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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김숙자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4-08-10 15:29
ㆍIP: 108.xxx.86
D day -1일

                                                               연희동 김숙자

2층 거실에 올라오면 내 허리만치 차는 까만색의 이민 가방 열세 개가 우뚝우뚝 서 있다.
딸의 것 여덟, 노부부의 것 다섯 개이다. 노부부의 가방은 미국에서 일 년 반 동안 지내며 사용할
생활용품과 옷을 담은 가방들이다. 한 번에 일하지 못하고, 몇 가지씩 메모하며 짐을 꾸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빠진 것이 없나 생각하며 또 챙겨 넣고, 이러길 9일째,
드디어 내일(2014년 8월 8일), 이 짐들은 모두 인천 공항을 통하여 미국 뉴욕으로 갈 것이다.

 새로운 변화란 설렘과 기대도 크지만, 불안하고 걱정이 뒤따른다.
나이가 들수록 불안감은 더 심해지고 다가올 변화에 대한 적응에 자신감이 없어진다.
체력적으로 힘이 부치고, 귀찮다는 생각만 든다.
주변에서는 자식이 국비지원금으로 유학 가는데 뒷바라지 차, 노부부가 가니 얼마나 자랑스럽냐고
듣기 좋은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2001년 8월에 남편의 뉴욕 지사장으로 발령받았을 때의 기분과는 전혀 다르다.
그때의 설렘과 기대, 미국생활의 궁금함, 자랑스러움, 방학 때만 남편한테 가서 40여 일간 안정된 생활 속에서
방학을 보내던 그때의 기분과는 전혀 다르다.
장기간 집을 비워놓고 간다는 부담감, 외손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나의 체력으론 감당하기 힘들고
부담이 되는 그곳의 생활이 점점 두려워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곳 서울에서 누리던 나 자신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이 부족할 것 같고,
모두가 불편하고 풍족할 것 같지 않은 그곳의 생활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딸 앞에서는 이런 이기적인 어미의 심정을 내색하지 못한다.
딸인들 마음이 편할까?

딸은 미국 교환 교수로 떠나기 전, 법원 업무의 뒷마무리, 송별회, 지인들과의 만남, 아이들이 입학할 학교 선정,
미국거주의 주택과 차의 인수문제, 이삿짐 꾸리기, 어미 역할.......,
딸의 얼굴은 반쪽이 되는 것이다.

요즘 딸의 얼굴에서 힘들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다.
30여 년 전 살림을 하며 아이들 셋을 키우고, 또 학교에 나가고,
너무 힘들어 세월이 빨리 흘러 아이들이 성장하여 내 손길을 벗어나길 빌고 빌었던 그 시절,
그러나 끝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덧 자식들이 어미의 힘들었던 그 길을 한 걸음 한걸음 쫓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노부부는 7월 한 달을 이런 불안정한 생활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냥 떠나면 되겠지. 간단히 생각하였지만 할 일이 너무 많다.
은행 일부터 시작하여 건강 검진, 장기 복용하는 약 준비, 시골집 정리, 천안 집 정리,
서울 집 정리, 치과병원 가기 등,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왔다. 세 집의 이불 빨래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달의 전력 소비만 하여도 전달의 배가 된다며 한전에선 누전 확인 전화를 한다.

2년간 모임에 참석 못 하는 뒷정리도 만만치 않다.
모임의 네 곳의 장부와 회비 인수인계도 8월 5일의 마지막 모임으로 모두 끝을 맺었다.
'만일 죽음을 정리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할까?'

지난 일요일부터 외가에 와서 지내는 외손 형제도 무료한 듯 매일 EBS-TV만 틀란다.
순한 아이들이라 힘은 들지 않지만, 건강과 교육적으로 어떻게 돌봐줘야 할 것인가?
가끔 딸의 양육방법과 교육 방침에 의견 차이를 느낄 때, 내 자식이 아니고,
딸의 자식이라는 것을 마음을 돌려서 생각한다.
'야, 너희들 키울 때,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도 잘도 컸어.'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에게 큰 변화를 주는 것 같다.
자주 와서 놀던 외가에서도 어린아이들의 적응력 변화를 읽을 수 있겠는데,
'미국에서는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그곳 아이들과의 생활이 얼마나 큰 부담이 될까?'

제 감정을 다 표현 못 하는 저 어린 아이들은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40여 년 전, 옛날 내 자식 키울 때만 생각하는 옹고집의 노부부!  
2년간 미국에서 교육적으로 뒷바라지할 대책도 없이 손들을 돌보겠다고 쫓아가는 이 할미는
딸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것인가?
그러면서도 딸에게서 느낀 서운한 감정을 할아비에게 다 털어놓는다.
“이 나이에 내 돈 써가면서 딸 시중을 드는 신세가 되면 되겠어요?”
"독만큼 큰 애를 끌어안고 다녀요. 그 큰애들을 음식을 먹여줘요, 아이들만 너무 챙겨요......."
“......”

"얘, 아이들에게 집착하지 말고, 네 일만 열심히 해. 아이들은 우리가 돌볼 수 있지만,
네 일은 우리가 도울 수 없는 일이잖아?"
앞으로 이런 식의 잔소리가 얼마나 펼쳐질지......,
잔소리를 듣는 딸이나 손들은 마음이 또 불편하겠지?

 미국도 가기 전에 제풀에 지쳐버린 할망구는 내일의 시간이 두려워진다.
딸의 뒷바라지에 지칠 줄 모르는 남편은
“당신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도와줄게.”
이 할망구는 남편만 믿고 내일 이른 아침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할 것이다.

두 아들은 열두 개의 가방을 각자의 차에 나눠 싣고 뒤따라오겠지?
할망구는 든든한 두 아들이 있어서 발걸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2014년 8월 7일 Kimsj
이름아이콘 이순향
2014-08-11 17:19
회원사진 		뉴욕...멋지네요...ㅎㅎ....2년여 동안..좋은 추억거리도 많이 생기시리라 생각합니다..
김작가님의 든든한 남편과 함께 하시니...특별히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잘 다녀오세요...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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