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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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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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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염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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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3-05-12 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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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의 묘미
글 / 염경희
철없던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집을 떠나 혼자만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집을 벗어나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떠나는 친구들은 그나마 나름 가정이 부유하거나 웬만큼 여유를 가지고 사는 집 자식들이었다. 건전한 여행을 즐기는 아이들이 있지만, 복에 겨워서 불만을 가지고 무작정 가출해 부모 속을 썩이다 못해 애간장을 다 녹이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배움에 열정이 많아서 뭐든지 해보고 싶은데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닌 흙수저인 경우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 위해 갖은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부모 밑에서 가출이라는 건 아주 큰 사치였다. 배부르게 먹여 놓으니, 헛짓거리들에 먼저 눈뜬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나도 그때는 아무런 내색조차 할 수 없는 것이 가난한 집 자식들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자기 툇마루에 집어 던지고 사내아이들은 꼴지게 짊어지고 들로 산으로 나가는 일이 일상이고 계집아이들은 채소밭에 나가 저녁거리를 준비하기도 하고 다음 날 새벽 장에 내다 팔 야채 다듬는 일을 했다. 친구들과 여행하고 가출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못 하고 살아왔던 어린 시절이 파노라마 되어 스쳐 갑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혼자 여행은 늘 계획만 있었지 실천에 옮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반평생을 조금 더 살아오면서 필자에게 여행은 아주 꿈같은 이야기였고 우선 경비가 먼저 떠올라 실천에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돈이면 며칠간을 생활할 수 있을 텐데, 그 돈이면 또 아이들 필요한 것 하나 더 사 줄 수 있는데 하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해보지 못하고 몸은 늙어가고 후회하는 일만 늘어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앞으로는 후회하는 일 없이 살아보리라 용기를 냈습니다.
이만큼 열심히 살았으면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정도 여유는 생겼습니다. 누구나 죽으면 한 줌조차 안 되는 가루로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생인 것을, 생각을 바꾸면 삶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인데 즐기며 살기로 했습니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랫말과 같이 인생의 후반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잡을 수가 없으니 아름답게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노래 부르며 춤도 추고 여행을 즐기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자식들 다 여위었는데 무슨 걱정이 있으랴” 앞으로는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 두렵고 걱정이 되었던 것은 우선 잠자리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숙박시설 잘되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겠지만 혼자서 들어가 잔다는 것에 약간 거리낌이 들었습니다. 운전은 지금까지 장거리는 할 수 있는데 용기 내기가 힘들어 망설이던 차에 갈 곳이 정해져 한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겼습니다.
마침 밀양에 사는 친구 집이 비어 있으니 와서 쉬다 가라고해서 두말하지 않고 3박4일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반평생을 넘어 처음 도전해 보는 일탈의 기대감은 초등학교 때 소풍 가는 날처럼 설레고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오전 업무를 마무리 지어 놓고 집에 가서 요것 저것 챙겨 차에 싣고 나섰습니다.
달리는 고속도로 가로수들이 손뼉을 치는 듯 바람에 흔들렸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이팝나무꽃향기에 콧노래 절로 나오는 여행길이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초록은 더 짙고 연둣빛은 더 고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지만 우선 안전운전 해서 가야 하니까 기분을 조금씩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밀양아리랑 대공원, 미리 나와 기다려 준 친구를 만나 청도에 있는 시골집으로 가는 길에는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비를 좋아하는 줄 알고 오는 건지 비마저 반기는 곳 같아 기분이 좋았고 시골집에 도착할 때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시골풍경을 더 실감 나게 해 주었습니다.
글 꽃 동행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친구들 온다고 산에서 쑥을 뜯어 쑥인절미에 밀양 추어탕을 준비하고, 투병에서 벗어난 축하 파티와 스무 살을 세 번 보내고 한 살 맞는 생일잔치를 축하한다며 케이크와 장미꽃을 준비해 준 민*규 시인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글을 통해 드립니다.
글 꽃 문학 공부는 부산 광안리 앞바다를 시작으로 밀양시 청도에서 두 번째 공부를 열었습니다. 부산 광안리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회 타운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며 쌓은 추억을 잊을 수 없어서 봄, 가을 시간을 만들어 공부하기로 했고, 다음에는 대구나 이천에서 열 계획을 세웠습니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화려하고 거창한 축하 파티는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아주 흐뭇하고 행복한 평생 잊을 수 없는 글쟁이 인향과 그림쟁이 지향, 두 소녀의 멋진 날로 추억의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잔치를 벌여 주신 풍류 시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가족 모임으로 부득이 참석 못 하신 금헌 시인님이 아쉬운 날이었지만 다음 기회가 또 있으니 그때, 같이 하면 됩니다.
비가 내려주고 시골 냄새가 온 집안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밤
탱글탱글한 회 한 접시에 이슬양 모셔 놓고 빗소리에 장단 맞추며 추억을 쌓는 시간이 어릴 적 친구들과 집을 떠나 밤새도록 노는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이렇게 일탈의 첫날밤은 회포로 풀어내는 시간이었고, 둘째 날에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밀양의 명소 위양저수지와 퇴로 저수지를 돌며 지난해 글 꽃 문학 공부 첫 모임이 떠올라 지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고, 사우나로 피로를 풀어내는 아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출근길이 버겁기에 지향은 본가에 가서 잤고, 혼자 남아 별장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낯설었다기보다는 고향 집 같은 느낌이 들었고, 빗소리에 지난날의 삶과 애환을 돌아보며 빙긋이 쓴웃음 반, 눈물 반으로 풀어내고 나니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는 얼마 만에 들어 보는 소리였던가?
어릴 적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 여름이면 마루에 모기장 치고 한 식구가 다 모여 잘 때 장맛비라도 내릴 때면 잠 못 들어 짜증이 나곤 했는데 일탈의 여행지에서 듣는 빗소리는 왜 그렇게 아름답고 정 깊게 들려오던지 고맙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일탈 이틀째 밤을 보내고 퇴근한 지향과 삼인방이 밀양아리랑 대공원에서 만나 표충사 가는 길에 풍류 시인님께서 따끈한 칼국수를 사 주셔서 먹고 밀양 다목적댐 가는 길에는 얼음골 사과를 사 주셔서 집에 가지고 와 늦도록 맛있게 먹으며 잊지 못할 여행을 떠 올리곤 했습니다.
위양저수지에 있는 카페에서 아보카도와 따뜻한 향기를 풍기는 자몽 차 향기에 호호거리며 추억을 남겼고, 일탈 삼 일 차 저녁에는 앞뜰에서 자란 부추를 잘라 부추전에 이슬양 모셔 놓고 두런두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짬짬이 만들어 가지고 간 누룽지 구수하게 끓여 먹고 대한창작문예대학교 입학과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맞추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섰습니다. 처음 도전해 본 3박 4일의 일탈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창녕IC를 지나 대전으로 향하는 마음은 또 다른 시작과 도전에 설렘이 가득한 시간이었고, 새로운 배움터로 가는 길은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인생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용기 내 장거리 운전에 도전해서 처음 해보는 일탈의 묘미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걸 몸소 느꼈으니 자주 일탈을 해야겠습니다. 망설이다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늦은 후회하는 일 없도록 할 것이며, 남은 삶은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 것입니다. 행복은 만드는 것도 나의 몫이고 즐기는 것 또한 나의 권리라고 독자 여러분께 감히 말씀드리며 아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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