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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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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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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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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5-11-19 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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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마니의 쌀
한 가마니 쌀
김 경 렬
스산한 바람에 오색 물결이 일렁거리는 들녘에는 추수하는 농심들 풍년 가락이 흥겹다. 논두렁 길섶으로 누렇게 황금색 짚가리가 쌓여간다. 한적한 길에는 갓 추수한 누런 벼들이 태양 볕에 겉옷을 말리고 있다. 쌓인 볏가마니를 보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쌀가마니 일화가 스크린처럼 뇌리에 펼쳐진다.
1995년 늦가을 이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가 있었다.
“여기 전라도 00성당 신부인디요, 겁나게 위급한 화상환자가 있는디요, 입원을 쪼까 도와주면 좋겠쓰요”
신부님은 급한 마음에 본토 사투리가 막 뒤섞인 SOS를 보냈다. 일반인도 아니고 반듯한 신부님의 입에서 사투리가 마구 튀어나와 웃음이 나왔지만. 오히려 훈훈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그곳 성당 평신도 회장이 화상을 입어서 지방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응급처치를 마친 의료진은 환자의 화상정도가 심하여 화상 전문병원으로 이송을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상 전문 병원인 우리 병원은 화상환자 전용베드 TO가 없다고 그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대기 하라고 했던 것이다. 다급해진 신부님이 원목 실을 찾게 되어 연결이 되었다. 나는 무슨 배짱이었던지 무조건 엠브런스로 출발하라고 했으며 도착하면 응급실로 입원을 하라고 하였다. 곧장 내려가 응급실의 수간호사를 만났다. 알고 보니 전라도 화상환자를 그곳에서 대기하라고 했던 장본인이었다. 수간호사는 화상환자 온열치료베드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면서, 지금은 모두 중환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중이라 언제 베드를 사용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큰일 났다. 차를 돌려야 하는데, 지금쯤 싸이렌을 켜고 불을 번쩍거리며 열나게 달려오고 있을 엠브런스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나는 특수치료 시설인 온열 베드를 모르고 있었기에 병실베드가 없다는 줄로 착각을 한 것이었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그 때는 핸드폰이 대중화 되지 않아서 일반 전화를 사용하던 시대였고, 시외 전화는 총무과에 신고를 하고 써야 했다.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내 마음이 급해졌다.
“신부님! 지금 응급실에 다녀왔는데요, 화상환자 전용치료베드가 따로 있답니다. 그것이 TO가 없어서 올라와도 언제 혜택이 돌아올지 모른다니 어쩌지요?”
“아! 엠브런스가 떠났당 게요. 무슨 수가 있것지라. 선생님이 어쩌케롬 잘 해결해 주시요”
세 시간이 지나자 엠브런스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응급실 수간호사는 큰일 났다고 난색을 표하면서도 환자를 위해 숨 가삐 움직이고 있었다. 우선 상태를 점검하고 응급 처치를 하였다. 워낙 중환자가 많은 곳이므로 처치를 마치고 내심 안도를 하는 것 같았다. 담당 교수님은 치료를 받으면서 온열치료베드를 기다리자고 하였다. 천만다행 이었다. 그 당시엔 고가의 수입품이라 화상전용베드가 귀한 때였다. 화상부위는 세포와 근육이 상해있는 상태이므로 체온과 같은 온도를 밤낮으로 유지해줘야 상처 부위의 부식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온열치료베드가 화상이 심한 중환자에게는 생사를 가름 할 수도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전국에서 화상 환자들이 몰리는 상황이었다. 환자B씨는 50대 초반으로 지방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농촌지도 출장을 나갔다. 짚을 뿌려놓고 논밭을 태우는 작업을 지도하다가 기름이 묻은 옷에 불이 붙어서 화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옆에서 마음 을 졸이던 B씨의 부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연실 고개를 꾸벅꾸벅 절을 하고 있었다.
몇일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애타게 기다렸던 온열치료베드를 차지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이제는 살았다고 기뻐하였고 초조하고 불안해하던 B씨도 안심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가슴위로 얼굴까지는 깨끗하여 피부 이식 수술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불행 중 다행 이었다. 담당 교수님은 이제부터 환부 관리를 잘하면 새살이 돋아나는데 좋은 결과가 기대 된다고 하였다. B씨와 부인은 입원을 하고나서 끈임 없이 신부님과 소통을 하며 정신적 위로를 받고 있었다. 틈만 나면 두 손을 잡고 기도하는 B씨 내외는 병동에서 칭찬받는 모범 환자였다. 우울하고 위축 되었던 B씨는 차츰 마음이 안정되어 갔으며 편안해 보였다. 내성적이라 평소 속내를 잘 보이지 않던 B씨는 이제는 잘 웃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한다. 치료가 잘되면서 상처는 날로 좋아지고 따라서 B씨의 모습도 많이 밝아졌다. 지속되는 통증은 약물치료로 잘 견디며 몇 차례에 걸쳐 피부 이식수술도 잘 이뤄졌다. B씨는 가끔씩 휠체어를 타고 상담실로 나들이를 올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B씨는 갖은 고생 끝에 드디어 퇴원하게 되었다. 입원 한지 3개월 만이다. 병실에는 장기간의 입원을 대변하듯 여러 개의 보따리가 올망졸망했다. 밖에는 처남의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다. 과묵했던 환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살려 주셔서 감사하다’ 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나는 당황하여 손사래를 쳤다. 사실 B씨는 운이 좋은 환자였다. 치료베드를 기다리는 동안 상처 부위가 많이 손상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치료 때 마다 담당교수님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환자와 부인도 눈치를 채고 가슴을 졸이던 그때, 온열치료베드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의료진도 기뻐했던 순간 이었다. 시간이 더 지체하면 다리 절단을 할 수도 있다고 하였었다. 답답한 마음에 B씨의 사정을 신부님께 소상히 알려 드렸다. 그곳 성당 교우들이 연이어가며, 고리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신부님과 교우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전해주었다. B씨는 큰 빚을 지고 간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B씨는 그 지방의 대학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다니며 일상으로 돌아가 직장 생활과 농사일까지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신부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해 초겨울은 일찍 추위가 찾아왔다. 옷깃을 여민 체 잔뜩 웅크리고 퇴근해 돌아오던 나는 현관 앞에 누런 쌀 한가마니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깜짝 놀랐다. 꼬리표에는 분명히 내 이름이 적혀 있는데 발신자 표지가 찢겨져서 알아볼 수 가 없었다. 일단은 현관으로 끌어 들였으나 쌀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잠자리에 누어서도 궁금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전라도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전에 B씨가 손수 지은 쌀을 보내드리고 싶다기에 병원에다 주소를 물어서 알려 주었다고 하셨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한편 당혹스러웠다. 병원에서는 가끔 음료나 케잌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동료들과 나누며 손님 접대를 하곤 했는데, 이 많은 쌀을 어쩔까 고민이 되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단골 떡집에 전화를 했다. 이 쌀로 가래떡을 빼서 20여개의 봉지에 넣어 병원으로 배달을 하도록 부탁하였다. 오후 늦게 따끈따끈한 떡이 도착 하였다. 어려운 환자와 B씨를 위해 수고한 간호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B씨의 따끈한 사랑이 여기저기서 웃음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쪽빛 하늘에는 하얀 솜털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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