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6-19 15:57

ㆍIP: 118.xxx.100

소운의 日曜放談(고래, 봄날은 간다)

소운의 日曜放談(고래, 봄날은 간다)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고래,

고래는 슬픈 동물이다.
거대한 체구를 더 뭍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바다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나
세상 이치가 그렇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TV에서 들어 본 고래의 소리는 선입견 탓인지 애잔하게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뭍에서의 삶이 버거워 바다로 피신한 고래를 사람들은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잡았고,
얼마나 잡았으면 씨가 말라 보호 동물로 지정해야 했으니 고래는 역시 슬픈 동물이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서울 애들이 부산으로 전학이라도 오면, 부산 애들은 서울 말투를 놀리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덩치 큰 고래를 설마 사람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맛좋은 고래고기라 한다.
그때부터 고래 고기를 사람이 먹기도 하고, 노래로까지 맛있다고 하니 고래 고기는 맛이 좋다
라는 막연한 생각이 자리 잡았지만, 한 번도 고래 고기를 먹어 볼 기회를 얻지 못해 언젠가
먹어 봐야지 하는 생각만 늘 있었다.

서울에서 자게 되는 날이면 저녁을 때우기 위해 석계역 주변을 서성이게 된다.
뭘 먹을까 쉽게 정해지지 않아도 석계역 주변을 몇 바퀴 돌다 보면 이걸 먹어야지 하는 메뉴가
정해지게 마련이다. 버릇처럼 간판을 훑으며 걷다 보니 "고래 고기" 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자주 오는 곳인데, 아마 무심코 스치며 생각 없이 보니 보고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식당에 자리 잡고 메뉴를 찬찬히 살폈다. 고래 고기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시키기에는 마땅치
않은 안주임을 깨닫고 간단히 먹자 하는 마음에 막 회를 시켰다.
막걸리도 그렇지만 막 자가 들어간 음식은 왠지 소박하고 거칠지만 정겹게 마련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 회는 싱싱한 생선과 싱그러운 채소가 어우러져 맛이 산뜻했다.
기대하고 시킨 음식이 맛없으면 짜증이 나듯, 기대 없이 시킨 음식이 맛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웠다. 한 눈에도 경상도 사나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주점 사장이 살갑게
말을 걸어 왔다. 우리 집 문어 숙회가 아주 일품이라 맛보시라고 좀 가져 왔다며 접시를 내밀었다.
한 점 집어 맛을 보니 쫀득한 게 식감이 아주 좋았다.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굿! 칭찬했더니,
물회도 한 번 맛 보이소, 먹성이 크지 않아 손사래를 쳤지만, 기어코 물회도 내 앞에 놓였다.

간단하게 한잔 마시고, 의 처음 생각은 멋진 경상도 사나이 인심에 쉽게 무너졌다.
지척에 있는 이은경 작가의 부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계역 앞인데 안주 남았으니 한잔하러 나오지"
애주가는 취기가 오르면 가까운 이에게 전화를 걸거나 불러내게 되고 대게의 경우 달려 나오게
마련이다. 저녁을 방금 끝냈다는 이은경 작가 부부는 싫은 기색 없이 소주잔을 마주쳐 주는 우정을
보였다. 술이 술을 마신다는 옛말을 실감하게 되는 술자리의 시작이다.

기분 좋게 떠들며 마시다 보니 식탁 위에 고래고기가 한 접시 놓여 있었다.
신나게 떠드는 우리의 술자리가 맘에 든 인심 좋은 사장이 부담 가는 서비스를 한 것이다.
고기에 붙은 기름을 때어내는 이은경 작가를 보고 사장이 손을 저었다. "오메가 덩어리인데 떼지 마소"
한 점을 입에 넣은 작가의 반응을 기다렸다. "냄새가 하나도 안 나요" 까칠한 분이 이 정도 반응이면
일단 맛은 합격인 셈이다. 그토록 궁금하던 고래 고기를 드디어 입에 넣게 되다니!
"담에 아빠들 모임 여기서 고래 고기 안주로 하면 되겠네" 이은경 작가가 부군에게 이렇게 권했다.
슬픈 동물 고래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고래, 소운/박목철

키
2m도 안 되고
조아(爪牙)도 무기급과는 거리가 멀고
백 미터를 10초 대만 뛰어도
와!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

몸무게 수십 톤의 덩치들
이빨, 발톱, 사납게 세웠어도
멸종 아니면 보호 대상이라지,

바다로 달아나
속 편하게 사나 했는데
뭐야?
주점 식탁 접시 위에 달랑 얹혀서
맛 좋은 고래 고기라니,

고래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탁 털어 넣으며
고래야 미안하다.

봄날은 간다.

강릉을 다녀오는 길에 봉평에 비워 둔 집을 찾았다.
큰딸이 살다 눈이 하도 내려 겨울이 무섭다며 양평으로 이사하고 비워둔 집이다.
처음 지을 때는 주변에 나무 한 그루 없었지만, 열심히 이것저것 심은 나무들이 자라서
집이 가려 안 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집은 비워 두면 안 된다는 말이 있듯, 마당을 들어서려니 잡초가 우거져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호랑이 나오게 생겼네" 딸과 나는 넋을 잃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날을 잡아 잡초 제거에 나섰다. 제초기도 사고 톱으로 가지도 치고 집이 집 같아졌다.
하루 만에 끝낼 일이 아니라 남은 일은 내일 하기로 하고 숙소 옆 곱창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원래 술은 놀고먹으면 맛이 없는 법, 특히 막걸리는 땀을 흠뻑 흘린 후에 마셔야 막걸리의
참맛을 느끼게 된다. 노동 후에 먹는 막걸리는 트림도 나지 않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취기도 오르고, 숙소에 들어가 자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에 "노래방에 가서 노래나 하자"
"둘이서요?"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딸을 앞세워 노래방을 찾았다. "한 시간 만"

막상 노래방에서 노래하려니 흘러간 세월만큼의 세대 차를 실감했다.
딸이 부르는 노래는 내가 생소하고, 생소하니 흥이 날 리 없어 멀거니 앉아서 구경해야 했고
내가 부르는 노래는 딸이 신나 하지 않았다. 딸이 부른 노래는 제목도 모르겠고, 소운이 부른
노래는 내 고향 충청도, 고향 역,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그건 너, 이런 노래였던 것 같다.

별로 할 노래도 없고 흥도 안 나고 해서 나머지 시간은 혼자 불러라, 라고 말 할 즈음에
딸이 선곡한 곡이 뜻밖에도 -봄날은 간다-였다. 너무 반가워 그래 그 노래 정말 좋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노래 1위로 선정된 적도 있다던데, 신나서 자세를 잡고 노래를 기다렸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아! 세대 차는 메꿀 수가 없다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름도 생소한 여 가수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는 소운이 알고 있는 봄날은 간다 와는 거리가 멀었다.

곡이 끝나고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를 틀어 달라고 부탁했다.
반주가 흘러나오고, 나는 멜로디에 취했지만, 딸의 표정에서는 -궁상맞게-가 여실했다.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 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애잔한 가락에 구성지게 늘어진 가사, 가사가 주는 의미보다는 봄날이 간다는 지는 의미에
가슴이 싸아 해지는 노래가 봄날은 간다 이다. 나는 취해서 노래를 불렀지만, 딸은 곡이 너무
느려서 못 부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봄날은 간다를 사랑하는 분들은 대게 나이가 중년을 넘기신 분들이리라
봄은 청춘이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허무만이 가득한 나이에 지는 봄의 아쉬움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공감하려면, 봄날이 가봐야 알지 않겠는가?
누구나 봄이 있고 또 봄이 지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내 딸도 봄날은 간다가 가슴에 닿을 것이다.

봄날은 간다. 소운/박목철

간만에 노래방을 찾았다.
세월이 쳐 놓은 벽이 높았다

딸이 선곡한 봄날은 간다는 봄과
내가 선곡한 봄, 의미가 달랐다.

딸의 봄은 서럽지 않았고
장사익의 봄은 세월에 삭아 흐느적거렸다.

먼지 뽀얗게 이는 신작로 너머
기진한 내 봄이 서럽게 보였다.

정찬열 2017-06-19 17:02	소운작가님! 이번 여름행사때는 지난 봄행사때처럼 가볍게 앉아주시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두리번 거렸지만 뵐수가 없어 다소는 아쉬움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황우 위원장님도 보일질 않았고 내심 텅빈느끼이었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고래고기 20여년전 부산 자갈치시장 부근에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는 고래고기를 친구의 권유에 소주잔에 비운맛이 되살아나는것 같습니다. 술한잔 끝에 비록 세대차이나는 따님과 함께하신 자리 부럽습니다. 속으로 저역시도 장사익에 "봄날은 간다를"를 부르며 재미나게 배독하고 맺습니다.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오후 편안 한 시간 되세요

장계숙 2017-06-20 06:44	소운 작가님~ 늘 멀리서만 뵙습니다. 아직은 어렵게 느껴지는 터라~^^ 멋진 글을 두편이나 주셔서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에 즐거움으로 배독했습니다. 고래고기 맛은 좋았나요? ㅎㅎ~ 세월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 함께 합니다.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건강하셔요.!!!

이석희 2017-06-20 10:14	소운 작가님! 감칠 맛 나는 글솜씨에 취하여 단숨에 글을 배독하다 보니 전날 대구살 때 맛보았던 그 고래고기가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 겨우 진정되었나 싶었는데 연 이어 막회에 문어에 물회까지 거기에 더하여 이제 막걸리와 소주까지 누구 숨 넘어 가게 하실 일이 있나 싶습니다. 이게 끝인가 했더니만 드디어 곱창에 막걸리 마침내 노래방으로 마침표를 찍기까지 이 늙은이 참 환장하게 하십니다 그려! 연기 자욱한 굴속에서 구워먹는 막창까지 나왔더라면 정말 미쳐버렸지 싶습니다. 쩝쩝...아주 재미있게 배독하였습니다. 배가 터질 지경입니다. 허허허

백낙은 2017-06-20 10:19	소운 작가님. 소운의 일요 방담 잘 보았습니다. 고래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울산에가면 고래 명소가 있는데 장생포지요. 매년 고래 축제도 하는데요 옛날에 가끔 먹어 보기도 했습니다만 서울에서도 고래고기를 판매한다니 의외입니다. 고래고기는 열두 가지 맛이 난다고 하는데 저는 고급은 먹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고래고기 안주에 막걸리 한잔 하면서 그 기분을 느껴 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저도 갱상도 사낸데 식당 주인을 칭찬하시는 것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먼지 뽀얗게 이는 신작로 너머 기진한 내 봄이 서럽게 보였다." 이 귀절이 나를 서럽게 합니다. 공감할 수 있는 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안하시고 좋은 글 나누기를 원합니다.

김종덕 2017-06-20 11:45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고래고기늠 부산 자갈치 시장에 많이 나와 있읍니다. 부산가시면 들러보십시오. 봄날은 간다. 이곡은 색소폰으로 연주하면 가슴아프고 따갑고 눈이 쌀쌀하게 다가오지요. 말씀대로, 그봄날의 의미는 그 봄이 와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7-06-22 09:41	《Re》정찬열 님 , 책도 출간 하시고 꼭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허리를 다쳐 부득불 뵙지 못했습니다. 글로 나마 축하 드립니다. 독자들에게 사랑 받고 베스트 반열에 오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하시고 다음 행사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박목철 2017-06-22 09:44	《Re》장계숙 님 , 장계숙 작가님, 어제나 진솔한 댓글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활발한 문학 활동 박수도 보냅니다. 다음에 뵈면 인사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시고 행복 만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박목철 2017-06-22 09:47	《Re》이석희 님 , 이상하게 술 마시는 얘기가 늘 반복 된듯 하여 민망합니다. 저는 고래고기를 접 할 기회가 없었는데, 드셔 보셨군요, 술 마시는 사람은 말 안해도 서로 통하는 게 있다는 생각입니다. 언제 기회 되면 소주라도 한 잔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지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

박목철 2017-06-22 09:51	《Re》백낙은 님 , 바쁘신 거 잘 아는데 늘 챙겨 주시는 위원장님의 배려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래 고기 중 고급 부위는 전부 일본으로 수출 된다고 들었습니다.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위원장님께서 경상도 분이시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따뜻한 눈길 변함없이 기대 하겠습니다. 위원장님,

박목철 2017-06-22 09:53	《Re》김종덕 님 , 자갈치 시장에 한 번 들려봐야 겠습니다. 좀 고급 부위를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늘 건강하시고 멋진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작가님,

김상화 2017-06-22 14:13	박목철 작가님 참 삶을 평범하면서도 서민적으로 잘 빚으셨습니다 고래고기의 맛을 저도 20년전에 부산에서 보고는 아직 먹을 기회가 없어 근레는 한번도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전 행사 때 뵙고 싶었는데 제가 갑짜기 일이있어 참여를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날씨가 나날이 불볕더위로 치닫네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박목철 작가님!

소운의 일요 放談(쓴맛 예찬)

석양(夕陽) 동반이 멋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