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7-20 09:04

ㆍIP: 61.xxx.139

성북동 걷는 길 2

성북동 걷는 길
성북동에는 비둘기가 없다

2. 삼각산 기슭의 길 위에서

길상사를 나와 삼각산 위쪽으로 오르막길을 따라 걷는다. 이곳의 길들은 직선이 없다. 길은 물결을 이루듯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구획을 이룬다.
하늘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살며시 가루비가 내린다.
보슬비도 아니고 이슬비도 아닌 것이 우산을 쓰기도 그렇고 안 쓰기도 그렇고 마치 미세한 가루처럼 바람에 실려와 살금살금 풀잎에 앉고 머리에 녹아내리며 물방울이 된다.
법정 스님의 마음을 가득 담은 정갈함에 몸은 고요하고 길도 젖고 마음도 젖는다.

이리저리 구부러지듯 직선인 듯 곡선인 길을 따라 오르자 우측 가구 박물관 50m 화살표가 방향을 가리킨다.
그냥 올라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들러 보아야겠다는 욕심으로 차들이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내려오는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서 좀 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마음에 담았건만, 이 또한 욕심이구나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가구 박물관 앞에 이르자 생각과는 다르게 둘러쳐진 돌담 울타리 안에 고풍스러운 한옥의 모습이 멋스럽게 보이고 입구는 커다란 솟을대문이 있어 고풍스럽다.
때마침 40대 여성들 칠팔 명이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었고 직원인 듯 보이는 젊은 여성이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사진 작품을 연출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사진 촬영이 불편하지 않도록 잠시 자리를 피해 서 있다 촬영이 끝나고 정문을 들어가려 하는데 환한 미소의 젊은 여성이 다가오며 이곳은 출입 정원을 관리해서 반드시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지금 막 출입 시간이 끝이 났으며 추후 예약을 하고 오시라고 꽃잎 같은 미소로 설명을 한다.
원래 없던 일정을 욕심을 낸 것이니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언덕길을 오분 정도 오르자 높은 계단 위로 삼각산 정법사 현판이 길을 막아선다.
얇게 내리는 빗속에 몸을 웅크리고 정문 양쪽에 앉아 있던 검둥개 두 마리가 마치 부처님의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력사처럼 버티고 있다가 내가 올라오자 꼬리를 흔들더니 전기 검침원이 올라와 건물 시설물을 만지자 맹렬하게 짖어 댄다.
검둥이 들도 부처님의 가름침을 깨달아 똑똑해진 것인가 하는 마른 웃음을 지으며 경내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내려와 옛돌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잿빛 하늘은 물기를 잔뜩 가두어 무겁게 내려 앉아 입구가 썰렁하다.
코로나가 극성인 시기라 그런지 박물관은 단 한 사람의 방문객이 없고 해설은 할 수가 없으며 입장권을 산 후에 관람을 하라는 문구가 입구에 바람처럼 펄럭이고 있다.
오래간만에 나타난 관람객이 반가워 그런지 안내문을 읽는 동안 여직원이 입구까지 나와서 관람하시겠냐고 안내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칠천원이라는 싸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선다.
실내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가득해서 언덕을 걸어 올라오며 더위에 지친 몸이 가벼워진다.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문인석과 무인석, 장군석이 전시실에 빼곡하다.
이렇게 무거운 돌로 만든 석물과 문화재는 수탈의 역사를 통해 일본을 비롯한 여기저기 각국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환수해서 이곳에 전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탐욕이 바위보다 무거운 것 같다.
이 땅의 수호석이 어느 나라 박물관에 또는 공원에 심지어 부잣집 정원에 장식물로 있다가 다행히 제나라에 돌아와 이곳에 전시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다.

나선형으로 4층까지 이어진 전시공간에 제각기 다른 표정과 지역마다 다른 재질로 조각된 석물들이 수없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어느 마을 입구에서 수호신으로 있다가 세월 속에 풍화되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석물을 바라보니 저마다의 전설과 신화같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느릿하게 걸어서 옥탑 층에 오르자 야외 마당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낭랑한 목소리가 삼각산 너머까지 아득하게 메아리 치고 삼각산,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과 성북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상쾌한 풍경이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대사관로의 성 같은 건물 사이로 발걸음을 옮겨 북악산을 바라보며 삼청각으로 향한다.

대사관로의 길옆에는 군데군데 경찰 초소가 있고
각국의 대사관저가 줄줄이 늘어서 있으며 건물이라기보다 대지 위에 철옹성처럼 쌓아 올린 영주의 성이며 대지주의 위대한 상징으로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지 않는 높은 곳에 새들의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텅 빈 도로에 가끔 오가는 차들은 특별한 번호판을 달고 있으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비싼 승용차는 길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이곳의 길들은 깊고 성은 높아서 안을 볼 수 없으며 높고 웅장한 건물 앞에 알 수 없는 주눅이 들어서 발걸음을 빠르게 이동하다 새로운 풍경과 마주한다.
어느 대기업 회장님의 저택인지 모르지만, 붉은 띠를 이마에 두른 사람들이 모여서 목청을 높이고 성주는 철문을 굳게 닫고 침묵으로 농성을 벌인다.
풀처럼 여린 몸을 곧추세워 담쟁이처럼 벽에 붙어 한가닥 희망을 품고 높고 높은 성벽 아래서 철옹성 같은 철 대문을 두드리며 생존을 외치는 그들은 이방인이고 이편으로 편입할 수 없는 또 다른 계층으로 분리되어 회장님의 부드러운 미소는 개나 주려나 이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다.

커다랗고 육중한 대문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자동으로 스르르 열리면 안과 밖은 동일한 공간이지만 또 다른 세계를 사는 이방의 공간일 뿐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이방인은 부러움과 슬픔의 눈물을 닦아 보지만 물기가 빠져버린 육신은 그저 길 위를 걷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라 고는 없다.
성들의 성을 둘러싼 삼청각 위 성곽에 버티고 있는 숙정문을 바라보니 아직도 하늘에는 비구름이 가득하다.

길은 언제나 곡선이었다

이 도 연

길은 일직선으로 나아 있었다
아니 일직선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길들이
저마다의 모양대로 나아가고
뻗어가는 이치를 알지만

마음 속에 다듬어 가고 있는 길은
수없이 많은 골목길과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길을 걸으며
태연하게 일직선으로 나아 있는
길이라고 위로를 했다

나는 안다 당신의 길이
세상의 미로를 돌다
지쳐 버린 여린 마음을
잃어버린 길에도 새로운 길이 있다는 걸

남들이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 길이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세상의 길들은
정해진 대로 나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르듯 강이 흐르듯
저마다의 모양으로
거스르지 않고 길은 흐르나!
사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이 자신의 길이라고 우기지만
자연의 길들은 오만하지 않고
거스르지 않으며 스스로 길을 만들며
저마다 길을 간다.

빗방울 떨어지는 강가에서
흔들리는 강물에 길을 물으며
직선 주로를 걸어간다 생각 했지만
길은 언제나 곡선이었다

그러나 동상이몽의 길을 걷는 동행도
즐겁고 행복하였다 말하고 싶다.

성북동 걷는 길3

성북동 걷는 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