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선희
ㆍ작성일	2023-06-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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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금지된 사랑-2

단편 소설/ 금지된 사랑-2

나는 이틀 뒤 공장에서 맡은 일의 분량을 일찍 끝내고 여섯 시에 퇴근하게 됐다. 문득 월말에 월급 타면 고향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고 갈 옷을 사야겠다며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시내까지 가려면 오백 미터는 걸어가야 한다. 비포장도로는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의 한 시간 전이라 한산하고 여유롭다. 차도 잘 안 다니는 시간이고 먼지도 덜 나니까 온통 맑아 보이고 거리가 조용하다. 왠지 혼자 걷는 자신이 남들 눈에 쓸쓸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땅바닥만 보면서 걸어갔다.
시내에 거의 도착할 때였다. 비 포장된 도로가 끝나고 선명하게 실선이 그어진 새 포장도로가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승용차들과 공사용 트럭이 가끔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까만 구두를 신은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준영 오빠였다. 나는 그 바람에 놀라서 준영의 품에 안길 뻔했다. 넘어지려는 나에게 얼결에 양팔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순간 둘 다 얼굴이 붉어졌다. 준영은 옥수수를 닮은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난 볼일이 있어서 일찍 나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 몰랐네? 허허허.”
준영은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쌍꺼풀눈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예. 오빠. 오늘은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뭐 좀 사러 나왔어요.”
자연스럽게 오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할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뭘 살 건대? 난 바지 좀 살까 하고 나왔어.”
“저는 주말에 고향을 가야 해서요. 그래서 입고 갈 청바지도 사고 다른 옷도 좀 볼까 하고요.”
“그럼 우리 같이 다니면 되겠다. 그치?”
이렇게 해서 둘은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었다. 시내 중심에 있는 큰 의류매장을 찾아서 들어갔다. 매장에는 예쁘장한 아가씨 점원이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상냥하게 맞이해 주었다. 둘은 또 마주 보며 웃었다.
“청바지 좀 살까 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두 분이 애인이신가 봐요? 이쪽으로 오세요.”
“아예.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하.”
나도 굳이 애인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왠지 듣기 싫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설프지 않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매장을 둘러보았다. 청바지코너는 공용으로 진열되어 있어서 함께 그리로 갔다. 준영은 꼼꼼하게 청바지를 두 개 골라왔다.
“이 청바지 맞을 거 같은데 한번 입어볼래? 아가씨. 이거 두 개 주세요.”
“예에. 여자분 거랑 두 개 사시는 거죠?
“네. 얼마예요?”
“오빠. 난 괜찮아요.”
준영은 자연스럽게 내 옷을 사주게 되었다. 치수도 딱 맞는 사이즈라 마음에 들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지만 진짜 오빠 같은 착각에 빠지고 청바지를 흔쾌히 받아들었다. 나는 상의가 걸려있는 매장 한쪽으로 건너가서 청바지와 같은 색깔로 청 잠바를 골라왔다.
“아. 그걸로 사줄 걸 그랬나? 그럼 진작 얘기하지.”
“아니에요, 오빠 덕분에 한 벌로 입게 되어서 더 좋아요.”
그렇게 의류매장을 나오고 사거리에 있는 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물어가는 길거리엔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젊은이들 모습이 눈에 띄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들은 어디론가 ‘총총’ 사라져 버렸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다방이나 식당에 들어가는 발길로 분주해 보였다. 우리가 들어간 다방은 웅장하게 넓어 보이고 아늑한 자리를 잡았다. 다른 사람들과 먼발치 보이는 한가한 자리에 앉으니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다.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우유를 주문했다. 이제는 처음으로 단둘이 마주 앉았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했다. 나는 따끈한 우유를 마시면서 어느새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오늘 우리 갑자기 친해졌네. 그치?”
“네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오빠랑 다니면서 제 오빠가 되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진짜 오빠와 동생 할까? 난 좋아.”
“정말이에요? 그러면 저도 좋아요. 저는 친오빠가 없어요. 그래서 오빠 소리가 좀 어색하지만 이상하게 오빠한테는 마음이 편해지는 거 같아요.”
“자! 그럼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을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방을 나왔다. 시내 중심지에는 번쩍거리는 불빛들의 간판이 제법 눈에 띄었다. 멀리 가지는 않고 근처 골목에 있는 깔끔한 중식당으로 들어갔다. 준영은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를 정하고 주문했다. 자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이 금방 나왔다. 나는 평소에 그렇게 잘 먹던 자장면을 얼른 먹을 수가 없었다. 얼굴에 자장면이 튀길 것 같은 상상을 하며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장면을 들었다 놨다 하며 깨작거리다가 몇 젓가락도 못 먹었다. 푸짐하게 담겨있는 탕수육만 몇 개 집어먹다가 젓가락을 슬그머니 놓았다. 컵에 있는 물만 홀짝거릴 수밖에 없었다. 준영의 자장면 그릇이 거의 비워질 때쯤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오빠 있잖아요. 제가 할 말이 있는데요… 저의 언니하고 한번 만나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왜. 언니를?”
“네. 저의 오빠가 되어주려면 언니한테 허락을 받아야 돼요.”
“오. 그래야 하는 건가? 하하하. 오빠라는 절차가 있는 줄 몰랐네. 알았어. 그럼 이번 주 금요일 로터리 다방에서 7시 30분 어때?”
“네. 그럴게요. 오빠.”
그렇게 서로 친해질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날 숙소로 돌아오면서 밤하늘에 떠 있는 반달을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빛나는 달을 보며 나의 오빠가 되어주기를 두 손 모아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드디어 금요일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맛있는 저녁을 사겠다며 만날 약속을 했다. 웬일로 언니는 흔쾌히 대답했다. 언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분 좋은 얼굴로 약속한 사거리까지 먼저 나와 있었다.
“네가 웬일로 밥을 다 사준 다냐? 월급 타는 날도 아직 멀었는데.”
“언니 다름이 아니고 오늘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 만나자 했어. X 오빠가 돼준다는 사람이 있는데 언니가 허락 좀 해줘. 정말 좋은 오빠야.”
“얘가. 무슨 얼어 죽을 오빠야! 남자는 다 도둑놈 심보야. 넌 그 말을 믿니?”
“언니! 그 오빠도 성이 밀양 박씨야. 남자가 아니고 오빠라고! 언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서 그 남자가 정말 친오빠처럼 대해 준다니?”
“언니도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히히.”
“알았다. 어떤 놈 팽인지 한번 볼게. 호호호.”
그러고 있을 때 마침 준영 오빠가 왔다. 키가 큰 준영은 언니에게 허리를 굽혀 고개 숙이며 정중한 인사로 예의를 갖추었다. 넓은 길거리에서 마주한 오빠는 정장차림으로 나온 모습이 더 멋지고 세련미가 넘쳤다.
언니는 준영을 보더니 그대로 표정이 좀 밝아지는 듯했다. 웃으며 내 팔을 ‘툭’ 친다. 언니도 싫지 않은 눈치여서 나는 얼른 팔짱을 끼며 웃었다. 셋은 로터리 다방으로 들어가 나란히 앉았다.
“누님. 제가 순애한테 오빠가 되어주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누님이 증인이 되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니는 오빠의 정중한 태도에 웃으며 믿는 눈치였다. 나한테 귓속말로 ‘믿음직하고 안심이 된다.’ 며 기분 좋게 허락해주었다. 나는 간단하게 미리 준비해온 자필 양식 두 장을 내밀었다. 셋은 각자 이름을 쓰고 사인도 했다. 언니 앞에서 한 장씩 나눠 가졌다. 내가 준비해온 두 장의 양식을 보고 둘 다 더 신임이 간다고 좋아했다. 정말 법적인 효력으로 생각하며 확실한 약속의 증표를 갖고 싶어서 준비했다. 그렇게 준영은 오빠가 되고 나는 여동생이 되는 증명과 함께 언니 앞에서 약속했다.
“누님. 순애는 역시 똑똑하네요? 철저한 준비에 오늘 새삼 놀랐어요. 하하하.”
“제 동생이 좀 철저한 데가 있거든요. 호호호.”
“누님. 오늘은 제가 근사한 저녁으로 모실게요. 뭐 좋아하세요?”
“아. 그럼 치킨집 생맥주 어때요?”
준영은 나이가 언니보다 세 살 아래고 누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술을 좋아하는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 치킨집으로 앞장섰다. 우리는 그날 밤 통닭치킨과 생맥주를 시키고 거리낌 없는 남매처럼 호프도 마시며 밤이 깊어지도록 얘기하다가 헤어졌다. 그 뒤 정말 오빠와 동생이 되었다. 둘은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산책을 다니고 주말이면 버스타고 야외 구경도 다니면서 몇 달이 지나갔다.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면서 갈수록 더 가까워졌다. 날짜는 왜 그리 빨리 가는지 모른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늦은 가을로 접어들 때였다. 미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언제 또 오빠를 만나러 가냐며 자꾸 말을 했다. 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다. 미자가 준영을 은근히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빠와 동생 사이가 되었다는 말을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까딱하면 친구 사이까지 멀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준영 오빠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때까지 굳이 얘기하지 말자고 했다.

후편 계속-

박희홍

2023-06-07 16:11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장선희 작가님

단편소설 ’금지된 사랑-2‘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좋은 느낌을 받아 갑니다.

신선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득 찬 6월
시인님의 능력이 더욱 발휘되는
멋진 시간 속에 문운 창대하여
행복한 가운데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장선희	박희홍 작가님 감사드립니다 제 작품을 좋은 느낌으로 보아주시니 힘을 내어 더욱 정진해 볼게요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하시고 협회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6/12 18:10

황영칠

2023-06-08 16:08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장선희 소설가 님
"금지된 사랑 2 "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선 설정이 참 신선하고 느낌이 좋습니다.
남녀 간에 어디까지 가 우정이고 어디까지 가
사랑인지 알다가 도 모를 일입니다.

작가님이 의도하신 것이 그런 사랑과 우정 사이에
갈등 상황을 설정하시고 고민하는 남녀의 사랑을
두고 줄타기 하는 사람들의 관심에 초점을 두신 것 같습니다.

훌륭한 작품 잘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장선희	황영칠 작가님 감사합니다 관심주시는 데에 힘을 얻고 이어가겠습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전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6/12 18:06

소설/ 먼저가신 어머니 날 부르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