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하던 일이 시원찮아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막내아우가 5층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하여

별로 해 본적은 없지만 허드렛일을 하기로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던 중 무거운 물건을 버겁게 나르다

그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잠시 정신이 아득하고

손발이 내 마음대로 통제가 안되어 119를 불렀다.

하지만 잠시 누워 있으니 정신도 제대로 돌아오고

몸도 통증은 있으나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동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약속했던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시고 와서 잠이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부딪쳤던 것 같은 어깨 가까운 부분의 양팔이

욱신욱신 쑤시고 전에 퇴행성 관절로 고생을 하였던

오른쪽 무릎 부위가 시퍼렇게 붓고 멍이 들어

도저히 마음대로 구부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하던 일을 며칠 쉬고 있는데

무릎의 회복은 더디더라도 차도가 어느 정도 있지만

웬일인지 양팔은 아리도록 진통이 오다가

밤이면 더욱 통증이 심해져 끙끙 앓으며 잠을 못 이루었다.

외관상 뼈가 부러지지 않은 줄은 알겠지만

혹시 금이 간 건 아닌지 부쩍 의심이 갔다.

만약 뼈에 금이 갔다면 완치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고통도 그만큼 나를 끈질기게 괴롭힐 터였다.

어쩔 수 없이 3일째 되는 날

집 근처 병원에서 X-ray사진도 찍고 진찰을 받았는데

다행히 골절된 곳은 없고 근육을 심하게 부딪친

근육타박상이라고 한다.

적당히 쉬다 보면 낳는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이번 문예지에 올릴 원고도 탈고를 하고

간추린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송고를 한 후

이렇게 호사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요즘 인기 작가의 신간수필집을 읽다가 눈이 아파 잠시 쉬면서

무심코 곁에 놓인 손때 묻은 나의 반 지갑을 열어 보았다.

(아이들이 한참 어렸을 때 작은 아이를 안고

지정된 좌석으로 가기 위해 복잡한 열차 속을 비집고 지났다가

양복 안주머니의 장 지갑을 통째 도둑맞은 후로

나는 이렇게 반 지갑 만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지갑에서 받은 지 오래 된 명함도 꺼내서 정리하고

벗들과 술 마시고 결제한 카드용지도 꺼내어

지출을 확인하고 하다 보니 내 조그만 지갑에도

꽤 여러 가지가 들어 앉아서 살고 있었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몇 장의 카드와 비상 자동차 카드키,

교통카드와 예닐곱 장의 명함들,

어머니사진과 비상금 푸른 지폐 몇 장,

그리고 이것은?

이 불그스름한 종이 뭉치는???

그것은

나 몰래 내 지갑의 한 귀퉁이에 무단 침입하여 거주하는 것으로

모양도 이상하여 무슨 상형문자 같은 글을 붉게 써 놓은

부적(符籍)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요즘 교회를 잘 나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종교’를 물으면 ‘개신교신자’라고

스스럼없이 답하곤 하였었는데, 그 야소자(耶蘇子:스스로 존재하는 자

즉, 예수의 제자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의 지갑에

버젓이 살고 있는 이 부적이란…….

부적은 악귀나 잡신을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붉은색으로 야릇한 글이나 그림을 그린 종이다.

부적은 주술적인 것으로

원시시대의 암벽화에서도 종종 찾아 볼 수 있으며

꼭 글이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더라도 동물의 뼈나 뿔,

이빨 등 상징적인 것을 부적으로 몸에 지니기도 하는데

외국에도 저 멀리 대자연의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뿐만 아니라 문화의 최고 상층에 있다고 자부하는

백인들도 종종 이런 주술적인 물건들을 지니고 다닌다.

대표적으로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네잎 클로버도

따지고 보면 행운을 바라는 하나의 부적일 것이다.

그밖에 할리우드영화에서 제작한 첨단의 많은 SF영화에도

간간이 이런 부적과 같은 소품들이 등장한다.

특별한 반지나 목걸이 또는 어머니나 연인의 사진…….

커다란 의미로 이런 것들도 모두 부적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닌 진짜 부적은

주로 승려나 역술가, 무당들이 만든다.

기독교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무슨 종이 쪽지가 나쁜 일을 막아 주고 복을 주겠나?

차라리 교회에 한번이라도 더 나가서 두 손을 모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려야지.

나도 처음에는

몰래 내 지갑에 부적을 넣은 아내에게 짜증을 내며

부적을 강력히 거부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아내나 부모님, 아이들은 모두 불교신자다.)

그렇게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어느새 내가 모른 척 그냥 수용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내가 그 부적의 효험을

단 1%라도 믿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별것도 아닌 걸로 실랑이를 하느니 내가 눈감고 지나가면

집안이 그만큼 편하니 모른 척 할 뿐이다.

(역설로 이것도 부적의 효험인지 모르겠다.)

하긴

요즘은 서로간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석탄일이나 성탄절에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 서로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시대이니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으며

그깟 거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다한 금융지출을 하면서

이 보험 저 보험 여러 가지를 동시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리스도와 부적으로 복수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부적이 지갑의 두께를 다소 불리는 단점이 있으나

나에게 흑심은 전혀 없는 듯 하니 그냥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부적을 얼마 만에 새것으로 갈아 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가끔씩 내 지갑의 부적이 새것으로 바뀌고 있다.

내 지갑에 무엇이 들었나 뒤지는 걸

큰 금기로 생각하는 아내는 내가 또 화를 내며 거부할까봐

몰래 넣느라고 매번 부적을 4번 접어서 넣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지갑이 불룩해져서 나는 항상 그걸 꺼내어

지갑의 면적과 적당한 크기인 3번으로 잘 접어서 갈무리를 했는데

오늘 부적을 보니 여지없이 또 4번 접혀 있다.

그것도 지금 궁금해서 꺼내어 보니 무려 4장의 부적들이다.

이렇게 내가 3번으로 잘 접었던 부적이 4번 접혀 있으면

어느새 내 지갑의 부적은 새것으로 교체된 것인데

자주 절에 가지도 않는 아내는 어디에 그 많은

(아이들것과 아내의 것을 합치면 양이 꽤 많을 것) 부적들을

보관하고 있는지 여태 살아 오면서 내 눈에 뜨인 적이 없다.

4장의 부적을 보면서 말인데

이 부적의 목적상 분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좋은 기운을 증가 시켜 재물을 풍족케 하거나 승진을 위한 부적,

사(邪)나 액(厄)을 물리침을 소원하는 부적, 지금 고생하고 있는

병을 물리치는 부적, 운수대통부적, 행운부적,

심지어 영원한 사랑을 소원하는 부적과 노름(특히 고스톱)이나

경마 등에서 돈을 딸 수 있도록 소원하는 노름부적도 있다.

그 중에 ‘노름부적’은

오래 전에 내가 사업의 영업상 거래처 손님들과

고스톱을 자주 치던 때가 있었는데, 어떤 지인이

자랑 삼아 보여 주던 노름부적을 펄펄 뛰는 그에게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내가 반 강제적으로 인수해서

지갑에 소중히 넣고 다녔었다.

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부적인지 별 효험이 없었다.

부적에 글이나 그림은 빨간 물감을 사용하는데

그것도 주술적인 의미가 짙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사람도 불이 무섭듯이

귀신도 불을 무서워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동짓날의 팥죽도

악귀의 접근을 막는 의미로 집 근처에 뿌렸으며

장 담글 때 띄우는 붉은 고추, 색동저고리 끝의 붉은 색,

붉은 댕기머리 끈,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 치는 금줄의

붉은 고추 등은 모두 그런 주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밖에도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벼락맞은 복숭아나무나 대추나무에 상서로운 힘이 있다고 믿는데

‘벼락을 맞을 때 그 나무에 번개신이 깃들어 잡귀가 달아난다.’는

그런 생각으로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

나는 그 유래나 이유는 모르겠으나

가오리가죽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복이 있다고 하여

지갑과 혁띠, 심지어 열쇠고리까지 내가 평소 좋아하는

진초록의 가오리가죽제품(벨트는 제외)을 지니고 다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들을 소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부터

나의 경제는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하다가

그 이후로 한 6년여를 헐거운 주머니로 생활하게 되었으니

그런 낭설에 그저 큰 의미를 둘 일은 아니겠다.

지금 내 가오리가죽지갑에 숨어 있는 4장의 부적도 이와 같아서

크게 믿거나 의지하지는 않는다.

간간히 로또 복권을 사서 부적이 들어 있는

가오리가죽지갑에 정성 드려 잘 모시는데도

한 번도 제대로 상위의 등수에 당첨되지 않았지만

큰 돈의 도난이나 분실이 없는 것 만으로도

커다란 효험으로 알고 있으면 그만이다.

또한,

이렇게 미흡한 남편을 끔찍이 생각하는 아내의 사랑을

내 지갑에 4장이나 넣고 다닌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보라.

내가 강력히 소지를 거부하면 실망할 아내의 슬픈 얼굴을.

그래도 당신은 아내의 권유를 과감히 뿌리칠 수 있겠는지.

혹시 아는가?

이번의 사고로 죽거나 뼈가 몽땅 부러지는

중상을 입을 악운이었는데, 아내가 넣어 준 부적 덕분에

이렇게 가벼운 경상으로 그칠 수 있었던 건지.

혹시 아는가?

그 가오리가죽지갑 덕분에 길거리에 내몰리지 않고

그나마 가족들과 함께 따스하게 잠잘 수 있는 방과

삼시 세끼의 식사, 그리고 한 병의 소주를 즐길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건지.

혹시 아는가?

우리나라에는 여러 다양한 종교와 더불어

그 많은 부적들이 있어서 세계적으로 힘든 이때에

그나마 국가의 경제를 보전하고 대다수 백성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으며 전쟁 없이 편안히 살고 있는 건지.

이제 다음주부터는 큰아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동생의 현장에서 일 하기로 했다

또 큰아들이 반대를 하면 자신 있게 말해야겠다.

“괜찮아~.”

“내 지갑에는 네 엄마의 사랑이 담긴 부적이 4장이나 있어.

그러니 하늘도 섣불리 나를 어쩌지는 못 할거야. 허허허”

2009년 2월 26일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