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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2-04 14:34
ㆍIP: 180.xxx.102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3
또 다른 삶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은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집으로 오르내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산동네 비탈진 달동네 사람들은 눈이 오면 연탄재를 땅바닥에 깨서 뿌려야 겨우 언덕길을 오를 수가 있었고, 비탈길 제일위에 오두막에는 널빤지로 대충 만들어 지은 집이 있고 손바닥만 한 마당 평상 위에 파리하게 깡마른 강씨댁이 병약한 모습으로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몇 달간 어린아이가 홍역을 앓듯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기고 질긴 것이 목숨인지라 약한 첩 제대로 먹어 보지 못했어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로 힘겨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것이다.
풀려 있는 동공 사이로 뱀의 꼬리가 어디인지 모를 긴 골목과 어디부터 시작인지 모를 계단들이 달려들고 쳐다만 봐도 숨이 가빠질 정도로 이어져 있다.
길 아래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오가고 우측으로는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들이 길게 줄을 선 성곽도 보였다.
성곽 밑으로는 잘 정돈된 잔디들이 파란색에서 누런빛으로 변하면서 겨울의 문턱으로 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성곽 안에 우뚝 선 장대가 보이고 그 옆으로 오래된 노송들이 풍진 세월을 비웃으며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가지를 늘어트리고 손짓하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밤이 되면 하얀 수은등이 성곽 돌담을 따라 일제히 불을 밝히고 줄을 서서 졸고 있으며 산 능선 넘어까지 이어진 불의 무리가 성곽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발아래 내려 보이는 풍경만으로 보면 이곳이 판자촌 꼭대기가 아니고 높은 빌딩의 스카이라운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경은 멋지다.
풍경이 아름답고 멋질수록, 높은 이곳 강씨댁의 삶은 이방인의 곤궁한 삶처럼 피곤할 뿐이다.

 수원의 성곽 옆 판자촌으로 밤사이 보쌈 아닌 보쌈을 당해 끌려 온 지도 벌써 한해를 지나 찬 바람이 살살 불기 시작하는 겨울의 문턱에 와 있다.
처음에 며칠을 울고불고 매달리던 강씨댁에게 배가 놈은 갖은 폭력을 쓰다가 이제는 마음잡고 열심히 살아 보자고 꾀여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진 인생 밥술이나 얻어먹으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딱히 돌아갈 곳도 없다.
친정에도 이미 유부남인 배가 놈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한 년으로 소문이 나 있을 테고 눈을 부라리고 강씨댁을 찾아다녔을 시댁에는 더더욱 가기가 힘들었으니 철천지원수 같아도 배가 놈밖에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아무 곳도 갈 곳이 없는 천애 고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배가가 이제 서방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이리저리 휘둘리고 맞고 살았어도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살아가겠거니 하고 마음먹으니 편하기까지 하였다.
배가도 나름 특별한 재주는 없어도 힘쓰는 일이라면 자신 있고 몸뚱어리가 재산이여 하면서 막일이라도 열심히 했다.
그나마 그렇게 해서 지금 사는 비탈길 오두막집을 월세로 살다가 전세로 올려 준 지 두 달이 되었다.
강씨댁도 시장통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식당일 남의 집 빨래, 청소 돈 되는 일은 어떤 것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배추를 팔 때 시들고 억센 부분을 떼어낸 시래기를 주어다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어 가며 열심히 살았다.

 정신없이 살아온 몇 해가 흘러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세월이 어찌 흘렀는지 지난 몇 년을 마치 삶을 포기하기 위해서 제 몸을 혹사하는 사람처럼 더 악착같이 살아온 이율배반적인 세월을 살았다.
강씨댁에게도 연년생으로 딸 하나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들 아버지인 배가도 술을 먹고 가끔은 골목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는 주정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잡았는지 그다음 날이면 막일이라도 안 빠지고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보였다.
두 아이의 가장이 되었다는 책임감이랄까?

 그리 넉넉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먹고 사는 것도 자리를 잡아 시장 골목길 한쪽에 좌판을 펴고 건어물 장사를 시작했다.
큰딸은 시장통 좌판 옆에서 이런저런 혼자만의 놀이를 하며 놀고 있고 둘째는 포대기로 둘러업고서 장사를 했다.
힘들고 고된 장사지만 저녁에 집에 가서 돈 세는 맛도 쏠쏠하니 좋았다.
다행히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시장 노점에서 조그마한 자리라도 하나를 임대할 꿈을 키우며 시장 노점 비닐 천막 사이로 별들이 하나둘 보일 때까지 좌판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이름아이콘 김상화
2020-02-05 00:20
회원사진 		보쌈을 하다시피 해서 끌려온 강씨 댁이군요
어찌 보면 가엽고 불쌍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보라고 할까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강씨댁입니다
우리나라 60년대만 해도 여자가 한번 몸을 뺏기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몇십년이 지난 지금은 여권이 신장하여
남성 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멋지게 전계 되어가는 진 혼 곡 (鎭魂曲 ) 매우 재미있네요
잘 배람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소서
이도연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뻑		 2/5 12:55
   
이름아이콘 장선희
2020-02-07 12:48
회원사진 		이도연 작가님 수원성곽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며
계속되는 이야기 빠르게 읽었습니다
배가에게 보쌈 당해 온 강씨댁의 삶이 펼쳐지네요
여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흥미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에 시국이 불안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유익한 소설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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