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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2-13 16:37
ㆍIP: 124.xxx.149
슈킹 (100회)

 갑자기 돈 봉투를 받은 여자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시면 먼저 제가 지정해 주는 은행의 통장을 이번 주 안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일 시작 전에 한 번 더 저를 만나셔야 합니다. 그때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갖고 나오시고 각서도 써야 합니다. 일요일 안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여자에게 형식적으로나마 각서를 받아야 엉뚱한 생각을 안 가질 것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녀가 머뭇거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제 주위에 저처럼 어려운 처지의 친구가 있는데요. 가능하다면 그

친구도 하면 안 될까요? 그 친구는 저보다 똑똑해서 이런 일 맡기시면 잘할

거예요. 친구도 지금 엄청 힘든데 저도 이렇다 보니 도움을 줄 수가 없었는데

함께 이 일을 하면 큰 보탬이 될 것 같아서요."

 여자는 떨리는 음성으로 그에게 호소하듯 바라보았다. 현우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길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본 그가

2층 커피숍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어느새 거리에는 완전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여자와 만난 커피숍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무려 다섯 정거장의 거리였다.

일부러 집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에서 만난 것이다.

 거의 한 정거장 거리를 지나쳤을 때 어느 음반 가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 보니 성탄절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오늘을 제외하면 이제 디데이는 7일밖에 없다. 요사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자신도 모를 만큼 긴장의 연속이었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중단된 공사장 빈 공터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다. 천막 안에서 다정하게 술 마시는 두어 쌍의 남녀 그림자가 비쳤다.

갑자기 허기를 느낀 그는 포장마차로 들어가 우동과 소주와 간단한 안주를

주문했다.

 그는 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첫 잔을 털어 넣은 그는 내일 할 일을 검토했다.

두 번째 잔을 들이킨 그는 모레 할 일을 생각했다. 세 번째 잔을 마신 그는

글피에 할 일을 계획했다. 마지막으로 따른 잔 속에는 쓸쓸한 사슴의 눈빛을

닮은 수혜의 검은 눈동자가 담겨 있었다.

 현우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앞산 등선에 걸려 있는 반달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를 처연하고 고독 뒤에 숨겨진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저께 그녀와 만났던 기억이 아스라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수혜 씨, 강 실장입니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생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편지봉투를 손에 쥔 그녀가 투명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전에 사무실에서 입었던 흰 반코트와 분홍색 털목도리를 걸친

모습이 마치 백설 공주를 연상케 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마지막 타임의 어린이 어머니께서 늦는다고 하셔서

함께 기다렸다가 집에 들렸다 오는 바람에... 일부러 저 때문에 수고하시는데

죄송해요. 늦은 벌로 오늘 차는 제가 대접할게요."

 살짝 숙이는 고개 밑으로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감추어지더니 어느새

해맑은 미소로 바뀌었다.

 "수고는 뭘요. 어차피 지나는 길이었는데요."

 현우는 그녀가 건네는 서류의 내용물을 형식적으로 보는 척했다.

 "식사하셨어요?"

 그녀 앞에서 특별히 할 말이 없거나 말문이 막히면 자기도 모르게 이 말을

내뱉는 자신이 이상했다.

 "집에 가서 엄마와 동생하고 먹으면 돼요."

 카페의 벽시계는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 뒤를 따라 일어선 그가 계산대 앞에서 잽싸게 먼저 돈을 냈다. 당연히

자기가 계산할 줄 알았던 그녀는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는 듯했다.

 "아직 저한테 차 한잔 사셔야 되는 거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가 씩 웃자 그녀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카페를 내려오며 그가 길

건너편을 손짓하며 말했다.

 "수혜 씨, 집이 저쪽 방향이지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수혜 씨가 언제 등장하시나 하고 2층에서 눈 빠지게 뚫어져라 보고 있었지요.

1박 2일을 그렇게 보고 있는데 그쪽에서 백설공주가 걸어오고 있었어요.

공주를 발견한 지점까지 제가 일곱 난장이 역활로 보디가드를 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저의 호의를 거절하시면 받은 서류를 접수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입니다."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현우는 이 멘트를 날리기 위해 몇 번이나

연습은 했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신의 천재성에 놀라고 있었다.
이름아이콘 장인성
2013-12-14 08:35
회원사진 		슈킹 100회 연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간의 노고에 찬사를 보냄니다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갑오년 새해에는 뜻한바 소원했던 일들이
이루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100회 연재에 즈음하여 감사를 드림니다.
   
이름아이콘 이인철
2013-12-17 10:20
회원사진 		《Re》장인성 님 ,
장 시인님의 축하와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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