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무와 인생살이 / 황우 목사 백낙은(원)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많이 서식하고 있는 소나무는 우리 서민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무이다. 소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니 너무나도 흥미롭다. 솔이라는 말은 “수리”라는 우리말에서 나온 말로 우두머리, 으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송(松)이라는 한자는 나무 목(木)변에 벼슬 공(公)자 인데, 이는 나무 중에서도 벼슬을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나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더러는 껍질이 거북이 등을 닮았다고 하여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소금이라는 말의 의미로는 '작은 금'(小金) 으로 불려 졌다는 말도 있지만, 소금이라는 우리말의 유래는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牛)와 금(金)을 합한 것만큼 귀하다는 뜻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같이 소나무는 소(牛)와 닮은 나무라는 의미일 것이다.

옛날 농경사회에 있어 소(牛)는 그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더 요긴한 존재였다. 소 한 마리는 곧 전 재산과 같은 것이었다. 그 소로 농사도 짓고, 소를 길러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시집 장가도 보내곤 했었다. 그래서 소를 애지중지하였기에 정성들여 아침저녁 소죽을 끓여 먹여 키웠던 것이다. 그러다가 소는 마지막에 피와 살, 그리고 뼈와 가죽까지 인간에게 모두 다 주고 가는 것이다.

이같이 소나무도 소(牛)만큼 귀하고 요긴한 나무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도 솔가지를 금줄에 걸었으며,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면서 소나무나 그 잎을 태워 지은 밥을 먹고 살다가 소나무 관에 들어가 일생을 마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소나무는 우리 인생살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무이다.

해방 전에는 농사지은 양식을 모두 일제에 공출 당하고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많은 서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였었다. 그 때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소나무 껍질이었다. 소나무의 내피를 고스란히 벗겨 물에다가 며칠을 우려낸 다음 절구에 보드랍게 찧은 후, 곡식 가루를 조금 넣고 쪄서 송기떡을 만들어 먹었다.

먹을 때는 그런대로 먹을 만하고 배도 부르지만 뒤처리가 문제였다. 섬유질이 많은 음식이라 변비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견디다 못해 결국 나무 꼬챙이로 파내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만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같이 소나무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땔감이 되지마는 겨울철이면 나무 밑에 떨어진 갈비(말라서 땅에 떨어진 솔잎. 불쏘시개로 쓰이는 솔가리)는 아주 귀한 땔감이었다.

그리고 더 소중한 것은 다른 나무들도 다 그렇겠지만 우리 인간들의 삶에 아주 소중한 산소를 배출하고 일산화탄소를 흡수 한다는 사실도 관과 해서는 안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솔가지가 마르면 송진이 뭉쳐 옹이가 생기는데, 그 옹이 즉 관솔은 밤에 방안을 밝혀 주는 등잔불로 불 밝힘의 아주 유용한 재료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은 겨울이 되면 잎사귀까지도 다 떨어내고 겨울잠을 자지만 소나무는 그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사시 청청한 절개의 나무이기도 하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잘 자란 소나무를 보면 마음이 기쁘고 안정감과 함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이다.

이같이 소나무는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 금줄에 끼울 만큼 길(吉)하고 정(靜)한 나무이며, 배가 고플 때는 그 진피를 벗겨 먹던 소중한 나무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명(命)을 다하고 돌아갈 때에는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일생을 마치는 친근(親近)한 나무이다.

그런데 문제는 근래에 와서 그 소나무가 자꾸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제선 충에 감염되어 고사하는 소나무가 많이 보이고 있다. 제선 충에 한 번 감염이 되고 약 6일정도가 지나면 솔잎이 힘이 없어지고, 20일 정도부터 시들기 시작하며, 한 달이 지나면 그때부터 솔잎이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고사하는 병이다.

차를 타고 길을 가다보면 여기 저기 제선 충에 감연 된 소나무를 베어 쌓아 놓고 방수 천막으로 덮어 놓은 것을 여러 곳에서 볼 뿐만 아니라, 이미 말라버린 소나무들이 많이 있는데도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물론 이 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 방제를 해야 하지만, 아주 넓게 분포되어 서식하는 소나무를 모두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몇 십 년 후에는 우리 강산에서 소나무를 보지 못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정부 당국이 이 소중한 소나무가 우리 곁에서 모두 사라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모든 방제방법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과 애환을 함께해 온 이 소나무를 잘 지켜내, 소나무로 말미암은 푸른 강산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의 가사처럼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를 계속 부를 수 있게 해 주기를 정부 당국에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