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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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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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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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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6-04-10 0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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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면회
첫 면회
김 경렬
북풍한설 몰아치던 그해 겨울은 유래 없는 강추위가 계속 되고 있었다. 91년12월31일 한해를 보내는 송년의 날, 우리 집은 망년회와 입대하는 아들의 장도를 기리 는 파티를 겸했다. 케잌에 촛불을 켜고 엄마의 기도에 이어 아빠와 동생이 아들의 건승 을 비는 덕담을 했다. 아들도 무사히 훈련을 잘 받겠다는 각오를 식구들에게 보여 주었다.
아침 일찍 논산을 향해 달렸다. 대한의 건아들이 짧은 머리를 하고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입영식이 끝나고 내무반으로 향하는 아들이 자꾸 뒤 돌아 보았다.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훈련소에서 방송이 흘러 나왔다. 부모님께서는 부대 내의 시설을 돌아보시고 가라는 내용 이었다. 안 그래도 몹시 궁금했는데 다행이었다. 장병의 안내를 받으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모든 시설이 현대식 이었으며 식당의 배식도 뷔페로 차려져서 본인이 원하는 데로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남편은 달라진 시설을 세심히 살피 보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보기도 하였다. 아들이 신병 훈련 동안 6개월을 지내야 하는곳이므로 꼼꼼히 시설을 둘러 본 뒤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발길은 무거웠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텅 빈 훈련소 마당을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가슴이 저려왔다. 술을 마신다고 구박하고 야단쳤던 일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하여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도 마음이 아팠던지 말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들 방을 먼저 열어 보았다. 그날따라 휑한 방안이 유별나게 넓어 보였다.
남편은 일 중독자라서 밤10시가 되어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온다. 딸도 고3이라 보충수업을 끝내고 11시가 넘어서 귀가를 한다. 혼자 있는 초저녁 시간은 매일 아들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들의 베개를 베고 누워서 아들 냄새를 맡으면서 책을 읽고 주소를 몰라 부치지도 못하는 편지를 아들에게 썼다. 드디어 기다리던 소포가 왔다. 입대하던 날 입었던 옷과 신발이 온 것이다. 아들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소포를 풀고 옷을 꺼내드는 순간 코끝이 시큰 하고 가슴이 저려왔다. 그 속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뜯어 읽노라니 절절한 아들의 마음이 전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봉투에 있는 주소로 그간에 써두었던 편지를 한꺼번에 부쳤다. 이렇게 우리 모자는 그리움을 편지로 달래며 힘을 주고 위안을 받았다. 가끔씩 고3인 딸과 남편도 바쁜 짬을 내어 편지를 써서 고된 훈련을 이겨 내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봄이 되면서 내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골목시장에서 무리하게 장을 보아 무겁게 들고온 날 밤부터 양 어깨와 양팔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왔다. 며칠 견뎌보려 했으나 점점 심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잘못하면 전신마비가 온다며 어찌나 겁을 주는지, 그러나 맞는 말이었다. 걸음이 걸어지지 않아서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의 병원을 한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을 한다. 진료와 물리치료를 끝내면 두 시간, 마트에서 우유와 쵸코파이로 허기를 면 한 뒤 점심 약을 먹고 또다시 한방병원에서 침술치료를 받는다. 집에 도착하면 4시였다. 의사는 대중교통 이용을 못하게 하였으며 택시도 타지마라 했다. 사람이 많은 곳도 피하라,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거나 넘어지면 사지마비가 된다며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러므로 조용한 공원을 가로질러서 살살 걸어 다녀야했다. 병명은 급성 경추 탈출증이라고 했다. 손가락까지 바늘로 찌르는 통증으로 주방일 하기도 힘겨웠다.
그 와중에도 아파트 옆의 학교에 다니는 고3딸에게 저녁밥을 매일 만들어 울안으로
넣어 주었다. 그 시간이면 엄마들이 떼로 몰려와 자녀들에게 저녁밥을 건네주었는데, 아픈 중에도 힘들여 만든 저녁을 싸들고 걸었다. 열나절을 걷는 엄마를 기다리는 딸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지만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너무 늦어서 먹지도 못하고 밤늦도록 그냥 공부하고 오는 날이 면 내 가슴이 미어졌다. 아빠를 닮아 성격이 너무 곧다. 친구들은 순식간에 저녁을 다 먹고 공부를 한다고 한다.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므로 도시락을 먹을 수 없어서 그냥 가져 온다는 것이다. 어느덧 아들의 임관식 날이 되었다. 한 달 동안 받은 치료가 헛되지 않아 걸음의 보폭도 넓어지고 통증도 많이 완화되어 천만 다행이었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짐을 챙겨 차에 실었다. 밤새 만든 요리와 재료들을 한 상자, 각종과일과 과자를 한 상자, 버너와 전골냄비 등을 한 상자, 내가 운전을 할 수 없어서 남편 사무실에 기사가 운전을 해주기로 했다. 아들 단짝 친구도 함께 동승을 했다. 드디어 임관식이 거행 되었다. 음식 준비도 해야 하고, 불편한 몸이라 빨리 걸을 수도 없었기에 대기실에 남아 있었다. 아들은 엄마의 불편함을 모르므로 두리번거리며 계속 엄마를 찾았다. 아들 친구가 데리러 왔다. 그제서 아들 친구도 엄마의 힘든 상태를 알게 되었다. 아들에게 비밀인 것을 알고 엄마대신 ‘아버님과 같이 견장과 계급장을 달아주겠다’ 며 나갔다. 두 시간여 임관식이 끝나고 모두들 들어 왔다. 엄마를 보자마자 충성! 하며 각진 인사를 해서 아들이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펄펄 끓는 해물 탕을 보자 환호성을 울렸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픈 몸으로 힘들게 장만해간 보람이 있었다. 아들은 식사를 맛있게 하다말고 잠시 나가더니 한 친구를 데려 왔다. 조실부모로 누님내외가 키우며 공부를 시켰다는 그 친구는, 지금 가족이 오고 있다고 사양을 했다. 편하게 먹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족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우두커니 벤취에 앉아 있던 그 친구를 찾아내 억지로 팔을 이끌고 데려 온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 친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어려운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대견했다. 집 밥에 굶주렸던 녀석들은 어찌나 잘 먹던지 걱정이 되어 소화제 까지 먹여 주었다. 과일과 과자 까지 끊임없이 먹었다. 알고 보니 먹고나가서 토하고 또 먹고를 반복 하였다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 친구가 알려주었다. 이 미련한 짓은 오직 부모님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다니 웃을 일이 아니다. 짠한 마음이었지만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려고 그 애를 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6개월의 신병 훈련동안 부모님을 끔찍이 여길 정도로 철이 났다고 생각하니 아들이 새삼 고맙기도 했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도 신통했다. 철없던 아들은 어느새 든든한 청년으로 대한의 건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귀한 자식 일수록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 생긴 것이리라. 돌아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유월의 신록이 유난히 싱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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