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3-23 10:06

ㆍIP: 180.xxx.102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10

운명의 굴레

병원에 다녀온 후로 수미가 한 번 더 학교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링거를 맞고 퇴원을 했다.
“음악을 한다고 너무 연습을 많이 하는 것 아니야?”
“여보, 제가 몸이 약한 것 같아 보약 좀 해서 먹이구려.”
“알았어요. 계집에 이젠 별걸 다 하네. 누굴 닮아 몸이 저리 약한 거야.”
이때까지 만 해도 이들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운명의 사슬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로 수미는 영문도 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증세도 없이 극도로 피곤함을 호소했고 점차 학교에 빠지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민철의 자랑이던 공부 잘하고 바이올린 잘하는 딸은 없었다.
수업 일수가 모자랄 정도로 학교 다니는 것이 어려워졌다.
힘들게 학교에 가면 수업 중에 또 쓰러지고 이제 학교에서도 친구들도 놀라지도 않았다.
“비실이 또 쓰러졌대 정말 제는 대체 왜 저래.” 친구들의 비아냥 석인 목소리가 머리 뒤에서 송곳처럼 날아왔다.
그런 날이면 수미는 양호실에 가서 몇 시간 누워있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내는 공부 잘하고 음악적 재능으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딸에의 졸업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한심스러웠다.
“선생님 우리 아이 어떻게 해서라도 졸업만은 하게 해주세요.”
참 “수미 어머님, 수업 일수가 모자라서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학교에 와서 쓰러지면 양호실에서 하교를 매일 하게 할 수도 없고
수미 어머니 정말 걱정이네요.“
좀 마르고 깍쟁이 같은 인상의 사십 대 중년 여선생의 표정이 골치 아프다는 듯 경직되어있다
두 사람 사이에 무겁고 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민철은 퇴근하다 직원들과 거나하게 술을 한잔하고 딸 아이 걱정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파트 입구를 들어섰다.
민철은 별로 술을 즐기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술을 많이 먹는다.
수미가 아픈 이후로 사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다른 날 같으면 직원들과 술을 한잔할 때면 우리 수미가 말이야 요번 청소년 콩쿠르 알지 거기서 우승을 먹었다는 거! 아니야 하면서 신나게 딸 자랑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요즘은 자랑은커녕 걱정덩어리로 변해있으니 재미가 있을 리 없다.

아내가 없는지 초인종을 몇 번 눌러도 기척이 없다.
아파트 번호키들 천천히 누르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민철은 온몸이 얼어붙고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실에는 수미가 있었다.
커다란 베란다 문을 방충망까지 전부 활짝 열어 놓고 베란다 앞에다 탁자를 끌어다 놓은 상태로 그 위에 올라서 있었다.
고개는 하늘을 쳐다보고 양팔은 벌리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아차, 하면 추락하기에 십상인 상태에서 보통 때 같으면 무서워서 엄두도 못 낼 자세다.
민철은 순간 어머니 강씨댁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누나 민숙의 모습이기도 했다.
민철은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당신 왜 그래 당신이 손녀딸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는데 손녀한테까지 들어가서 이러는 거야? ”
“빨리 나오지 못해.”
민철은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아니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빨리 그 몸에서 나오지 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수미는 이미 수미가 아니었다.
“민철아, 이놈아 담배 있으면 하나, 줘봐?”
강씨댁의 목소리가 터무니없이 수미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민철은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무녀가 된 이후에 강씨댁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었다.
민철은 기가 막혔다.
‘이놈아, 내가 왜 죽었는지 알아 그년이 죽인 거야.’
‘그 나쁜 년이 날 죽였다구,
외가 쪽에 자살한 삼촌이 있다는데 수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이라 수미가 알 턱이 없는 내용이었다.
수미는 삼촌이 되었다가 강 씨가 되었다가 때로는 누나 민숙이가 되기도 했다.
“ 제발, 제발, 당신 빨리 나와 우리 수미에게서 나오란 말이야.”
민철은 거의 동물처럼 울부짖었다.
순간 수미는 눈을 하얗게 흰 창을 보이며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을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이 운명의 장난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도저히 머리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머니 강씨댁이야 배운 것이 없고 무지해서 무속에 빠질 수 있다 치고 누나 민숙은 사범대를 나와 교사까지 하는 나름 엘리트 아닌가?
누나가 무병에 걸려 인생의 폐인처럼 사는 것도 모자라 아직 피어 보지도 않은 저 어린것에게까지 이건 아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철은 어금니가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우리 딸만은 절대, 절대 당신의 희생양으로 만들 수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깊은 꿈속에서 헤매듯이 고요한 표정으로 한참을 자고 난 수미는 이상하게 변해있었다.
그날 이후 반말투의 어린 양을 부리던 수미가 아니었다.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말투 자체가 아예 딴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소녀, 문안 올리옵니다.”
“소녀 오늘은 몸이 편치 않아 학교에 갈 수 없을듯하옵니다.”
마치 사극에 나오는 조선 시대 여인의 말투이고 모든 것이 조용하게 움직이며 매사에 공손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런 변화된 모습에서 민철은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사업도 이미 내팽개친 지 오래되었다.
수미를 데리고 이름 있는 사찰을 안 찾아다닌 곳이 없다.
퇴마를 잘한다고 하는 절에 가서 몇 날 며칠 먹고 자면서 퇴마 의식을 치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업해서 벌어놓은 돈도 거의 거덜이 났으며 아내는 아내대로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가정 살림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딸 수미 만은 무녀의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한이 맺혀 있길래 어머니 무녀의 원혼이 구천을 맴돌며 극락으로 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는지 자식들의 앞날에 행복은 주지 못할망정 저주 어린 삼대의 고통을 주는지 어머니가 원망스럽다.
원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삼대에 걸친 운명적인 굴곡진 삶이 애처로워 견딜 수가 없으며 가슴이 시리도록 서럽고 피눈물로 얼룩진 현실이 너무 아파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 오늘은 구룡사에 다녀오겠습니다.
소리가 인사를 하고 조용히 대문 밖을 나서고 있다.
창밖에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여러 형상을 그리며 피어오르고 있다.
뭉게구름 사이로 어머니 강씨댁, 누나 진숙, 딸 수미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갔다.
세 개의 점으로 보이더니 두 개로 보이다 한 개의 점으로 흩어지며 민철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리고 있다.

레퀴엠(requiem)은 기독교에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위령미사)’에 연주되는 무겁고 침울한 예식 음악이다. 무덤에 잠자는 사람의 영혼이 최후의 심판날에 천당으로 구제되어 들어갈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미사의 전례(典禮)에서는 처음의 입제창(入祭唱, Introitus)이 라틴어의 'Requiem aeternamdonaeisDomine'(주여,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옵소서)로 시작되므로, 이 미사를 레퀴엠 미사, 줄여서 레퀴엠이라고 하였다. 레퀴엠은 진혼곡(鎭魂曲)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한영택

2020-03-25 07:48

딸아이 수미의 기이한 행동
이를 목격한 민철이의 무너져 내리는 심정
무녀 강씨의 대물림을 막고자 애쓰는 노력이 아프네요
‘진혼곡’ (운명의 굴레) 작가님의 글 잘 봅니다
건강하시고 계속해서 건필하세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이도연	한영택 작가님 반갑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오즉 하겠습니까? 운명적인 순간 앞에서 무너지는 절망을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3/25 15:05

장선희

2020-03-25 12:21

이도연 작가님 민철이가 지켜보는 수미의 행동이 너무 안타갑네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면
수미는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아야 겠네요
펼쳐지는 이야기에 기대를 해봅니다
제가 어릴적 아는 지인이 그렇게 병명 없이
계속 아프다고만 하더니 결국
점집을 차렸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일이 실제도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이 아주 허구성으로만 생각하진 않는답니다

요즘 봄이 한창인 꽃피는 거리를 마음놓고 즐길 수 없는
코로나19 감염병에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도연	장선희 소설가님 안녕하세요 위소설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불가사이한 현살들이 존재 하는 것 같습니다. 들에는 지천으로 꽃이 만발 했습니다. 코로나가 극성이긴 하지만 야산이나 둘레길 같은 곳은 괜찮은듯 합니다. 요번 주말에는 잃어 버린 봄을 찾아 떠나 보세요 감사합니다.	3/25 15:08

주야옥 2020-04-12 17:06	이도연 작가님 읽을 수록 스릴있고 재미있는 작품 배독하며 감사인사 남겨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좋은글 많이 남겨주셔요.

꿈꾸는 장호항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