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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10-07 14:00
ㆍIP: 175.xxx.88
경주" 천 년의 숨결을 찾아서 넷
경주" 천 년의 숨결을 찾아서 넷

이 도 연

문무대왕릉

 바다는 검고 파랬다 파도는 수평선 저 끝에서부터 쉴 새 없이 달려들며 대륙을 범하는 거대한 기세로 육지를 향한다.
검푸른 빛깔로 먼바다에서 달려오다 숨 고르기를 한 차례 거치면 이내 파란 물결로 바뀌다 해안가 자갈들과 부딪치면 온몸을 용솟음쳐 오르다 하얀 물거품으로 변하며 파도의 생명은 소멸한다.
바다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끝없이 밀려들며 바람을 탄다.

 바람 속에는 파도 소리가 무서운 굉음을 내거나 시원하고 잔잔한 기세로 오거나 때로는 낭만을 싣고 달려오기도 한다.
바다를 때리는 철썩거림과 제풀에 지쳐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소리나 해안가 문무대왕의 암벽에 부딪혀 자멸하는 바다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파도의 소리이고 바다의 소리이다.

 뜨겁게 해안가를 작열하며 백사장 모래를 달구는 태양은 정오의 정점을 불태우고 있다.
해안선 가까이는 검은색의 자갈들이 파도에 밀리고 바람에 부서져 제 각각의 모습으로 반질거리며 해안가를 열병하듯 길게 선을 그어 놓았다.
자갈들이 열병하는 파도 건너에 붉은 듯 파란 듯 커다란 암초가 밀려오는 파도와 맞서 하얀 물살을 끝없이 가르고 있다.

 바위는 지금도 전쟁을 수행하는 문무대왕의 전신 같다.
끝없는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 드디어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하고 당의 세력까지 축출하여 통일신라의 찬란한 문화시대의 서막을 열은 광대한 위업에 비교하면 문무대왕의 능이라는 칭호는 결코 어울리지 안는다.

 그러나 바위는 초라하지만 대왕의 나라를 향한 열망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드넓은 동해의 푸르름 못지않다.
죽어서도 나라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죽음의 육신을 이곳 바위에 뿌려 영혼을 일으켜 외세를 막아 이 땅의 백성을 지켜내려 했던 대왕의 꿈과 기상이 높은 파도를 일으킨다.

 백사장 여기저기에는 대왕의 기를 받아 안전한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하고 개인의 길흉화복을 기원하는 기원제를 지내는 제단을 마련하고 북과 꽹과리를 울리며 대왕의 혼을 부르고 있다.

 바람이 점점 거세 진다. 파도는 덩달아 높고 가파르게 치솟아 올라 바다와 하늘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며 백사장 안쪽 깊이까지 몰려들어 발 밑에 고이다 사그라들 길 반복한다.
막걸리 한 사발이 목 울대를 통해 깊은 내륙을 범하려는 파도처럼 온몸을 적셔 내리고 문무대왕의 꿈은 오늘도 파도 소리와 함께 신라의 혼을 깨우며 끝없이 철석이고 펄럭인다.
   
골 굴 사

 추령 터널은 길고 어두운 토함산의 심장부를 꽤 뚫고 한참이나 숨 가쁘게 열기를 토해내며 이어진다.
숙소를 출발해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보문호의 물길을 따라가다 토함산 자락에 이르러 경주 시내와 동해를 연결하는 추령 터널을 만난다.

 터널은 길고 새롭다 도시를 벗어나 신대륙으로 가는 지름길로 통하는 마법의 통로 같다.
터널을 벗어나자 경주 시내의 거대한 봉분 대신 산과 계곡 드넓은 들판과 구불구불한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허언이 아님을 안다.
도로가 잘 정비되고 주변의 숲과 어우러진 부드러운 선을 따라 그림을 그리듯 차는 달려간다.
4번 국도를 따라 추령 터널을 지나 감포 방향으로 방향을 잡으면 함월산 기슭의 오래된 송림 사이를 헤집고 골굴사 석굴 사원의 현판과 마주한다.

 정면으로 길게 뻗어 오른 길 위로 거대한 암석이 병풍처럼 서 있고 산 중턱에는 운해의 무리가 산을 부드럽게 감싸 흐르며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입구 좌측에는 조계사 골굴사 선무도 총본산이라는 현판의 금빛 전각이 눈에 들어오고 초입부터 심한 경사로 옆으로 원효가 다녀간 길이라는 안내표지를 보며 무거운 발걸음이 신발을 끌어당긴다.

 아마도 원효가 열반한 혈사로 추정되는 사찰이기도 하다 길 우측에는 여러 형태의 선무도 초식을 표현한 동상들이 마치 중국의 소림이나 인도의 라마승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이다.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 하는 선무도 시연 시간과 맞추어 온다고 부지런하게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감탄들이 발걸음을 잡아 늦게 도착하였다.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길은 수직의 암벽을 오르듯 가파르다.
이승과 저승을 향하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 위로 오르는 착각이 들고 대적광전 마당에서 이미 시작한 선무도 시연은 무를 통한 부처의 깨달음과 합일을 시도하고 있다.

 힘찬 기합 소리는 선과 악의 혼돈, 갈등 응징과 자비의 혼란함으로 깊은 암자 곳곳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절도 있는 동작 날렵하게 나르는 제비처럼, 때로는 하늘의 제왕 독수리의 날카로움으로 지축을 향해 내리 꽂히고 맹수처럼 사나운 권법을 구사하며 춤추듯 무술의 경지를 향해 정진한다.
정적이며 동적이고 춤추듯 흔들리다 바람처럼 날리고 바위처럼 단단하다 물처럼 유연함으로 모든 동작에 숨을 죽인다.
선무도는 깊은 암자로부터 속세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수행을 하며 유와 무의 세상을 펼쳐 보인다.
 대적광전 옆으로 바위굴 속의 관음전이 보이고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암벽에는 12개의 석굴이 있고 석굴마다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가장 높은 곳 암벽에는 부조 형태로 새긴 마애여래좌상(보물 581 호)이 모셔져 있다.
1500년 전에 인도에서 온 광우선인 일행이 인도의 석굴사원을 본떠 함월산 석회암벽에 골굴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천연 바위굴로 이루어진 사찰로 암벽을 타고 돌며 부처를 모신 모습이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다.
통일 신라의 불법은 들에도 산에도 암벽 위 어느 곳이든 토속민간 신앙과 함께 존재하고 힘을 발휘했다.
불법은 힘의 원천이고 나라를 지탱하는 그 시절의 신앙이요 법이었음이 틀림없다.
대적광전 옆의 깨달음의 약수를 시원하게 한 모금하고 천천히 돌계단을 내려와 굴곡사를 뒤로하고 천년 고도의 신라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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