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5-03-22 14:50

ㆍIP: 1.xxx.229

형아는 은행장
형아 는 은행장

김 경 렬
"형아! 형아는 얼마야?"
"형아는 이백 만원"
"내꺼 는 얼마야?"
"너는 칠십 만원"
갑자기 작은 녀석이 통장을 내 던지며 울기 시작했다.
"형아는 너보다 3년이나 먼저 태어났으니까 그만큼 저금을 많이 한 거야, 여기 좀 볼래? 형아는 너 나이 때 오십 만원 저금했네. 지금 너는 이십 만원 더 많으니까, 형아 나이되면 형아 보다 엄청 많이 저금할 수 있겠다! 그치?"
녀석은 이해가 되었는지 잠잠해 졌다.
녀석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큰 녀석은 여섯 살, 작은 녀석은 다섯 살에 통장을 하나씩 만들어 주었다. 이때부터 칭찬 토큰이 시작 되었다. 일찍 일어났다고 오백 원, 밥 다 먹었다고 오백 원, 인사 잘했다고 등 20여 가지 규칙을 정해 놓고 실천할 때마다 오백 원씩 계산해 주면 신바람이 나서 돼지 저금통에 쏙쏙 넣어준다. 그 밖에 시험 성적에 따라 액수가 커지고 대회에서 입상할 때, 태권도 급수를 딸 때 등, 갖가지 이유로 상금을 주면 커다란 돼지 저금통에 각자 이름을 찾아 넣어 주는데 그런 날은 저금통이 제법 배를 불린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돼지 저금통이 굶는 날이 많아졌다. 돼지들 배고프겠다며 가끔 선행 게임도 하고 끝말잇기와 알파벧으로 시작되는 단어 게임도 한다. 선행 게임은 오백 원씩, 낱말이나 단어 게임은 백 원씩 계산 하는데, 길게 잘 할수록 돼지에게 밥을 많이 줄 수 있는 보너스 기회가 되는 것이다.
드디어 커다란 돼지 저금통이 가득차서 수술을 할 때가 되었다. 돼지 한 마리가 무거워서 두 마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가 없다. 은행까지는 십여 분을 걸어야 하는데 녀석들이 손수레를 끌고 가자고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호하하 신이나서 재잘거리며 사이좋게 끌고 간다. 자기의 돼지에서 얼마나 나올까? 액수를 추리하면서 내기를 하자고 약속도 한다. 은행에는 동전 분리기가 있었다. 짜르륵 짜르륵 동전 분리기가 동전을 크기별로 배출 하는데 녀석들은 신기해서 정신을 놓고 바라본다. 계산이 끝나고 통장에 입금이 되었는데 작은 녀석 돼지의 액수가 조금 더 많았다. 작은 녀석이 내가 이겼다고 좋아 하니까 큰 녀석은 자기 통장의 총액이 더 높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역시 형답다.
지갑을 갖고 싶다기에 이번에는 작은 돼지 저금통과 어린이 지갑을 하나씩 사주었다. 동전만 저금통에 넣고 지폐는 따로 지갑에 차곡차곡 모으며 각자 미니 수첩에 적고 있다. 웃기는 일이 생겼다. 왜냐하면 녀석들이 동전을 돼지 저금통에 넣지 않고 따로 모았다가 할아버지한테 지폐로 바꿔서 지갑에 넣는 것이다. 바꿔준 동전을 보관해야 하기에 졸지에 돼지 저금통 주인은 할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갑이 차면 다시 큰 액수의 지폐로 바꾸고 녀석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은행창구다. 틈만 나면 지갑을 열고 지폐를 세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일찍 돈에 '집착'을 하는 것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그때마다 녀석들 수준에 맞춰서 돈의 소중함과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법, 저금한 돈을 은행에서 어떻게 활용 하는지를 자세히 알려 주었다. 몇 달 모으면 은행에 가서 통장에 입금을 한다. 은행에는 팝콘도 있고 사탕도 있다. 은행 누나가 저축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고 연필이나 지우개를 주기도 한다. 저금하는 날은 은행 아래층에 있는 돈까스 전문점에서 점심을 먹는 날이다. 녀석들은 그곳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선택에 따른 책임감으로 깨끗이 다 먹어 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큰 녀석이 2학년 때 꿈에 대한 일기를 썼는데 자신의 꿈은 '은행장' 이라고 했다. 은행장이 되어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고, 사업이 어려운 사장들에게는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어서 잘사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칭찬과 더불어 꼭 은행장이 되라는 격려를 받기도 했다. 큰 녀석은 본래 말이 없어서 가끔 글쓰기나 일기에서 생각이 깊은 것을 알 수가 있다.
통장을 내던지며 울던 작은 녀석은 어느새 의젓한 1학년이 되었다. 녀석은 감성이 풍부하고 창의력이 뛰어나 5세에 미술대상도 탔다, 또한 둘째의 특징인 형에 대한 경쟁적 기질이 다분하다. 가끔 통장을 꺼내 펴보며 형의 통장 금액과 자기 통장의 금액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계산을 해보고 이자는 얼마나 늘었는지 헤아리곤 한다. 계속 저금해서 돈이 많아지면, 멋진 집을 지어 엄마, 아빠랑 형아랑 같이 살겠다면서 3층 집을 그려 놓고 층 배정을 하기도 한다. 형아는 3층, 나는 2층, 엄마 아빠는 1층, 그러다가 갑자기 나지막한 소리로 형아를 부른다.
"형아, 돈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지? 집짓는 기술자가 돈을 많이 달라고
하면 모자랄 수도 있잖아"
"걱정 마 내가 다 도와줄께"
형아는 어느새 은행장이 되어있다.

노복선 2015-03-23 12:18	어제 문학세계 당선작에 실린 수필 형아는 은행장을 읽으며 손주들과 할머니의 사랑이 눈에 그려지며 훈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사랑으로 지켜보시며 쓰신 글이라 생각해 더욱 재미있게 읽었어요

김경렬 2015-03-24 08:00	감사합니다 노복선 시인님! 늦게 도착 하셨죠?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한번 날 잡읍시다. 감기 조심하시고~

정찬열 2015-03-28 11:37	자녀들의 교육은 꼭 말로하는 교육보다 실천하며 느기게 했을때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겁니다 아주 잘하신교육입니다. 저축을 할수 있는 심성과 돈의 가치를 바로 가르치는 산교육 이니까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늘 승필하시고 건안 하세요 김경렬 작가님!

김경렬 2015-03-29 14:33	정작가님! 안녕하세요? 칭찬을 주시니 부끄럽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필방은 과묵하신 분들만 다녀가셨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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