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선희
ㆍ작성일	2021-01-22 14:43

ㆍIP: 14.xxx.19

소설/ 새처럼 날고파-9

소설/ 새처럼 날고파-9

점심은 대형 횟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산해진미에 술 마시는 거 까지 배부르게 먹어치우고 취기에 오르는데 까지는 서너 시간 걸렸다. 알코올 도수가 올라간 위스키를 마시는 시간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마시다 남은 위스키를 한 병 싸가지고 자리를 옮기자며 모두 일어섰다.
“오, 예에, 숙아! 진이야! 우리 오늘하루 미치도록 신나게 놀아보자, 오케이? 하하하.”
“오빠! 나도 오케이이, 호호호.”
“술 마셨는데 차는 누가 끌지?”
“야! 술 깨고 새벽에 가면 되는 거야, 뭔 걱정? 하하하.”
“좋아좋아! 고고오.”
다음에 들어간 곳은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술 취한 젊은이들이 미치도록 춤추는 소굴이었다. 그들은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서 여기저기 왁자지껄하며 신나는 음악에 맞춰 미친 듯 발광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게 진짜 맞다고 믿고 싶었다.
고향 집에서는 가끔씩 어머니가 빚은 막걸리를 한 잔씩 맛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맥주나 위스키를 한꺼번에 연달아 마셔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집을 나온 뒤 모든 일들의 새로운 경험은 신기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라며 머릿속에 되뇌고 있는 중이다.
일행은 거대한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주문을 하고 위스키 두 병과 과일 안주가 예술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어 꿈속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찬란한 불빛들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도록 빙빙 돌게 할 때까지 술 마시고 춤을 추었다.
술에 취해서 시간이 몇 시가 됐는지도 분간하지 못할 때쯤 고층에 있는 룸으로 안내되어 일제히 올라갔다. 룸이라기보다 각각 럭셔리한 칸막이에 커튼이 달려있고 광장 같은 큰 거실이었다. 유리같이 투명한 타이루 바닥에 큰 평수로 매트리스가 다섯 개나 깔려있다.
그녀는 한쪽에 자리 잡게 되고 술에 취한 채 그대로 풀썩 누워버렸다. 그 자리에 잠시 정신을 잃고 꿈나라로 향했다. ‘그녀는 꿈속에서 부모님을 만났다. 무조건 잘못했다며 무릎 꿇고 빌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서 정신 차리라며 귀싸대기를 때렸다.’ 너무 놀라는 바람에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무언가 묵직하고 답답한 느낌에 팔을 휘저으며 눈을 떴다. 철이란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남자는 알몸이었고 그녀도 속옷까지 다 벗겨진 상태가 되었다.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 해도 술 취한 정신에 힘도 없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녀는 쓰레기처럼 처참하게 버려진 여자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고 계속 착각을 했다. 난생처음 멋모르고 마신 폭탄 술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벌어지는 속수무책 황당한 일에서 취기가 달아나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희미한 조명 아래 함께 올라왔던 남녀들은 각자 흩어져서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론가 짝을 맞추어 가버린 건지 사정을 알 수가 없다. 지금 눈앞엔 아침부터 옆에 앉았던 철이란 남자뿐이었다.
세련미의 멋져 보이던 그 남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그녀 앞에서 이글거리며 짐승처럼 달려들려고 한다. 술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흥분된 얼굴에 그리고 성나있는 그 남자의 하체 그것이 순결한 처녀성을 범하려고 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올 것이 와버린 이 모든 상황이 두뇌 속 상념이 넘쳐나서 차라리 일을 저질러버리고 싶어졌다. 이왕 여기까지 온 이상 갈 데까지 가보자는 용기도 생겼다. 이미 발가벗겨진 몸뚱이는 속수무책이었고 처녀성을 상실하는 순간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낭떠러지기로 떨어져 보자는 강력한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순간도 다 지나가리라 믿으며 차라리 만신창이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계속 울부짖고 있었다. 이 악물고 눈을 꼭 감은 채 숨도 안 쉬었다. 남자의 폭발적인 욕정은 자신의 운명을 순식간에 정리해 주었다.
그 남자는 처녀의 순결을 빼앗는 일을 치르며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고는 나가떨어졌다. 그 일을 치루고 술 취한 정신에서 깨어나는 주사를 맞은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호랑이 굴속에서 빠져나온 듯 흐느적거리며 옷을 주워들고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욕실로 곧장 들어갔다
그녀는 샤워기를 틀어놓고 거세게 쏟아지는 물줄기 앞에 섰다. 구석구석에 찝찝하고 더러운 이물질을 떼어내려고 씻고 또 씻으며 울부짖었다. 아무리 씻어내도 몸 안에서 벌레가 계속 기어 다니는 느낌에 몸부림을 쳤다. 온 몸은 순식간에 치욕스런 세균에 감염되어버린 것 같아 치가 떨렸다.
이 더러운 실체는 부모님을 저버리고 가출한 여자의 형벌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죄 값으로 회피하고 싶다. 집나온 순진한 어린 여자가 빨리 성인이 되는 거행을 치른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강한 여자가 되기 위해 무언가 큰 결정을 한 것이라고…!
그녀가 술에 취해 있는 굴곡의 시간은 길었다. 술이 깰 때까지 우여곡절 많은 시간을 보낸 새벽까지 첫 버스가 지나다니는 시간이 되었다. 밤새 떠오르던 달빛이 자취를 감출 것 같아 가슴을 졸였다. 김양과 한 팀이었던 남자도 어디선가 나타나고 함께 출발해서 다방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어제는 김 양이랑 박 양이랑 둘이서 어디 놀러 갔다 왔나 봐? 아침에 일어나서 안 보이더라, 그래서 난 빨래하고 나 혼자 실컷 잠만 잤네.”
“아, 언니가 자고 있는 것 같아서 우리 둘이 온종일 밤까지 찜질방 갔다 온 거지요, 언니도 같이 갈 걸 그랬나 봐요? 다음엔 같이 가요, 언니, 호호호.”
“아니, 난 찜질방 싫어.”
“아, 그렇구나아, 호호.”
며칠 전에 들어온 이양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엄청난 일을 치르고 들어온 두 여자의 일을 상상이나 할까… 이양은 이 바닥에서 더 오래됐다고 하니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길 것 같다. 그녀는 근심이 많아졌다. 거의 한 달 치 월급 정도의 팁을 받고 주머니가 두둑해도 마음은 무거웠다.
“박 양 언니, 요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불러도 대답을 안 할 때가 많아, 고향 생각나서 그러는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다고 그래? 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상한 사람 취급하네?”
“언니 뭐 고민 있어?”
“별거 아니야.”
그녀는 속초에 다녀온 뒤 손님이 없을 땐 실성한 사람처럼 구석에 앉아있었다. 긴 한숨을 쉬는 횟수도 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돈 때문에 빼앗긴 순결이었다고 혼자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결심에 유 회장한테 도움을 청하자며 어려운 결심을 했다.
처음 다방에 취직이 되었을 때 차를 끓이고 홀 서빙만 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낯선 남자들한테 창녀처럼 사느니 한 남자를 선택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 회장이란 남자의 진정한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절하게 믿고 싶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느라 입맛도 떨어지고 수척해졌다. 그리고 완전한 결심이 서게 되자 유 회장한테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가서 전화를 했다. 다방 안에 있는 전화는 번호가 찍히는 증거를 남기기 때문이다. 나갈 기회가 생겨도 그만큼 손해배상 청구까지 있어야 한다.
유 회장한테 전화하니 다정한 목소리로 반갑게 받아준다. 흔쾌히 대답해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소리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제 고민하던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풀렸다. 유 회장은 운영하는 그쪽식당에 가는 걸로 하고 내일이라도 다방 주인인 사장한테 합의를 보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한 달 반 정도 있는 동안 김양과 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갈 때는 서로 인사 나눌 기회도 없었다. 다시 인사하러 갈 곳도 아니고 존재도 없이 사라져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갖고 갈 짐이라고는 다방에 처음 왔을 때 들고 온 핸드백에 종이가방 하나뿐이었다.
드디어 호랑이 굴 속 같은 다방에서 떠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방에는 유회장이 일 잘하는 아가씨를 대신 소개했다고 들었다. 그곳을 떠나는 날 유 회장이 이끄는 대로 하면서 주인인 사장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도 못 한 채 끝이 났다.
그렇게 유 회장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안에 들어서니 음식 메뉴 차림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볼 것도 없이 갈비탕과 육개장의 두 가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넓은 홀에 탁자들이 정갈하게 놓여있고 실내로 들어가면 여러개의 아담한 방들이 쭉 이어져 있다.

-계속-

한영택

2021-01-27 22:51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장선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1편에서 9편까지 이어오는 ‘소설/ 새처럼 날고파’ 흥미로운 글입니다.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 ‘코로나19’ 팬데믹에 지구촌 곳곳이 고통을 받습니다. 평범한 일상마저 앗아 가버린 ‘코로나19’로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쳐있지요 백신과 치료제 등 진행되고 있어 평범한 일상 찾기까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입니다.

추위의 끝을 지나 따뜻한 봄을 생각하며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되찾을 날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바라는 마음이지요. 건강하시고 사랑과 행복이 함께하십시오.
작가님의 멋진 글에 다녀갑니다.
건필하세요.


장선희	한영택 작가님 안녕하신지요~ 새해가 되었는데 아직도 시국이 어둡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언제나 씩씩하려고 노력하지요 문인은 그나마 글이라도 쓰며 위안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저 건강만은 곡 지키시어 환하게 웃으며 밝은 날이 오리라 믿겠습니다 제 글을 감상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좋은 날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1/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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