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6-24 17:52

ㆍIP:

비 오던 밤의 춘천호

지금도 그 여름날의 밤처럼 딱 그만큼의 비가 온다.
빗물이 어리고 허여스름 습기가 차는 창문으로
어스름이 비추는 장난스레 웃고 있는 작은 두 얼굴…….

그 아이들은 20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내 기억의 틀 속에서 나이도 키도 자라지 않고 있다가
역시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얼굴로 불쑥 나를 찾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귀기와 더불어
섬뜩함이 엄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내가 그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어느 봄부터였었다.
경기도 과천의 정부 제2청사가 올려다 보이는 작은 낚시점.

나의 낚시 취미가 15여 년 지나면서 꽃을 피우던
80년대 중반에는 당시 최고의 낚시터로 각광 받던 곳이 충주호였다.
그때는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지방의 웬만한 낚시회에서도
모두 충주호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경기도 안양에 살면서 서울 중곡동의
꽤 유명한 낚시회의 일원으로 거의 매주 충주호를 찾곤 하였었다.

버스 출발지가 낚시점이 있는 중곡동이었지만
중간 경유지인 한남동의 한남대교 북단 낚시점 많은 곳에서
순두부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낚시터로 달려가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출장근무지가
경기도 성남시로 바뀌면서 토요일 오후에 떠나는
1박2일 낚시 출조가 교통상 부담스럽게 되었다.

그래서 교통 편의상 손쉽게 주말에 다니던 낚시회가
과천의 조그마한 그 낚시점이었다.

토요일 아침 출근 하면서 낚시 가방을 메고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과천의 낚시점에 장비를 맡기고
성남으로 출근했다가 점심도 안 먹고 퇴근해서
그 낚시점을 들려 출조를 하고, 다음날 오후에 돌아와서
집으로 귀가를 하였었다.
서울 중곡동까지의 교통편에 비하면 시간이 덜 걸리고 편해서
그렇게 즐겨 출조를 하기를 4,5번 되었나 보다.

일기예보가 ‘차차 흐려져 비가 온다’던 어느 여름날 토요일.
그날도 별 생각 없이 충주호를 가기 위해 낚시 가방을 메고
평소 토요일처럼 집을 나서서 과천의 낚시점을 들렸다.

그런데 다른 토요일과 달리 낚시점 매장의 불이 꺼져 있고
문이 잠긴 채 사람 흔적이 없는 것이었다.
낚시점은 다른 날은 몰라도 토요일 새벽과 일요일 새벽은
항상 손님이 많은 시간이라 천하 없어도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기 마련인데 불이 꺼져 있고 문이 잠겨 있으니
무거운 낚시가방을 메고 온 나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두드리며 저 매장안에서 사람이 나와
불을 밝히고 내 낚시장비를 받아주기를 기대 했으나
아무리 두드려도 기척이 없다.

그렇게 문을 두드리다 출근 시간에 쫓기는 나에게
낚시점 옆의 밧데리가게(차의 경정비를 하는 곳) 쪽문을 열고
중년 남자가 나오는데, 그는 밧데리가게 주인으로
아마도 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나 보다.

아침부터 곤한 잠을 깨운 나에게 그는
게슴츠레한 눈을 앞세워 물어 온다.
“누구요? 왜 그러고 있어요?”
나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대답을 했다.
어쩌면 밧데리 가게에 내 낚시도구를 맡기고
오후에 출조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아니, 내가 이차 저차하고 몇 차례 낚시를 다녔었는데
이상하게 오늘 아침엔 낚시점이 잠겨있고 두드려도
사장님이 안 나타나네요?” 했더니
그 밧데리가게 사장은 혀를 끌끌 차면서
“오늘 그 집 낚시 못 가요.” 한다.
의아한 마음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왜요?” 하고 물으니
“어제 그 집 아이들 둘이 다 죽었어요.” 하는 것이다.

나는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자세히 물어볼 겨를도 없이 밧데리 가게 주인은
남은 잠을 마저 보충하려는 듯 가게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나는 잠시 생각을 추스르다 할 수 없이 낚시 가방을 메고
성남의 근무지로 출근을 하였다.

출근하면서, 출근해서, 근무를 하면서 내내
계속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아쉬움과 궁금증.
‘왜지?’
‘그 똘방 똘방 하던 아이들이 왜 죽었지?’
‘그것도 한꺼번에 둘이?’

그 낚시점 총무의 자식인 그 아이들은
그때 6세에서 3세 사이 정도의 형제였는데
내가 낚시를 가려고 대절한 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면
의례히 장난을 치며 버스에 올라 내게 말하곤 하였었다.

“아저씨! 이번에는 큰 고기 많이 잡으세요. 해해해”
그러면 나는
“그래. 고맙다. 이번엔 많이 잡아 볼께. 허허허”
“아저씨 잘 갔다 오세요. 해해해”하고
인사를 하곤 했었는데…….
참으로 똑똑한 눈에 정감이 가는 아이들 이었었다.
그런 아이들이 죽다니.
자꾸 내 눈앞에 어른거리며 웃고 있는 아이들의 잔상 때문에
제대로 업무도 못보고, 결국 그날은 퇴근 후 불편을 감수하고
중곡동의 낚시 버스를 이용해 출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요즘 뜸하십니다? 낚시 자주 다녔어요?”
하는 낚시 총무의 반가워 하는 인사말에
간략하게 과천낚시 동참 출조와 오늘 아이들 죽음으로 여의치 않아
이 낚시회를 다시 찾아 신세를 지노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중곡동 낚시 총무는 “쯧쯧” 혀를 차면서
“참 재수도 없는 OO총무지요.”
하면서 출조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출조하는 일행들에게
그 과천낚시 OO총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낚시점마다 대부분 주인은 낚시회의 총무를 맡고
회장과 다수의 임원진으로 운영되는 낚시회들 중에서
서울 동작구의 한 낚시회는 규모가 커서 낚시점 사장이
월급총무를 고용해서 낚시회를 꾸려 갔었는데,
내가 다니던 과천낚시점 주인인 그 OO총무가
그곳 동작구의 낚시회 고용총무였었다고 한다.
한번은 그 낚시회가 OO총무의 가이드로 밤낚시를 갔는데
봄인지 가을인지 약간 쌀쌀한 날씨였다고 한다.

충주호에 도착한 OO총무는 회원들을 배에 태워
좌대(물 가운데 띄워 놓고 낚시를 하며 잠을 잘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수상 방갈로)에 들여 보내 놓고
좌대 주인의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밤이 깊어지고
좌대 주인과 OO총무가 잠이든 사이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좌대에 안착해서 다들 열심히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세 사람이 들어간 한 좌대에서 초저녁 붕어 입질이 없자
일찌감치 술판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술이 떨어지고 술 갈증을 다 못 풀은 세 사람은
번갈아 총무와 사공을 불렀는데, 이미 한참 잠이 들은
총무와 좌대 주인이 대답을 할 리 없었다.

지금이야 누구나 핸드폰이 있으니 그냥 전화로 요구를 하면
배를 운행하여 물을 건네 주지만,
그 당시는 좌대에서 뭍의 주인과 대화를 하는 방법은
“배! 배!” 하고 소리치던가 “사공! 사공!” 하면서 주인을 부르던가
아니면 “사장님! 사장님!” 목소리 높여 부르며 애원하는 게
의사소통의 유일한 방법이었었다.

급기야 주변에 있는 낡은 배를 어찌 어찌 끌어들여
세 사람이 타고 용감히 물을 건너기로 하였다고 한다.

모자란 소주와 안주 조달을 위하여…….

그런데 그 낡아서 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던 배를
노(櫓)도 없이 손으로 저어 가던 중에 배 밑창이 빠져서
세 사람은 물에 빠져 배 난간을 간신히 잡고 소리치며
구조를 기다리다 자신의 평소 수영실력을 믿은 한 사람이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오다 빠져 죽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술이 취한 상태였고 더군다나 입고 있던 방한복과
방한화에 물이 차서 납덩이를 몸에 두르고 물에 뛰어든 꼴이니
익사는 당연히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두 사람은 주위의 좌대에서 여러 사람이 열심히 소리쳐
자는 총무를 깨워 무사히 구조를 하였다.

그 후 죽은 회원의 유가족에게서 소송이 걸렸는데
회비를 받고 좌대주인에게 아직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은
총무가 거의 책임을 다 져야 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좌대에 들어 가기 전에 사용료 받은 것과 안 받은 것은
책임상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사용료를 받지 않았으면
관리자의 책임이 경미하나 요금을 선불 받고 손님을 들여보냈다가
사고가 나면 영업적인 책임이 가중된다고 한다.

결국 그 총무가 살고 있던 30여 평의 아파트를 보상하기로 하고
유족들과 합의를 본 그는 남은 재산을 탈탈 털어서
재기를 위해 과천의 한 점포를 싼값에 임대해서
안쪽을 막아 살림집으로 피폐한 생활하며 영업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에(그러니까 어제)
인적이 드문 공터에 세워놓은 승용차 트렁크 열린 문으로
주위에서 놀던 형제들이 장난 삼아 들어갔다가
트렁크 문이 닫히는 바람에 한낮의 불볕 더위에
하루 종일 몸부림치다 죽어간 것이다.

저녁 늦게사 두 아들의 주검을 받아 든 그 OO총무는…….**

서울이나 경기도, 아니면 웬만한 낚시총무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연락을 하는 연합회 회원 사이라
이미 OO총무의 억장 무너지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나 보다.

그날 내가 간 중곡동 낚시회의 낚시터는
강원도 소재의 춘천호로 갔는데, 회원들을 실은 보트가
호수의 구석구석 골짜기 후미진 포인트 곳곳에
뜨문뜨문 한 사람씩 내려놨다.
포인트에 내리자 마자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끈적끈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시원히 내리는 것도 아니고 이슬비도 아니고
참으로 고약하고 기분 나쁜 여름비였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춘천호 골짜기에서 내린 나는
파라솔 텐트를 펴고, 그 속에 앉아 낚싯대 두 대를 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웠는데
죽은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떠 올라 영 집중이 안됐으며
후미지고 으슥한 물가에서 차라리 무섭기까지 한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사위가 깜깜해지니 내가 던진 찌의
케미라이트 불빛은 더욱 파랗게 빛을 발하며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되어 나를 보며 웃는 것 같았다.
낚시대를 들어 올리면 낚시바늘 끝에
아이들의 얼굴이 걸려 나오는 듯 등골이 오싹하고……
도저히 그런 환상을 떨쳐 버리지 못한 나는
낚시 의자를 길게 펴고 어설픈 잠을 억지로 청했다.
파라솔 텐트에 후두둑 툭툭 떨어지는 기분 나쁜 빗소리는
마치 차 트렁크에 갇힌 아이들이 몸부림치며 사력을 다해
트렁크 안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쇳소리 같기도 하고,
아이들의 모습이 밤새 잠을 방해하며 괴롭혔다.

눈은 감았으나 잠이 들지 않고 환청과 환상에 시달리며
기나긴 밤을 보내다 밤새 내리던 비가 잦아들 즈음
아침이 산 모퉁이를 돌아 내 텐트 앞에 내려 서고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붕어를 몇 마리 낚다 보니
어느새 귀가를 위해 보트가 회원들을 싣고 내게 다가선다.
그리고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낚싯길 내내 기분이 찜찜했지만…….

요즈음 종종 어린 아이들의 유괴와 행방불명에
젊은 부모들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매스콤에 올려질 때마다
그때의 그 OO총무의 자식 잃은 아픔을 떠 올리게 한다.
어린 자식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인데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 아비의 애끓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아이들을 유괴나 살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내렸던 그 비가
지금 창밖에 내리고 있는 저 끈적끈적 불쾌한 비인가 보다.
오랫동안 내 기억의 저 밑에서 살고 있던 아이들이
그때의 천진한 개구쟁이 얼굴로 창문에 어리는걸 보니…….

“아저씨! 오늘은 큰 고기 많이 잡아야 해요. 해해해”

2008년 6월 비가 내리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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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춘천은 제가 군 근무 때에 제일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라서
제겐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답니다.

화천과 춘천에서의 군 생활은 평생 잊지못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에
제겐 아주 특별한 곳이지요.

또한 춘천호에서의 낚시...
ㅎㅎㅎ

하지만,
00 총무의 안타까운 사연은 제 가슴을 울리는군요.
비록 남의 일이라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최평균 작가님!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는지요?

편안한 밤 되시고 내일을 위해 푹 쉬도록 하세요.
좋은 꿈 많이 꾸시고요.. (hirashi2000@yahoo.co.kr) -[06/2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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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옥: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06/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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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옥: 인단,인사드리고...ㅎㅎ실수로 올라가 먼저 자리하네요 ㅎㅎ비라면 운치있고 그리운 추억만 담겨져 내리는 줄 알았는데 잊혀지지 않는 너무 슬픈 추억도 많군요 빗소리가 서글프게 가슴에 담김니다 ^^* 건강하세요 털어내시구요 . -[06/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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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守/정용하: "아저씨! 오늘은 큰 고기 많이 잡아야해요. 해해해"
...상당히 인상깊게 가슴속에 쓰며드네요
"해해해"...세상에 적응하기위한 애절함도 배어있는
듯도 하구요
죽음에대한 어떤 예지같은 것도 느껴집니다
의미깊은 글밭감사합니다.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 되십시요 -[06/26-15:54]-

자두가 익어가는 계절에

깻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