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7-0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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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가 익어가는 계절에
길어지는 그림자를 끌고 해거름에 들어선
7월의 재래시장 과일가게 진열대에는
각종 과일들이 서로 몸 비비며 각자의 향내를 뽐내고 있다.

각양 각색의 색과 자태로 견주는 이 여름의 과일들…….

제철인 과일과 이미 철이 지난 과일, 제철 과일,
그들에 뒤질세라 외래종 수입과일들도
이국적인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는 과일재배의 기술도 발전을 하고 저장 기술도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으니 철에 관계없이 사철 맛있는
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옛날이야기에 효자가 늙은 어머니를 위해 호랑이의 도움으로
한겨울에 감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옛이야기일 뿐이다.

예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철마다 생산되는 과일이 분류되어 실렸었고
학생들은 열심히 외워서 시험지의 답안을 작성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과일의 생산 적기를 암기하는 것은 우매한 짓이 되었다.

지금 제철의 과일들을 눈으로 더듬어 보니 수박, 참외,
자두, 살구, 그리고 채소과일인 토마토 등이 진열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탁구공만한 자두는 설 익은 것 같은 청색 자두와
잘 익은 검붉은색 자두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달콤한 향기로
지나가는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자두의 한자명은 ‘이(李)’ 라고 하며 순수한 우리말은
‘오얏’ 이라고 하는데, 복숭아를 닮았다 하여 ‘자도’ 라고 하다가
변하여 지금의 ‘자두’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8월에 완전히 익고, 달고 신맛이 강한 자두를 보면
저 멀고 먼 곳의 아련한 나의 기억이 신 자두 맛에 놀란 듯
입안에 침을 잔뜩 고이게 한다.
그러면 나는 빙긋이 웃으며 고인 침에
추억의 한 편린을 녹여 꿀꺽하며 목 울대로 넘긴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 정말로 오래 전 일이다.

막 낚시를 배워서 강이나 호수로 붕어를 찾아 다니던 그때.
그 해 여름방학에는 평소의 당일치기가 아닌
3박4일의 일정으로 낚시를 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떠나는 장박의 장거리낚시는
옆집 형이 같이 가자고 제안하고 계획한 일정이었으며
거기엔 나의 연년생 동생도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처음 낯선 낚시터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으며 하는
낚시 여행에 몇 날을 준비물 점검과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다 드디어 낚시를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3박 4일 동안 자고 먹으며 낚시를 해야 하니 준비물도 많아서
우리 셋은 등에 바리바리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경기도 화성군 소재의 고잔 저수지였는데
그 시절에는 수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발안행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발안에서 낚시터까지 가는 버스로 가야 하는 장거리 코스였다.

무거운 낚싯대와 배낭을 짊어지고 아침에 출발한 우리가
낚시터에 도착하기는 정오를 한참 넘겨서였었다.

낚시터에 도착한 우리는
수초가 제법 그럴듯한 물가에 텐트를 치고 낚싯대를 드리웠으며
한 사람은 가져온 쌀과 반찬으로 저녁을 준비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낚시는
첫날밤을 고스란히 지새우며 붕어와 씨름을 하였고
살림망에는 제법 씨알 좋은 붕어를 십여 마리 채울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떴을 때 우리는 아침을 해 먹고
저녁 낚시를 위해 텐트에 들어가 잠을 잤다.

그리고 다시 저녁.
온종일 잠으로 시장한 뱃속을 채우기 위하여
밥을 하려고 준비를 하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아뿔싸!
연료용으로 가져온 알코올이 떨어진 것이었다.

지금이야 석유 버너나 가스 버너가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비싼 석유 버너는 웬만해서는 구할 수 없었고
야외 취사용 버너는 실험실에서 가열용으로 쓰던 알코올을 연료로 하는
알코올버너가 거의 대부분이었었다.

밝은 대낮에는 불꽃도 투명해서 불이 붙었는지 꺼졌는지
손을 화구 근처에 대 봐야 알 수 있는 알코올 버너가
이음세 부분이 세는 것도 모르고 가져온 알코올을 자꾸 보충하여
밥과 찌개를 몇 끼 끓이고 나니 연료용 알코올이 바닥난 거였다.

서울에서 원체 먼 낚시터에는 취사준비를 해가지고
밤낚시를 온 사람들도 없었고, 기껏 인근의 아저씨들이
잠깐씩 낚시를 하다 농사를 하러 자리를 뜰 뿐이었다.
변변한 구멍가게도 없으니 알코올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애써 버스를 몇 번 갈아 타고 온 장거리 낚시에
하루 만에 되 돌아 가기는 억울하고 우리는 가져온 김치와
밑반찬에 생쌀을 씹어 먹으며 밤새 낚시를 했다.
그러나 무슨 극기 훈련도 아니고 생쌀을 밤새 씹었더니
아구가 아프기도 하고 허기를 달래기는 무리였었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며 지쳐가는 우리들에게
뻐꾸기 소리가 서글프게 들리는 물가의 아침.

도저히 배도 고프고 잠도 안 오고 하여 일어서서 서성거리다가
호수가로 난 오솔길을 따라 한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저기 산모퉁이에서 두런거리는 사람 말소리가 난다.

호기심과 ‘혹시나 밥을……’ 하는 생각으로
말 소리를 따라 숲길로 들어서니 머지 않은 곳에 과수원이 보이고
여러 어른들이 모여 앉아 뭔가를 주워 담고 있었다.

그 사람들 가까이 가 보니 나무에서 딴 자두를 내다 팔기 위해
상품을 선별하여 박스에 담고 있는 것이었다.

이방인의 갑작스런 출현에 잠시 담소를 멈추고
말끄러미 쳐다보는 어른들에게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저간의 사정을 털어 놓았다.

그랬더니 그 중에 과수원 주인인듯한 아저씨 한 분이
“그럼 학생. 먹을 쌀은 가져 왔겠네?” 하는 것이다.
그 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네! 많이 가져 왔어요.”하며 반색을 하였다.
‘쌀이 있으면 밥을 하게 해 주겠지’ 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가 가져온 쌀과
커다란 봉지에 잔뜩 담긴 자두와 물물 교환을 하게 되었다.
향기 짙은 끝물 복숭아 네 개는 덤으로 손에 들고…….
어쩔 수 없잖은가?
밥을 할 수 있는 민가는 한참을 걸어 가야 한다니
자두로 라도 허기를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그 딱딱한 생쌀을 안 먹어도 되고
대신에 달콤한 향기의 자두를 먹을 수 있으니
내일까지의 낚시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끝물의 복숭아는 또 왜 그리 달고 맛이 있던지.

그렇게 자두를 나눠먹어 가며 낚시를 하는데
이 자두가 또 문제가 되었다.
처음 몇 개는 단맛이 나고 맛이 있더니 자꾸 먹으니
자두의 신맛이 혀를 자극하여 저절로 미간이 찌그려 지더니
급기야는 신 자두를 더는 못 먹겠다.
평소 자두를 먹을 땐 달은 줄 만 알았지
이렇게 신맛이 숨겨져 있는지를 미처 몰랐었다.

우리는 다시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꼬르륵대는 배를 움켜쥐고 낚시를 하다
도저히 못 견디고 나는 혼자서 쉬기 위해 텐트로 들어 갔다.
거기엔 그 지겨운 자두가 아직도 엄청 많이 남아 있었다.
처다만 봐도 신물이 올라오는 저 웬수 같은 자두…….

배고픔을 견디며 자두와 같이 텐트에 누워 있다가
어떻게 저 자두를 신맛을 참고 먹을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이 나의 눈에 들어 왔다.
신 것 보다는 차라리 매운 맛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덜 신 것 같은 자두를 골라
고추장을 듬뿍 찍어 입안에 넣고 씹었다.
신맛 보다는 매운맛이 났겠지…….

그런데 내 예상을 깨 버리고 허기진 나의 내장과
지친 내 머리를 산뜻하게 울리는 이 맛이란…….

세상에!
신 자두를 고추장에 찍어서 먹어 보니 신맛 매운맛은 사라지고
달코롬한 맛이 내 미각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며 나는 무릎을 쳤고,
이후 고추장과 자두는 저수지에서 낚시를 끝내고
철수하기 전까지 우리의 전투식량이 되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다시 자두를 고추장 발라서
먹어 본적은 없지만 가끔 이 계절에 잘 익은 자두를 보면
그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가 입안에 신맛이 돌고
침이 잔뜩 고였다가 고추장을 떠 올리고 슬며시 웃으며
고인 침을 삼키곤 하는 것이다.

그때는 하도 신 자두를
밤새 먹어대다 고추장을 발라 먹어서 달콤함을 느꼈는지
아니면 원래 고추장 바른 자두는 단맛이 나는지 확인 못해봤다.

원산지가 중국인 자두가 오래 전에 서양과 미국으로 전파되어
그곳에서 적응하고 개량된 것이 서양자두 미국자두인데,
원래 동양자두는 매우 작고 쓴맛이 있어서 먹지를 않고,
우리가 즐겨 먹는 것은 거의가 미국 개량종을
1920년대에 수입 재배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하는 것으로
도방고리(道傍苦李)라는 말이 있는데 원 뜻은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 라고 한다.

‘간에 병이 있을 때 먹으면 좋다’ 고 동의보감에 적혀있는
자두는 술 마신 후 간의 건강을 돕는다고 하는데,
민간요법으로 술 마신 후 숙취가 심할 때
소금에 일주일 정도 절였다가 햇볕에 말린 자두를
식사 때마다 한 알씩 먹으면 주독이 풀어진다고 한다.

자두를 고추장 발라서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동양의 고추장과 서양의 재배종 자두가
앙상불을 이루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동서양의 퓨전인 것이다.

내일 저녁에는 잘 익은 진보라색 자두를 사서
그 옛날 낚시터에서 먹던 것처럼 고추장 발라 먹어 봐야겠다.
그때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지 확인도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어린 날의 젊은 추억을
들추어 내어 확인하고 잘 갈무리 하기 위하여…….

2008년 7월 5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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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하하하...
낚시터에서 씨알 좋은 고기도 십여수 낚으셨는데,
취사용 연료가 없어서 생쌀을 드시다뇨.

저같음 잡아놓은 고기를 구워먹거나
가까이에 밭이라도 있으면
싱싱한 채소를 얻던, 구입을 하던
수단껏 준비해서 매운탕이라도 끓여서 먹었을 것입니다.

원체 낚시를 좋아하다 보니
어딜 가든 소금과 고추장...등,
왠만한 양념은 기본적으로 준비를 해가거든요.

산속 계곡에서 낚시를 하였다면
더덕이나 도라지, 잔듸 같은 것을 먹거나
1급수의 청정 지역이라면 가재도 잡았을테죠.
ㅎㅎㅎ

현역 시절에 군대에서 근무할 때엔
훈련이라도 가는 날에는
탄입대에다 낚시 바늘을 줄줄이 끼워서
낚시줄과 함께 준비를 해서 가곤 했답니다.

산으로 가는 훈련이든 강으로 가는 훈련이든
낚시 도구와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준비를 했거든요.
에휴...
세상 근심을 다잊고 느긋하게 낚시를 즐겨봤으면...
ㅎㅎㅎㅎㅎ

요즘은 장마철인데도 마른 장마라 그런

블랙 리스트(Black List)

비 오던 밤의 춘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