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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08-04 09:46
ㆍIP: 121.xxx.131
슈킹 (21회)

 K은행 과장에게서 시디가 사고 났다고 연락 받았을 때 '내가 저번처럼

직접 현금으로 찾자고 했잖아'라는 동수의 말뜻과 그의 '이번이 마지막'

이란 의미에서 굳이 처음이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몇 번째냐고

묻는 것이 현우의 궁금증을 푸는 것이고 정확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형이 한다면 준비는 제가 다 할 테니 몸만 와서 도와주면 돼요. 넉넉잡아

한 달 안에 끝나요. 형이 고생한 건 앞으로 직장생활 안 할 만큼 충분히

보상할게요."

 "그래, 현수야. 우리 동인이 믿고 함께 해 보자. 동인이가 이쪽으로는

도통했다고 봐도 돼. 지켜보면 아마 깜짝 놀랄 거야."

 동수가 그의 말을 거들더니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현우를 향해 내밀었다.

 "현수야, 하는 거지. 응? 응?"

 어느새 들뜬 기분이 된 동수가 그의 승낙을 재촉하며 자꾸만 되물었다.

현우는 오늘 하루 일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정리되지 않은

프로그램이 뒤섞인 양 혼란스러웠다.

 "동수야, 너 마음은 알겠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건 현수 형 말이 맞아요. 형에게도 결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너무 재촉하지 마!"

 동인이 손사래를 치며 동수를 향해 눈을 부아렸다.

 "형이 만약 안 한다면 우리도 같이 할 사람에게 빨리 연락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모레 오전까지는 확답을 줘야 해요. 세부적인 것들은 형이 합류하면 그때 말해

줄게요. 전 형을 믿어요."

 한쪽 눈을 윙크한 동인이 슬며시 웃으며 믿는다는 말을 강조하였다. 그의 이 말은

은연중 현우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도 나 자신의 마음과 능력을 모르는데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모두 배고프지 않아? 어디 가서 저녁이라고 먹자."

 동수가 가리키고 있는 카운터 위의 벽시계가 이미 9시를 훨씬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커피숍 근처의 음식점에서 식사가 나오기 전에 먼저 술을 시켰다.

빈속에 소주를 연거푸 마신 현우는 하루 동안의 긴장이 풀리며 금방 취기가 올랐다.

 택시를 탄 그의 귀에 동수의 작별인사 소리가 멀리서 아스라이 들렸다.

 현우는 그들과 헤어져 불 꺼진 방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돈 욕심도

있지만 불안하고 두려웠다. 앞으로 자기가 선택하는 길이 과연 옳은 길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에게 물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머리가 터질 듯 욱신거렸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일생의 고질로 남아 나를 괴롭힌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닌가!

 그는 태어나서 하루가 이렇게 길고 복잡한 날은 처음이었다.

'이건 분명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현우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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