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7-22 10:13

ㆍIP: 61.xxx.139

성북동 걷는 길4

성북동 걷는 길
성북동에는 비둘기가 없다

4. 한용운의 심우장과 북정마을

숙정문을 내려와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걷는다. 숲은 울창하고 주변은 고즈넉하며 아름답다.
나무는 푸른 이끼로 녹색 치마를 입은 듯 싱그럽고 오래된 비밀의 정원처럼 신비로운 좁은 협곡을 따라 십여 분 내려오다 보니 큰길과 만날 수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은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저마다 상상력이 넘쳐나고 풍요로운 예술의 혼을 불어넣은 건물들이 펼쳐진 또 다른 세계로 미지의 꿈을 꾸는 동화였으며 멋스러운 유럽풍 장식을 달고 골목마다 아기자기하거나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어 마치 문화가 산책을 하는 느낌이었다.

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배고픔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았다.
속절없이 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꼽시계는 이미 오후 두 시를 넘겨 시침과 분침이 서로 경쟁하듯 밀고 당기며 허기진 육신에게 끝없는 신호를 보내니 우선 시장기를 해결해야 했다.
누룽지 백숙 간판 밑에 모여든 사람들이 번호표를 손에 들고 줄지어 서 있다.
이곳이 맛집이기도 하지만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복날 즈음해서 손님이 인산인해로 야단법석이다.
시장기를 해결하고 영수증 지참 시 갤러리 카페 20%
할인이라는 문구에 현혹되어 바로 카페 2층으로 올라가 카푸치노 한잔과 갤러리 카페 답게 돌과 옥으로 만든 예술 작품과 도자기를 감상하는 호사도 함께 누렸다.

느릿한 경사를 따라 오분 정도 내려가자 만해 한용운
활동 터라는 표지가 보이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용운 선생의 동상 옆에 앉아 선생의 손을 맞잡아본다.
차가운 느낌의 질감과 달리 마음은 훈풍이 불어오듯 따스함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우측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안내판을 따라 시선을 돌려 선생이 끝까지 독립운동의 절개를 보이다 입적한 심우장으로 향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얼이 서려 있는 곳 심우장은 한문으로 쓰인 소박한 현판이 걸려있고 안으로 들어서자 정갈한 마당과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출한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로 생전에 선생의 글씨와 옥중 공판기록을 비롯해 연구 논문집 등과 함께 선생이 사용하던 간단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마당 한쪽에는 독립 운동가 김동삼의 유해를 가져다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과 현수막에는 심우장이라는 시가 걸려 있다.

심우장

잃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 명칭은 선종의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지은 것으로 나라 잃은 슬픔을 비교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였고 직역을 하면 선종에서 말하는 열 가지 수행 단계에서 "자기 본성인 마음의 소를 찾는다" 는 심우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심우장의 주택 구조가 일반적인 남향이 아닌 북향인 것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깊은 뜻에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 총독부 건물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고 하니 그 뜻을 참으로 알만하다.
당시 수많은 문인은 일제의 총칼과 무력 앞에 무너지며 친일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살아왔다.

저들의 붉은빛 총칼은 날카로운 정오의 햇볕처럼 따갑고 서슬이 파란 일제의 악랄한 조직적 만행과 내선일체의 정책에 힘없는 지식인들은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 무릎을 꿇었지만, 만해 한용운 선생은 눈물 어린 인간적 갈등과 두려운 비애 앞에 흔들림 없이 무너지지 않았다.
일제에 대한 무언의 저항 정신으로 끝까지 자존감을 지키려는 절개의 마음과 독립을 위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하는 선생의 마음이 송곳처럼 일어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을 위하여 끝까지 저항하는 삶을 살았지만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 심우장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였다.

님의 침묵의 서문에서 독립을 바라는 소망과 나라 잃은 자들의 아픔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룬(그리운)것은 다 님'이라 말하고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이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적었다.
암흑의 시대를 사는 힘없는 백성을 향한 안타까움을 간절히 표현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곧은 절개와 그의 뜻을 기리며 성북동 비둘기를 찾아서 북정 마을의 골목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른다.
골목집 담을타고 옥상까지 뻗어 있는 담쟁이의 끈질긴 생명력은 북정마을의 언덕길을 닮았다.
파란 이파리는 하늘 높이 오르기를 갈망하는 새의 날개 같아 보였고 담 옆에 심어 놓은 분홍 설란은 비 개인 햇살을 받아 꽃 입술을 열며 환하게 웃는다.

골목마다 한용운 님의 독립운동의 서나 님의 침묵의 글귀를 짧게 메모해 놓았고 여기저기 벽화도 보이고 골목은 좁고 높게 이어진 미로였으나 수없이 많은 사연과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길의 냄새가 역사의 뒤안길처럼 이어진다.
김광섭 시인이 말한 "성북동산에 번지가 생기면서
본래 살던 비둘기 많이 번지가 없고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는 글귀가 무색하게 비둘기가 사는 번지도 없고 돌 깨는 소리도 잠이 든 지 오래다.

마을 뒤편에 병풍처럼 둘려 있는 성벽이 바람을 막고 있는 성북동 달동네 북정 마을의 흔적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고 성북동 주거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돌았다던 김광섭의 비둘기는 작은 공원의 조형물 벽에서 소리 없이 울고 돌처럼 차가웠다.
나이 먹어 늙은 집들은 적막과 고요함으로 성벽의 대리석 인양 굳건함으로 버티고 세월로 지쳐버린 낡은 벽화는 침묵하며 오래된 성곽 밑 마을의 비밀을 간직한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전설처럼 언덕을 지키고 있다.

북악산은 허리에 오래된 띠를 두르고 도성의 경계를 이루어 성 저편의 공간에서 벌어지던 일들과 성안의 이야기를 구별할 수 없었고 그곳 성벽을 잇대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메아리처럼 간직하고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내려왔지만 이제 옛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입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건너편 산자락 높은 곳에 비둘기 집을 닮은 저택들 만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북동에는 비둘기가 모두 날아가고 없었다.

두물머리 한강 천리를 가다.

성북동 걷는 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