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모아서 불을 질렀네~

뚜야의 편지도 같이 태웠네~♬

옥 같은 그 사연 재가 될 적에~

돌 같은 이 마음 눈물 되었네~♫**

30여 년 전에 유행했던 ‘뚜야의 편지’ 노랫말이다.

지금 더듬어 보면

내 나이 아마도 창창했던 20대 초반이었겠지.

그때도 내 감성은

소년보다는 소녀적 감성에 젖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유독 이 노래를 좋아했었던가?

가을이 오면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절을 지낸다.

낙엽을 태우며 부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이제 계절도 가을 속으로 깊게 들어와 있다.

이곳 영동의 심천에 머무른 지 어언 십여 일.

주변의 산야는 가을색이 완연하다.

이 지방은 추풍령에 연한 주변의 산들이 울울창창하여

오랜 가뭄에도 불구하고 계곡마다 맑은 물이

수많은 생명을 보호하며 쪼르르 쪼르르 흐르고 있고

따라서 나뭇잎들도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깊어 가는 가을색 속에서 여인의 목덜미처럼

곱고 청량하게 떨어져 흐르는 옥계 폭포와

경치에 취해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유봉의 가을은 절경이다.

그 옛날 이곳에서 태어나 심신을 수련하고

출사하였다가 팔순에 백의 낙향하신 박연 선생도

이런 풍광에 절로 피리를 입술에 갖다 붙였을 것이리라.

그런 영동의 가을은 단풍나무는 드물지만

설악산의 단풍보다 못하지 않다.

그건 완전히 내 생각이지만

단언컨대 대부분 사람들도 영동의 이 가을을 보면

내 생각에 그리 많이 어긋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풍나무 잎이 물드는 걸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라고 하지만 그 외의 단풍나무가 아닌

다른 모든 나무들의 이파리가 제각기 곱게 물든 것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우연히

내(川)가 깊은 이 지방의 한 자락에 자리를 잡았는데

인연의 운이 좋은 것인지 이곳 향토 사학자 박하일 선생의

황토로 만든 방 하나를 얻어 유하게 되었다.

이곳은

3대 악성중 하나인 난계(蘭溪) 박연선생의 영정을 모신

난계사가 옆으로 담 넘어 바로 내려다 보이고

앞으로는 금강자락 하나가 저 앞으로

제 뽀얀 살집을 흔들어 뽐내며 흐르고 있다.

가을비가 추적 추적 오는 날

내려다 본 난계사의 은행잎은 더욱 새파랗게 노랗다.

이것도 나에겐 이번 가을의 더 할 수 없는 복록인 것이다.

몇 일전에 주변의 낙엽을 주워 모았다.

감나무, 엄나무, 뽕나무, 그리고 난계사에서 주워온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등의 낙엽들…….

이것들을 이 삼일 뒤곁 응달에서 말렸다.

나는 가을에 낙엽 태우기를 즐겨 한다.

낙엽을 태우면서 옛 인연들이나 추억들을 떠 올리며

모두들 잘들 살아가고 있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매년 낙엽 태우기를 그렇게 빠지지 않고 하고 있지만

그건 애절하게 그 시절들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다만 지나간 내 가을들을 되 돌이켜 보고 싶은

나만의 호사스런 마음인지 모르겠다.

하긴 나이가 들었어도 또 남자이면서도

소녀 같이 가녀리고 부드러운 감성을 잃지 않으려는

나만의 독특한 비방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가을의 연례적 행사로 낙엽을 태운다.

지난 가을들이야 특별히 경비를 들여서

낙엽을 태우러 갔었지만, 올해는 운 좋게

이곳에 머물면서 낙엽을 태우게 되었다.

사실 전에는

강원도나 경기도의 낙엽이 많은 곳에 숙소를 정하고

주인장께 양해를 구해 남들이 쉬는 밤에

쓰레기 소각장에서 낙엽을 태우곤 했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렇지

만약 보았다면 백이면 백 모든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며

“나이든 사람이 저게 뭐 하는 짓이지?”

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 하였겠지만, 산불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최상의 장소 선택이 되곤 하였었는데

오늘은 유유자적 낙엽을 맘껏 태울 수 있으니

이 가을에 너무도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된 것이다.

매년 이 계절이 되면

나무들은 제 잎에 수유를 중단하고

매정하게 삐쩍 말려서 떨어트린다.

나뭇잎은 시신이 되어 툭툭 땅에 내동댕이쳐지고

버림받는 쓸쓸한 신세가 된다.

여름내 태양분을 짊어 나르던 잎들을

박정하게 버리고 저만 살겠다는 저 못된 모정은

돌아올 계절의 혹한에 살아 남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내년의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낙엽을 태우는 건

그 시신들을 거두어 화장을 시키는 것이다.

낙엽 타는 냄새는 정말 독특하다.

낙엽의 연기는 이별의 슬픔을 숨기고

억지로 삼키는 정도의 매콤한 향기로 나에게 다가온다.

엉엉 울지 못하고 슬그머니 눈시울 적시는 그런 아픔.

장작이나 다른 땔감을 태울 때처럼

그리 심하게 맵지도 않고 그리 뜨겁지도 않고

꼭 그만큼의 가을향이다.

그 향기를 맡으며

이제까지의 추억들을 찾아 즐기고 하늘로 날려 보낸다.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두 갈래머리 소녀에서부터 이제까지의 내 인연들…….

아내도 거의 매년 나와 같이 낙엽을 태웠으니

내가 먼저 먼 길 떠나고 나면 혼자 낙엽 태우며

나와의 가을들을 어렵지 않게 추억해 내겠지……

오늘밤은 외투를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하다.

초옥근처에서 부시럭 부시럭 말렸던

낙엽들을 모아 불을 붙인다.

역시나 기분 나쁘지 않은 매콤한 연기가

내 안면을 휘돌다 밤하늘로 날아 오른다.

나는 가슴속으로 나직이 읊조려 본다.

-들리는가 그대여!

바스락 거리며 타는 저 낙엽들의 비명소리를…….-

감잎 타는 향기인지 은행잎 타는 향기인지 분별이 안되고

굳이 분별할 필요는 없지만 똑같은 가을 냄새다.

왕후장상이나 미천한 삶이나 죽어서 화장을 하면

그저 똑 같은 사람 타는 냄새이듯이…….

내 한 해의 가을은 추억들을 싣고 하늘 높이 날아 오른다.

내 인생의 한 계절을 또 다시 태우면서…….

난계사에서 박연선생의 영정이 불어 주는

구성진 한 곡조 피리 소리가 낙엽 타는 연기를 따라

하늘로 날아 오르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낙엽 타는 냄새는 옛 추억을 가득 묻혀서

내 옷섶으로 안겨 든다.

아마도 가을은 내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아빠가 왜 우냐고 물었을 때~~~♬

낙엽 타는 연기가 맵다고 했네~♫

낙엽에 불질러 편지 태울 때~~

뚜야의 얼굴이 아른거리네~~♫♬**

아~ 가을이다.

노랗게 파르스름한 내 가을…….

2008년 10월 30일

충북 영동의 난계사 옆에 머물던 날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