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3-17 21:23

ㆍIP: 118.xxx.100

봄날 도시 나들이,

도시에 살 때는 쉬는 날이면 하릴없이 북한 강변을 돌아오는 나들이를 일삼아 하고는 했다.
지금은 좀 먼 거리를 가려면, 연료비가 신경 쓰여 망설이게 되는데 연료비 걱정을 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봉급쟁이 신세였지만 그때가 지금보다는 한결 형편이 나았던 듯싶다.
가 봐야 막국수 한 그릇 후딱 비우고 중간에 강변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다였지만
왜 기를 쓰고 쉬는 날이면 나들이를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오가는 길에 멋진 범선 모양의 강가 휴게소(지금은 없어진 듯)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고,
이포교 부근의 천서리 막국수나, 소양강 선착장 인근의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 한 그릇 비우면
돌아오기 바빴던 나들잇길, 더욱 애들은 막국수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세상을 산 셈이다. 지금 같으면 애들이 따라나서려 하지 않을 게 뻔한데, 한 번도 애들이 가지
않겠다고 반기를 든 적이 없으니 가장의 권위는 지키는 행복한 시대를 살아온 셈 아닌가,

요즘은 양평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나들이를 거꾸로 서울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화창한 봄날 그대로 있으면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들이를 작정하고 보니
나들이도 뭔가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교보문고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예전에는 책을 꽤 사 읽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책과 멀어진 자신에 대한
반성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칙적 출퇴근이 없는 생활을 하다 보면 외출 시 마다 차를 두고 가, 말아. 고민하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할 것 같지만, 평소에 타지 않던 사람은 오히려 불편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요즘은 길을 못 찾아 헤매는 경우는 별로 없어 다행스럽긴 하지만,
폰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면 어디서 갈아타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를 정확히 안내하니 좋은 세상
이긴 하다. (친절한 폰은 중앙선을 타고 청량리까지, 1호선으로 갈아타고 종각에서 내리라고 했다 )

종각에서 내려 교보문고를 가려면 피맛골을 지나게 된다.
예전에는 나지막한 처마 사이로 좁은 골목길에 생선구이 전문집이나 전집이 많아 음식 냄새가
진동하던 곳인데, 지금은 완전히 피맛골이 탈바꿈되어 있었다.
일본의 도시 골목길을 걷고 있지 않나 착각이 들 정도로 세련된 작은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어
깨끗해지고 위생적으로는 좋아 보이긴 하지만, 옛 운종가의 피맛골 흔적이 지워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둘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것을 보면,
지워져 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보는 듯 마음이 착잡하다.

이태조께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실 때, 도시 계획을 한 분이 삼 봉(정도전)이라고 한다.
오백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수도로서 기능을 잘하는 것을 보면, 좋은 터를 보는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광화문 앞에서 종로통까지 상당히 넓은 도로가 뚫리고 양옆으로는
관청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안쪽으로 육의전을 비롯한 점포들이 밀집해 도로를 잠식하고
있다가 임금의 행차라도 있으면 다 헐어서 길을 넓혔다고 하니 임금의 행차도 백성에게는 원성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聖君이라던 정조의 화성 행차 길도 배다리 功役은 백성의 삶을 옥죄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관청에 출퇴근하는 양반들의 행차와 관련된 얘기들이다.
가마나 초헌에 올라탄 대감들이 행차할 때면 시종들의 벽제 소리가 요란했고, 일반 백성이나
품계가 낮은 관리는 높은 분의 행차를 만나면 얼른 내려서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관청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보니 수시로 이런 행차와 마주치게 되어 겪는 불편은 상상이 간다.
이런 불편 때문에 가능하면 높은 분의 행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만든 샛길이 피맛골이다.
품계가 낮은 관리는 높은 분의 벽제 소리가 들리면 얼른 행차를 접고 피맛골에 피해 있다가 행차가
지나면 다시 요란하게 거들먹거리며 행차를 했다니 구경하는 백성들은 웃었을 듯싶다.

화창한 봄 날씨에 도시는 활기가 넘쳐 흘렀다.
점심시간이 되니 인근의 샐러리맨들이 일찍 점심을 끝내고 봄볕에 해바라기를 하기도 하고
간이 커피숍에 줄을 서 커피를 사는 모습도 보여 따뜻한 봄 날씨와 한가롭게 어우러진 평화로운
도시의 모습이 정겹게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마냥 평화롭지는 않은가 보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어두운 도시의 치부와 갈등이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가한 봄볕에 나른한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벤치를 차지하고 고단한 삶의 모습을 보였다. 보신각 주변 벤치에는
노숙자들이 깔고 잔 이불이 그대로 펼쳐져 있거나, 아직 누워 자는 사람, 추위를 피하려고
사용한 종이 상자를 묶어 곁에 두고 모여서 뭔가를 먹고 있는 사람, 도시의 일원이기를 거부당한
또 하나의 집단이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은 아예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삶을 당당히 펼치고 있었다.

서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에는 온갖 사회단체의 농성 천막이 펄럭이는 깃발 아래
자리하고 있었고,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묵묵히 갈등의 현장을 바라보고 계셨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세련된 도시, 각자의 일에서 해방되어 점심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
벤치를 차지하고 잠을 자거나, 모여서 술을 마시는 노숙자, 탄핵 통과로 한숨 돌린 듯한 농성장의
온갖 구호, 펄럭이는 깃발들, 따사한 봄볕 아래 정물화를 보는 듯 나른한 풍경이었다.

교보문고에서 책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일본어 회화 교본, 하나는 승마에 관한 지침서,
배가 고파 피맛골에서 점심을 먹었다. 신세대를 위한 퓨전 식당만이 즐비해 상대적으로 촌스러운
입맛을 탓하며 밥은 먹었다. 배는 고팠지만 입맛은 깔깔했다.
"원래 봄철에는 입맛이 없는 게 정상이지" 모처럼의 나들이에 봄 투정 만 한 셈 아닌가?

피맛골, 소운/박목철

걸쭉한 탁배기에
두툼한 빈대떡을 떠올렸다
잘 구워진 꽁치 토막까지
카레에 된장국,
낯선 조합에 깔깔해진 입맛
봄 탓을 했다.

저마다 분주한 도시의 일상
나만, 하품하듯
피맛골에 취했나 보다
요란한 벽제 소리에 혼이 나가
손바닥만 한 밥집에서
행차 지나기를 기다리며 넋을 놓았다.

* 초헌 - 조선 시대 종 2 풀 이상이 타던 바퀴가 하나인 수레,
벽제소리 - 고관이 행차할 때 잡인의 통행을 금하기 위해 외치는 소리(물럿거라, 등)

김종근 2017-03-18 11:55	소운 작가님 반갑습니다. 봄날 도시 나들이 ~ 감사히 배독합니다. 저도 과거에 서울서 30년을 살았었습니다. 지금은 구미로 내려온 지 12년정도 되었습니다. 서울시 구석구석 정취가 느껴집니다. 귀향하고서는 아직도 서울땅을 밟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처가도 서울이고 모친도 서울 계시지만 일을 핑계로 명절이면 모친과 동생들이 내려오지요. 서울의 나들이 간접 체험합니다.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이석희 2017-03-20 11:20	소운님 반갑습니다. 피맛골! 이름이 하도 이상해서 궁금하다 싶었는데 참 재미있군요. 그랬을 법 합니다. 요즘 사극을 보면 대강 짐작이 가거든요. 소운 님 덕택에 오늘 아침 한양 구경 잘 하였습니다. 이곳 충주는 그런 아기자기한 정감이 가는 골목이 없답니다. 워낙 사람이 적게 사니까요.

김강좌 2017-03-21 00:17	저는 아직 가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몇군데 밖에 알수 없는 서울 나들이. 제가 직접 가본곳이 몇군데 되지 않습니다 TV에서 볼수있었던 서울 도심지 이곳저곳의 모습들을 돌아보며 작가님의 나들이길에 동행해 봅니다~^^ 기쁜 마음으로 머무름합니다~ 늘 건안하시옵고 향필 담으시길 빕니다~^^

백낙은 2017-03-22 21:07	소운 작가님. 멋진 나들이를 하셨군요. 갈등의 현장을 보신 이순신 장군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을 텐데 작가님이 우정 숨기신 듯합니다.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어 마음이 아픔니다. 교보문고에서 일본어 회화 교본과 승마에 관한 지침서를 사셨다는 말씀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열정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미국 분, 미국 사람, 미국 놈"(순서가 맞는지 모르겠지만)이란 책을 읽고 왔습니다만 퍽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저도 이제부터라도 일본어 해화를 좀 배워야 하겠네요. 결단을 부추기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봄날 만드소서.

김상화 2017-03-23 18:03	소운 작가님 글이 참 재미있게 쓰셨네요 서울에 거주한지 40여년이 넘어도 종각에 피맛골 이란 이름을 작가님의 글 속에서 알게되었습니다 더구나 20여년 전에는 제 사무실이 종각에 있었는데도 거리 이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재미있게 빚으신 봄날 도시 나들이 잘 배독하고 갑니다 작가님 봄입니다 나들이 많이하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정찬열 2017-03-23 20:12	소운작가님! 엊그제 봄행사때 반겨주시여 정말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봄날 도시 나들이" 한양의 냄새에 빈약한 저로서는 어느 한편의 역사의 거리를 보는 것같아 도심에대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일본을 자주 다니시든 작가님께서도 일본어 회화 교본을 사셨다고 하니 그열정에 다시한번 큰박수를 드립니다. 좋은글 많이 올려주시고 건안 하시길 빕니다.

김경렬 2017-03-24 03:23	봄나들이를 도시 한복판으로 가셨습니다. 피맛골! 정겨운 이름 오랫만에 들어 봅니다. 광화문 광장조성은 훌륭했는데 소란장이 되어 저도 실망했답니다. 뜻깊은 글 감사합니다. 딸이 갑자기 육아 휴직중에 복직을 하게되어 제 계획이 엉켜서 심신이 분주하고 고단합니다. 감기까지 겹쳐서 힘이 드네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형제(2)

알아서 긴다. (日曜放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