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2-17 10:36

ㆍIP: 180.xxx.102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5

죽음

오늘따라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다.
언제인가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대나무 잎사귀가 심하게 소리를 내며 바람이 일던 날 대밭에서 보았던 그 하늘하고 똑같은 구름이 투명하게 파란 하늘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리고 아득하게 징 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
파란 하늘 위로 퉁겨져 오르듯 솟아오르는 무녀 강씨댁의 자태가 아름답다.
복사꽃 고운 꽃잎 날리며 섬섬옥수 긴 소맷자락이 하얗게 펄럭이며 하늘을 가른다. 머리에는 삼각형 고갈 모자를 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어느덧 무녀 강씨댁은 새가 되어있었다.
수많은 한을 뿌리며 떠돌았던 삶이 이제는 새가 된 것이다.
훨훨 하늘을 날아 바다를 넘어 산을 넘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빨간색 등대가 있는 조그만 포구에는 파도가 철석이고 그 너머로 새파랗고 검은 바다가 보이고 또 그 너머 동해의 넘실대는 고향 바다도 보였다.
오늘도 그 옛날과 다름없이 파도가 밀려오면 바닷가 해조류들이 짙은 초록색 이파리를 휘휘 흔들며 물결치듯 머리채를 흔들며 출렁거리기를 반복했다.
포구 옆 조그마한 마을은 딱히 변한 것이 없다.
무녀 강씨댁의 비밀을 간직한 바다는 깊은 침묵 하고 있을 뿐이다.
등대의 불빛을 따라 포구를 향하는 어선에서 만선을 알리는 기적 소리는 기쁨의 표현이라기보다 향수가 깊이 배어있는 그리움의 노래 같은 것이다.
강 씨의 고향 바다는 그러했다.
훠이 훠어이 하늘을 날아 고향 바다 수평선 너머로 한 마리 외로운 새가 영원의 안식과 자유를 찾아 날아갔다

무녀 강 씨의 대문 앞에 하얗고 빨간 깃발이 달려 있는 긴 장대 옆에는 노란색 근조 등이 설렁하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덜렁덜렁 힘없이 흔들리며 걸려있다.
무녀 강씨댁이 모시던 신들의 탱화가 그려진 제단 위에는 이것저것 음식이 차려져 있고 재단 아래 형광등 불빛으로 흰빛이 더욱 눈부신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네가 연신 주문을 외우며 절을 하고 있다.
강씨댁의 신딸이다.
물려받은 부채며 방울을 흔들며 흐느끼듯 주문을 외우다 통곡 소리를 내고 누군가의 이름을 울며불며 애절하게 부르고 있다.
이미 무아의 경지에 이르고 진혼굿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한쪽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배민숙, 배민철 그들은 강씨댁의 딸과 아들이었다.
민숙의 귀에는 징징대는 요란한 소리가 산 너머 아득한 곳에서 들리다 동해의 바다 이름 모를 조그만 어촌 마을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깡마르고 큰 키에 눈에는 광기가 번뜩이고 언제나 알 수 없는 주문을 웅얼거리며 외우고 있는 엄마 무녀 강씨댁이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다.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수가 없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 단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다.
집 한쪽에 차려져 있는 제단과 주문을 외우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제단의 방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습관처럼 문을 꼭꼭 닫곤 했다.
무당인 엄마가 너무도 싫었다.
그런 엄마와 눈을 마주치기도 싫고 때로는 엄마의 광기 어린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곤 했다.
어릴 적 엄마와 시장 모퉁이에서 생선 좌판을 펴고 장사할 때가 훨씬 좋았다.
그때 혼자 놀 수 있는 유일한 놀이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혼자만의 그림을 그리는 놀이로 바닥이 물에 젖어 그림이 잘 보이질 않아도 머릿속에는 그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며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다시 지울 필요도 없었다.
그 위에 또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엄마의 푸석하고 거친 손에 이끌려 집으로 가곤 했다.
어릴 적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했던 놀이가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붓이 영 잡히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더했다.
무당 강씨댁이 손님에게 액운을 막으려면 영험한 부적이 필요하다고 처방한 뒤 며칠 후에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올 것을 주문처럼 이야기하고 나면 부적을 그리는 건 당시 고등학생이던 민숙의 몫이었다.
그때 당시 이미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부적을 그리고 빛바랜 탱화를 칠하면서 미술 공부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미술 시간이면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고 교내외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고 자연스럽게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것이다.
그때는 부적을 한 장씩을 그려 주면 어머니가 용돈을 몇 푼씩 집어주는 맛에 좋았다.
붓만 잡으면 부적이 어른거리고 탱화에 나오는 산신령이 어른거려 도대체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미움과 창피함의 대명사 어머니 무녀 강씨댁이 이제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생전에 부끄럽고 본인의 삶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어머니의 죽음이 ‘잘되었다. 정말 잘됐어, 정말, 잘됐어’ 속으로 몇 번을 중얼거렸다.
‘노인네 잘 가슈,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무지하고 본인 스스로 지키지도 못하고 평생 끌려다니며 살아온 인생,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소리쳐 자신을 지켜 내지 못한 어머니가 불쌍하고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너무도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 그리 살 바에는 죽는 게 나아 죽는 게 낫다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몇 번이고 되뇌며 잘된 거야 잘됐다니까. 라고 소리치고 싶고 그렇게 미움이 아닌 원망스러운 당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어둑하게 침묵하는 영정사진을 보면서 눈가에는 굵은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삶이란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생각하면서 그렇게 원망스러운 엄마인데 눈물이 흐르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차는 조용히 경인 국도를 달려 연안부두 여객 터미널을 향해 가고 있다.
택시 속에는 아직 어린 동생의 학교 친구들이 근엄하고 침통한 표정을 애써 지으며 앉아 있다.
근본도 없고 뿌리도 없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부정당하고 이유도 영문도 없이 야반도주한 무녀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집안으로부터 소외당하고 그저 피붙이라고는 누나밖에 없는 가여운 동생 민철은 덤덤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유골이 담겨있는 항아리를 꼭 보듬어 앉고 있다.
강 씨의 물항아리와 대나무밭에 칼바람이 불던 날 깨어진 물항아리 조각을 맞추어 보려고 손에 쥐던 날, 날카로운 파편 조각 들이 가슴을 후벼 파며 생채기를 남기던 그 항아리와 닮았다.
그 파편들이 온전히 맞추어진 항아리 속에 아직은 화장의 열기에 식지도 않은 모습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 옹기를 채우고 있다.
무녀의 삶을 살아온 강씨댁은 살아생전 한 많은 세파에 떠밀리면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습관적으로 말하곤 했다.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도 싫고 명당자리도 싫고 조그만 고향 바다 곁을 지나 검푸른 바다 위로 훠이 훠어이 넓은 세상으로 날아다닐 거라고 그것이 나의 업보를 푸는 길이라고 내가 죽으면 무덤도 필요 없이 바다에 뿌려 갈매기의 밥이라도 되게 하라고 유언 아닌 유언으로 중얼거리듯 이야기하곤 했다.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된 민철로서는 어머니의 죽음이 아직도 실감 나지는 않는다.
이럴 땐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어린 마음에 의지라도 될까?
아버지 배가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다가 노숙자가 되었고 언제부터인가는 길에서 죽었다는 말도 있고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다.
겨울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에 서리가 하얗게 끼어 있고 창문에 얼룩진 서리는 각종 모양의 꽃무늬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신기한 그림으로 피어오르는 추운 날이나 겨울 삭풍이 매몰차게 시리던 날에도 어머니는 아버지 배가의 포악질로 홑껍데기 치마저고리 맨발로 집 밖에서 떨 수밖에 없었던 그런 아픔과 눈물로 한 맺힌 이슬 같은 삶을 마감하고 무녀로 살아온 어머니의 유해를 보듬고 있으면서 아버지 배가를 떠올리는 민철은 꿈을 꾸었다.
강씨댁이 대밭에서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새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 나온 것 같이 민철도 눈물이 아니라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슬픈 이유도 모르게 단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 만으로 슬픔은 충분하다.
어머니가 평상시 중얼거리듯 한 이야기가 다시 한번 머릿속을 뒤흔들어 슬픈 감정이 눈물과 함께 복받쳐 올라왔다.
내가 죽거든 지은 죄가 커서 묘도 필요 없고 납골도 필요 없다.
배가에게 유린당하고 어이없이 떠나온 고향 바다 아침 햇살이 그리워 바다에 뿌려주면 내 고향 찾아가려 하니 바다에 뿌려 다우, 민철은 그런 어머니의 유언을 국가의 비밀 지령을 수행하는 첩보 요원이 된 양 비장한 각오와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 강 씨의 납골 항아리를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배는 어느덧 팔미도 앞바다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연안부두를 출발할 때 잠잠하던 바다가 팔미도 앞바다에 이르자 생각보다 바닷바람은 이리저리 불어오며 파도가 높아지며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심술을 부렸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실려 무녀 강씨댁의 혼백은 산산이 부서져 바람이 되고 물이 되고 파도가 되었다.
손가락 사이로 한 많은 세월이 바람처럼 스르르 흘러내리며 통한의 뼛가루가 고향 바다로 흘러가고 바람을 타고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렇게 한 많은 무녀 삶은 소리 없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무심한 갈매기는 먹이라도 주는 줄 알고 이리저리 날아오르며 뱃머리를 맴돌아 끼룩끼룩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수평선 위로 메아리가 되어 퍼진다.

정찬열 2020-02-17 14:42	이도연작가님~ 올려주신 진혼곡 -4편 재미;있게 바독했습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려 어린애처럼 들뜬 雪國에 온듯 나이가 들어도 그마음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고르지 못한 날씨에 늘 건강ㅇ과 함께 행복한 한주 되세요

장선희 2020-02-19 17:42	무녀 강씨댁의 삶이 너무 애처럽네요 배가의 죄는 이 세상에서 뼈속 깊이 뉘우치고 난 뒤 저승을 가야 맞겠지요 지긋지긋하게 바라보던 자식들이 더 불쌍한 인생인 것 같아요 생각 같아서는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는게 낫겟지만요 흥미있는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벌써 오늘이 우수를 알리는데 잠깐의 추위도 지나가리라 생각됩니다 꼭 마스크 하고 다니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김상화 2020-02-22 07:57	반갑습니다. 이도연 작가님 글이 흥미롭기 시작합니다 강 씨는 무녀가 되어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고깔모자도 썼군요 겨울인데 눈이 오지 않고 비가 내리네요 작가님 코로나 때문에 활동하시기 어렵지요 아마도 몇 개월은 조심조심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진흔곳 -4편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늘 행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전병일 2020-02-23 07:44	이도연 작가님 무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 잘배람하고 갑니다 요즘엔 대밭에 빨간깃발은 볼수가 없고 반듯한 집에서 그길을 가고 있지요 코로나19 시끄럽네요 언제 끝이 날련지 오리무중 입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한영택 2020-02-23 22:23	무녀 강씨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유해를 팔미도 앞바다에 날려보내는 민철이의 심정에서 삶의 비애를 느낍니다 ‘진혼곡’ 계속 흥미 있게 써내려가세요 건필하시고 건강 유의하십시오.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4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