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2-03 10:39

ㆍIP: 180.xxx.102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2

먹구름 속으로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에 배가 놈은 수시로 강씨댁을 찾았고 이곳저곳 끌려다니며 배가 놈에게 능멸을 당해야 했다.
언제나 두려운 어둠 속에서 헤매야 했고 배가 놈의 협박이 순서처럼 이어졌다.
“알리면 각오해 모두다 죽여 버릴 거야.”
협박 소리는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파고들었고 그때마다 친정 부모님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고 남편의 악다구니 소리 시어머니의 고함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 그리고 이내 무수히 많은 돌멩이가 허공을 날아 머리통이 터지면서 붉고 선명한 피들이 흘러넘쳤다.
그 자체가 강씨댁을 옴짝달싹 못 하게 조여 오는 족쇄가 되었다.

배가 놈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었다.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몇 번을 맹세했다.
마음이 유약한 강씨댁은 죽으려 해도 죽지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때로는 가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배가 놈에게는 이미 마누라와 일곱 살 딸애와 다섯 살 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강씨댁은 분노하고 터질 것 같은 심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병이 나도 자리에 누울 수도 없었다.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 시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기 일쑤이고 이 서방하고도 사이가 갈수록 멀어져만 갔다.
하루하루가 지겹게 지쳐가며 칼날 위를 걷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나날이 되었다.

어느 날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글씨 건넛마을 놈팡이 배가 눔이 사고를 치고 도망 다니는데 사람을 죽였다나, 어쨌다나, 에구 무서운 놈시끼, 가끔 우리 마을에도 나타나던데 걱정이여.......”
마을 사람들은 걱정이라기보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혹시나 놈이 이곳에 나타나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강씨댁은 이참에 배가 놈이 경찰에 끌려가 영원히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기도를 했다.
앙다문 입술은 파랗게 떨리고 있었고 얄팍한 가슴은 병아리 가슴처럼 콩닥콩닥 뛰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부처님도 하나님도 들어주지 않았고 떨리는 평화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이 서방은 읍내에 겨우내 쓸 물건들을 사러 나간 어느 날이었다.
어느 주막집에서 술추렴을 하는지 주모의 치마끈을 잡고 있는지 하얗게 밤이 새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멀리서 동네 개 짖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고 장독대 옆에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가 딸그락거리며 들려왔다.
아무리, 잠이 들면 업어 가도 모른다는 시어머니이지만 직감적으로 배가 놈이라는 걸 느끼고 강씨댁은 불안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풀럭거리는 바람에 쇳소리를 내는 문풍지는 더욱 두려웠고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는 태산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순간 문이 열리고 신발도 벗지 않은 배가 놈이 문을 열어젖히고 뱀의 아가리 속에서 튀어나오듯 들어왔다.
하얗게 질린 강씨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서울로 야반도주를 해야 하니 밑도 끝도 없이 보따리를 싸라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고 그럴 수는 없다고 입에서 맴도는 목소리는 혀끝을 넘지도 못했다.
몸부림치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빌었다.
잘못했다고 다신 안 그런다고 제발 날 여기에 내버려 두라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멍석 바닥이 눈물로 얼룩졌다.
순간 발길질이 날아들었고 꾸물거린다고 다듬잇방망이가 날아들었다.
강씨댁은 차라리 여기서 맞아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저항조차 못 하고 몸은 자기도 모르게 친정엄마가 시집오던 전날 밤에 눈물을 흘리며
“잘살아야 한다. 정말 잘살아야 하느니라.” 하면서 손가락에 끼워 주던 가락지를 챙기고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값나가는 것들과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하얀 보자기를 싸고 있다.
그 순간에도 몸과 마음이 따로 놀 수가 있나 지금 이것은 꿈일 거야, 악몽이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정신은 또렷해지고 옆에서 날아오는 발길질과 몽둥이세례도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아프지 않은 건 무슨 까닭일까?
이 와중에 무심히 코를 골며 자는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소리에 놀라 들이닥칠 것이 더욱더 두려운 건 도저히 이해 못 할 심정이다.

강씨댁은 이렇게 열여덟에 이 가집에 시집와서 일 년 만에 우연히 배가 놈에게 능욕을 당하고 그 사실이 알려질까 야반도주를 하는 신세가 되었고 두려워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더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버렸다.
보쌈 아닌 보쌈을 당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검은 달밤을 절룩거리며 걷고 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사람을 쳐 죽인 포악한 배가 눔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간다고 여우 같은 강씨댁이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다고 말 많은 여인네들의 우물가에는 입방아가 오르내렸다.
강씨댁 시어미는 “동네 부끄러워 어이 살꼬. 우리 아들 불쌍해서 우이살꼬.” 대성통곡을 하고 조상님 내들을 들먹이며 사흘 낮 밤을 울었다.

김상화

2020-02-03 21:42

강씨 댁이 참으로 불쌍하네요
어쩜 짐승 보다도 못한 배가에게 걸렸을까요
열여덜의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와서 배가에게
능멸을 당했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이도연 작가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입춘 추위가 매섭게 춥네요
내일과 모래는 훨씬 춥다고 합니다.
추위에 건강 잘 돌보시고
늘 건강 행복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도연	김상화 작가님 감사합니다. 오늘 따라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2/5 12:52

장선희

2020-02-04 13:51

이도연 작가님 소설작가 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기막힌 여자의 인생소설 시작이네요
실제로도 조상님들의 여인들은
시집 잘 못가면 괄시 받으며
매 맞으면서도 종살이 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시집살이가 끔찍 해도 죽지 못해 살아야 했구요
여기에서 강씨댁도 참 기막힌 삶이네요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흥미 진진한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글 많이 집필하시길 바랍니다.


이도연	장선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이곳에 와서 뵈니 더욱 반가운 것 같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작가가 될 수있도록 하겠습니다	2/5 12:54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3

길에서 생각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