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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경옥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경옥
ㆍ작성일 2021-12-05 11:43
ㆍIP: 118.xxx.155
화장지를 부탁해
* 화장지를 부탁해

입사하기 전, 주간센타 사무장인 친구에게 입사회유를 당하던 중 어르신들의 일화를 몇가지 들었었다. 친구는 하루일과가 웃는 걸로 시작해 웃는 걸로 끝이 난다, 일하면 굉장히 재밌을 거라 말하며 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ㅡ

 어느 날부터 유난히 화장지의 사용속도가 빨라졌다. 여자어르신들이 14분이 계신데 아무리 화장실을 자주 가신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쓰는 양을 넘어서니 의심의 눈초리가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어르신들이 화장실을 들어가실 때마다 주의깊게 살폈다. 어르신들의 화장실 사용시 동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화장지를 사용하는 모습을 더욱 유심히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한 어르신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을 발견했다. 변기에 앉아있는 시간도 길었고, 사용시마다 대변을 보신다며 시간을 끌다가 드르륵 풀리는 소리가 들려 들어가보면 다시 힘을 주는 척 하셨다. 너무 오래 계시면 변비로 고생하시니 그만 나오시라 권해도 본인은 원래 오래 걸리신다며 버티기 작전에 돌입하셨다. 안전을 위해 출입문이 없기 때문에 입구에 서서 어르신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걸어나오시는 어르신의 양주머니가 두둑하다. 직원들은 은근슬쩍 말을 걸며 탐색을 시작했다. 주머니에 무엇이 들었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없다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 주머니를 확인하니, 화장지 반개 분량이 돌돌 말려 꽉 채우고 있었다. 왜 화장지를 챙기셨냐 물으니 집에서 가져온 거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확인한 상황이니 화장지 도둑으로 몰기에 증거가 약했다. 용의자 선상에 올랐으니 더 주의를 하며 지켜봤다. 그 후로도 두어번 화장실을 더 가셨고, 예상대로 주머니는 더욱 더 배를 불렸다. 어르신은 자신도 모르게 화장지를 훔치고 있었다. 찾았다. 화장지 도둑.
입소한지 몇 해가 지났지만 어르신의 손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우기기 대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어 모든 직원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분이셨다.

이야기를 마친 친구는 말을 덧붙였다.

- 이런 황당한 일들이 그냥 일상이다
- 너는 오면 더 많은 것을 볼 것이다
- 아무것도 상상하지 마라, 직접 눈으로 보기전까진.

ㅡ

이야기로 듣던 상황을 눈 앞에서 보았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니 드르륵 드르륵 화장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칸막이를 돌아 변기쪽을 바라보니,, 아이고 어르신~ 둘둘 감던 화장지를 얼른 팬티속에 숨기신다.

''어머니~ 화장지 챙기시면 안되요~''
''나 안가져 갔어! 똥이 안나와서 힘주는 중인데 뭔 화장지를 가져간다 그래?''
''네~~ 알았어요. 어머님 시원하게 볼일 보구 나오세요~''

가끔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해야할 때가 있다. 본인도 저러고 싶어 하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 너무 심한 제약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센타 입장에서는 비품관리비가 늘겠으나 어머님의 마음에 흠집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챙기신 화장지는 요양보호사들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도벽이 치매로 오신 분이라도 정은 있으셔서,

''어르신, 저 화장실 가고 싶은데~ 화장지가 없어요. 조금만 꿔주실래요?''

이리 얘기하면 주머니를 뒤져 훔친 화장지를 두 칸, 세 칸씩 나눠주신다. 더 많이 좀 달라하면,

''똥 쌀 거여? 오줌이면 두 칸이면 되지 낭비하지마러!''

아이고~히히히히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 화장지는 다시 되돌아온다.

3일 째 근무 중이지만 한 세 달은 근무한 느낌이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어르신마다 독특한 행동패턴이 있는 것도 알아 간다. 일일이 확인하고 맞춰주고 보듬다보니 나 자신을 챙길 겨를이 없다. 웃픈 현실을 늘 마주쳐야 하는 직업인가보다.  퇴근을 하고 가족들 저녁을 먹이고 집안정리를 마치고 나면 씻는 것도 귀찮아진다. 우리엄마 살아생전에 이리 해드렸다면 효녀상 받았을텐데.. 엄마에게 못한 자식으로서의 보살핌,  더 많은 어르신에게 베풀라는 엄마의 벌인가 보다.

벌, 참 단짠하다.
이름아이콘 염규식
2021-12-05 15:32
회원사진 		화장지---- 잘 읽고갑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글로 뵙기를 희망합니다--
   
이름아이콘 이경옥
2021-12-09 18:33
회원사진 		《Re》염규식 님 ,
존경하는 염규식작가님~
답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찾아주신 발걸음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행복한 저녁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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