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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경옥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경옥
ㆍ작성일 2021-12-05 11:23
ㆍIP: 118.xxx.155
비 지나는 길목에서
*비 지나는 길목에서

어느 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네요. 함께 걸었던 길 위로 아직 다 채우지 못한 생이 떨어져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서 몸을 뒤척이고 있어요. 봄은 부지불식간 지나가 버린지 오래고, 따갑게 내리쬐던 햇살을 품은 여름마저 살갗만 조금 그을리고는 저문 낮처럼 고요한 가을 뒤에 서 있네요. 하루를 삼킬 듯 쏟아지던 빗줄기를 보았나요? 남몰래 가슴앓이 하던 눈물을 씻기던 그 빗소리를 들었나요? 어땠나요 그대는? 아무렇지 않던가요.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요. 시멘트 도로 위를 열맞춰 흐르던 빗줄기처럼요. 잘 붙어있던 어린 잎새마저 강한 바람에 빗줄기 속으로 곤두박질 치네요. 그저 바라만 봐야하는 인간의 마음이 이럴 땐 참 무정하게 느껴져요. 슬리퍼 위로 나뭇잎 몇 장 들러붙네요. 떼어내려 할수록 살기위해 매달리는 생명의 손길이 짖꿎기만 해요. 나보고 어쩌라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한테 뭘 어쩌라고.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네요. 간간이 섞인 빗방울이 얼굴에 닿아요. 나쁘지 않은 촉촉함이에요.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이 아직은 지상과 경계를 짓는 것이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닌가봐요. 비는 멈췄어요. 저 먹구름 속에 다른 비가 숨어 있겠죠? 비행기가 지나가요. 전투기일지도 모르겠네요. 공군비행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있거든요. 전투기는 비를 만났을까요? 봤다면 미리 알려주면 좋겠어요. 비 맞기 싫어요 지금은. 왠지 엄마가 그리워질 것도 같거든요.

오늘은 나의 생일이에요. 몇일 전 엄마의 두번째 기일을 깜빡했어요. 그런데 웃기죠. 나의 생일을 챙겨주는 이가 하나도 없네요. 벌 받은 거겠죠. 누구도 탓하진 않아요. 생일, 그게 무슨 대수라고요. 꼬박꼬박 챙겨먹던 생일도 없었는데요. 엄마도 제 생일을 잊은지는 아주 오래된 일이기도 했어요. 그땐 먹고 사는 것도 버거웠으니 엄마를 원망하진 않아요. 그런데도 이런 날은 유독 엄마가 그리워요.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못들어도 좋으니 이름이라도 불러주면 좋겠어요. 이젠 들을 수 없는 엄마의 목소리가 비만 내리면 눈가를 축축히 적셔버리네요. 비는 엄마의 목소리를 닮았어요.

오늘같이 하루종일 비가 내리면, 비가 지나는 길목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봐요. 하루종일 엄마를 그리워해요. 그곳에서 엄마는 행복하겠죠? 다시, 비가 내려요.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나도.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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