 거슬렸다. 언니가 고생했으니 오히려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랬던 언니에게 혼담이 오가더니 드디어 서울에서 선을 보러온다고 했다. 전국을 누비며 광산 개발을 하셨던 아버지의 절친께서 중신을 했으므로 진행이 빨랐다. 그날따라 추수를 끝낸 소작인이 누런 볏가마니를 대청에 가득 쟁여놓았다. 예비 안사돈은 쌀 부자 집으로 착각을 하였다. 꽃피는 사월에 언니는 서울에서 혼인식을 치루고 시댁으로 들어가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들과 함께 살았다. 가을이 되자 안사돈은 시골에서 사돈이 쌀도 한짝 보내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언니가 듣게 되었다. 심지어 친정 다녀오라고 언니를 내려 보냈다. 엄마는 무슨 때도 아닌데 별안간 내려온 언니를 이상하다고 했다. 눈치를 챈 내가 나섰다. 시집보낸 첫 가을이니 쌀 한가마니와 잡곡들을 챙겨 부쳐주자고 했다. 이번에는 엄마의 한숨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것이 명답이라는 걸 엄마도 알아채셨다. 언니는 안 그래도 모자라는 양식인데 어떻게 가져가느냐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그해는 꽁보리밥을 더 먹어야 했다. 언니는 무슨 예지력이 있었나 보다.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끝내 위암으로, 죽음보다 더 두려운 고통 속에서 길을 떠났다.
언니가 나에게 수 도 없이 해준 말,‘너만은 편안히 잘 살아라’돌이켜 보니 언니는 본인만 희생하면 모두가 편안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 껴안고 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휘둘리지 않고 극복하려면 부단한 노력과 정면으로 해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작심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방면에 지식과 견문도 있어야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언니처럼 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듣고 메모하며 필요하면 발품을 팔아가면서 터득하고 시간이 나는 데로 다방면에 관심을 두었다. 스스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어디에서나 위축이 된다는 것도 언니를 통해서 깨달았다. 인간은 죽을 때 까지 배우는 동물이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모자람을 보지 못하고 덕을 베풀 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심지어 인적자원을 귀히 여기지 못하고 황금의 봉으로 이용하려는 이기심 때문에 자멸하는 사람도 보았다. 스스로 갉아먹는 잠간의 이기심 보다는 죽어서도 빛나는, 한마디의 덕을 쌓는 마음이 고귀하지 않을까?. 팔자? 그건 핑계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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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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