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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08-20 10:51
ㆍIP: 121.xxx.201
슈킹 (29회)

 "그런데 무슨 사무실로 쓰실 건데요?"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일이에요."

 "몇 분이 계실 건데요?"

 "일단은 저희 둘인데 상황봐서 한 사람을 더 채용할까도 해요."

동수가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이 정도 넓이면 충분하지요. 저번 사람들은 5명이나 근무했는 걸요."

 주인은 빈 책상을 일일이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보증금을 안 받는 대신 임대료는 2개월 치를 선불로 주셔야 합니다."

 "통화 시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한 달 만에 빈 사무실이 되면 그때마다 정보지에 광고비를 내야 하고

관리하기가 힘들어서요. 다른 사무실도 다 마찬가지에요. 어차피 몇 개월은

계실 거 아녜요?"

 "아, 예. 그렇지요."

 주인이 현우를 보며 물었기에 당황한 그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동수가 갑자기 주인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는 밖으로 나갔다.

 주인은 자수성가해서 건물을 샀으며 부근에서 이 정도 사무실이면

싸게 얻는 거라고 침을 튀기면서 자기 자랑에 빠졌다.

 "지금 계약하기로 하지요."

 밖에 나갔던 동수가 앉으며 말했다. 아마도 동인에게 전화하여 승낙을

받은 듯 했다. 어느새 주인은 임대계약서와 물품확인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물품확인서에는 집기 등의 수량이 적혀 있었으며 이를 정상적으로 인수

받았다는 내용과 파손 시 책임지고 변상하겠다는 서류로 주인이 임의로

만든 문서였다. 대충 그것들을 읽은 동수가 서류 작성을 끝내고 서명란에

사인을 마친 후였다.

 "주민등록증을 좀 주시겠어요?"

 주인의 갑작스런 신분증 제시 요구였다.

 순간 곁에 있던 현우는 가슴이 덜컹했다. 만약 주민증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의심을 받거나 계약이 무효가 될 것이 아닌가!

 "여기 있습니다."

그때 동수가 일절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럽게 주민증을 그에게 내밀었다.

주인은 그가 건네준 주민증과 임대차계약서 임차란에 적은 이름과 주민번호가

일치하는지를 대조하였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가끔 불상사가 생겨서요. 서울 사람들은

매너가 좋으니 그럴 리가 없지만요."

 그는 동수에게 신분증을 달란 것이 미안했던지 주민증의 주소를 보고

지레짐작으로 동향임을 강조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비켜 나갔다.

 임대료를 받은 주인은 자기의 휴대폰 번호가 적힌 메모지와 사무실 열쇠를

주고는 나갔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고 실속은 모두

챙긴 것이라고 현우는 생각했다.

 주인이 나가자마자 얼른 문을 잠근 현우가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야, 미쳤어. 네 주민증을 보여주면 어떡해!"

 "괜찮아."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가 씩 웃더니 지갑에서 다시 주민증을 꺼내 현우에게 건넸다.

 "위조한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사진만 빼고 모두 가짜야. 네 것하고 한번 비교해 봐."

 현우는 자기의 주민증과 그에게서 받은 주민증의 안팎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이상한 점을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었다.

 "태극모양도 직인도 홀로그램도 모두 똑같아서 전혀 구별 못하겠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현우가 두 주민증을 바짝 붙여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글씨체 굵기가 조금 차이 나는 것 같지 않냐?"

그의 말을 의식하면서 현우가 자세히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내 것이 조금 진한 것 같기는 한데 네가 말해서 알지 언뜻 봐서는 정말

구별하기가 힘든데."

 한편으로 신기한 듯 현우는 두 주민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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