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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임정수 수필소설작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9-11-17 15:12
ㆍIP: 58.xxx.160
작업의 기술
작업의 기술 / 임정수





어느날 나를 만나려고 인천에서 내려온 여인과 밤을 새우느라
가만히 있던 휴대폰의 액정이 깨어져 버린 것도 모른체 날밤을 샌 적이 있었다.

어찌하여 휴대폰의 액정이 깨어져 버리도록 잠을 설치게 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정오무렵에 눈을 떠보니 그녀와 나는 광안리 한 모텔의 침대 위에 있었고
말없이 울리는 휴대폰은 두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무얼 훔쳐 보았기에 두눈이 시뻘건 것도 아니고 새파랗게 질리듯 망가졌을까? ㅋㅋㅋ

휴대폰을 수리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S* 대리점으로 갔지만
맡겨놓고도 몇 일이 걸려야 수리를 할 수가 있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가야에 있는 S* 본점(?)으로 가서 수리를 하게 되었다.

찾아가는 길은 정말 멀었지만 사업상 걸려오는 전화가 많았기에
어쩔 수 없이 본점으로 가서 접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쁘장한 여직원이 접수를 받아서 아주 친절히도 알려주었다.
액정을 갈아야 하고 이것저것 수리를 하면 적어도 9만5천원은 나올 것이라며
기다리는 동안 차라도 한잔 하라며 나를 데리고 자판기로 가서 커피를 뽑아 주었고
나또한 무료하던 차에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같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은근슬쩍 작업을 걸어보았고 그녀또한 싫은 기색은 아닌듯 싶었다.

어느정도 작업이 끝나갈 무렵 그녀에게 살짝 윙크를 하였더니
그녀는 웃으며 작업실(?)로 들어간다.

잠시후 나의 휴대폰을 수리하였던 젊은 기사 한 분이 나오더니
다고쳤노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리곤 수리비가 3천 5백원이 나왔다면서 접수를 받았던 여직원과는 어떤 사이냐고 묻는 것이다.

뭐라고 대답해야할지를 몰라서 망설이다 우물쭈물했더니 그 여직원이 나오더니
아주 친근감있는 투로,
'오빠! 다되었어요?'
그러면서 나를 입구까지 배웅해 주는 것이다.

너무나 고마워서 저녁이라도 사야한다며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했더니
나중에 연락을 하겠노라며 일단 가라고 한다.

사실, 너무나 이쁜 사람이기에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지만
그녀를 믿고 기다리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몇일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괜찮으면 이따 저녁때 만나서 차 한잔 할 수 있냐면서...

물론 안된다고 할 아무런 이유가 나에겐 없었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야심한 밤에라도 그녀가 불러만 준다면 당장에라도 뛰어갔을 것이다.

현금 지급기를 통해서 돈을 인출할 수도 있었지만,
모처럼 통장 정리도 할겸 각종 세금도 내어야 하고...
그래서 은행부터 들리기로 했다.

은행 창구로 가서 세금 고지서와 함께 출금 명세서를 제출하였더니
필체가 너무나 멋있다며 은행 여직원이 호들갑을 떨었다.

필체가 좋다는 말에 기분은 좋았지만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고맙다며 슬쩍 윙크까지 하면서 웃었고
그 여직원도 갑작스런 나의 윙크에 당황했음인지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조금은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옆창구의 여직원과 손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을...
옆자리의 짖궃은 손님은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혹시, 두 분 사귀세요?"
"하하하..."

나 역시 장단에다 박자를 아니 맞출 수는 없어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것도 조용히 내앞의 여직원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이참에 한번 사겨볼까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세상사 정말 우습다.
나는 어딜가든 필체 하나만큼은 좋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고
그로인해 우연찮게 작업에 성공할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키가 큰 것도,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더 배려해주려는 마음에서
내게로 호감을 가지도록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것도 작업의 기술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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