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상훈
ㆍ작성일	2019-03-21 23:54

ㆍIP: 220.xxx.49

아버지라는 이름

김상훈

언젠가 그런 사내가 내 곁에 있었던 것 같다.

있었던 것 같다고 하는 것은 기억의 부재가 아니라 어릴 때 내가 보았던 그적의 아버지와 현재 아버지라는 이름의 나와 혼재된, 내 기억 속의 아버지였다. 이른바 사회적으로 성공한, 튼튼한 종마의 샘플을 모아놓고 너도 이렇게 돼야 한다는 강요 따위는 없었어도 동시에 자기 핏줄의 광대 기질마저 철저하게 짓밟았던 사내였다.

몸이 커지고 생각도 커 가는 동안 시간의 낙엽이 담장을 높이 쌓아주는 것은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그 사내에 대한 증오심과 세상이 정한 기존의 모든 텍스트로부터 자유로워지기였다. 그것은 방종이 아니라 나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서서히 분해돼 갔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지 몰랐다.

어느 날로부터 그 사내가 땅 속에 묻히고도 한 삶이 지나 한 삶이 자기만의 견고한 뿌리까지 내렸다. 그 삶이 예까지 오는 동안 기억의 창고에 습기가 차올라 망각의 나루터까지 당도한 것일까. 먼 산 아지랑이 일 듯 그것도 아주 가끔씩 그적의 사내가 문득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묘하게 덤덤했다. 어느 한 시절에 보았던 자막 없는 무성영화처럼 그저 그랬다.

문제는 가끔씩 떠오르는 그 기억의 심도였다.

예컨대, 아이들의 관심사에 내 관심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적이 더러 있곤 했는데 그것은 아이들의 고집에 꺾이는 것이 아니라 내 관심 분야가 아니라는 것의 분명한 내 감정선이었다. 혹? 그 사내도 나한테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나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무참하게 짓밟거나 방해 따위는 놓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그 사내처럼 날계란 몇 개에 참기름을 혼합해 먹었다. 어릴 때 그 광경을 보고 진저리를 쳤음에도 그렇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먹지 않던 사과를 어느 날부터 줄기차게 먹었다. 무심코 들여다본 거울 속에 그 사내랑 꼭 닮은 남자가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만만했던 세상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그 답답함과 까닭 모를 분노에 휩싸여 결국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무르팍 사이로 코를 쿡 처박고 엉엉 울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어느 땐가 그 사내가 나처럼 울던 모습이 무성영화처럼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부분적으로는 사소한 기억이지만, 마치 평행이론이나 데자뷔 같은 그 기억의 심도는 매우 깊었다.

- 벌목당한 기억 사이로 -

김경렬

2019-03-23 05:47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사부곡사이사이 또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십니다.
DNA가 어디가겠습니까.
추억 일면을 펼치셨다면 더 좋았을것을요,
독자에게는 추상적이어서 ~~


김상훈	추억요? ㅎㅎㅎ 담을 만한 추억도 없지만 일기를 쓰고 싶지 않아서요. 수필집에 몇 편 실려 있지만 영감께 좋지 않은 감정만 드러낼 것 같아 좀 자제했습니다. 맨 먼저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3/24 02:47

장춘희

2019-03-23 11:56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재주가 뛰어난 편에 비해
몹시 이성적이고 모진 성격이어서 어린시절의
어머니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형제들은
나이들은 지금가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나빠 우리들의 공동의 적으로, 맛깔나는
술안주입니다.
그런데 절대 닮기를 거부했던사람, 어머니의 재주를 골고루
받은 우리형제들은 나이가 든 지금도 사회에 고루쓰이고
있습니다.
얼굴까지 닮아가서 깜짝놀랍니다.

그제 ,우리형제들은 요양원가서 구십세가 넘은 어머니앞에서
재롱을 피웠습니다.
특히 맏딸인 제게 여러가지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초라한 어머니.
평생 서슬푸를 것 같던 어머니의 초라한
모양새에 눈물이났습니다.

나도 내 아들에게 잘못한 것이 많아서
가끔씩 가슴이 쿵하고 무너져내릴 때가 있습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나
이반 두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서나
자식을 향한 무작정의 애정에도,
그냥 자식의 의견을 존중해서 저 하는대로 두는 거나
다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뭐가 옳은 건지 후회하고 반성하고 그러면서
흐르는 것이겠지요.


김상훈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서의 급진적 사고의 바자로프는 아니지만 투르게네프가 이야기 한 햄릿형(形)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일종의 발악 같은 것이었습니다. 통기타를 13번이나 부셔버린 아버지...... 뭐가 그토록 못 마땅했는지 아직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는군요. 후회란, 천국이 눈앞에 있어도 지옥 같이 느껴지는 것이라는 토마스 모어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정작 저는 제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정말 피눈물나게 떠올리게 한 사람은 어머니도 아닌 저의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3/24 02:55

김상화

2019-03-24 06:46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꽃샘추위를 심하게 하네요
오늘도 매우 춥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추위는 애교로 보아야겠지요
김상훈 위원장님
부자지간에는 거의 대등하게 갈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의 사랑은 90%가 어머니한테 간다고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부자간에는 사랑이 오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를 모해 빚어지는
현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아버지께서 자식에게 바라는 지향이
틀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부자지간의 갈등에 대해 아버지인 저도 생각하게 하는 아침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김상훈	동양의 예의, 특히 한국 정서로는 저는 백 번 불효자입니다. 제가 바랬던 아버지는 뭐 자상하다느니 굳건하다느니 따위가 아니라 어쩌면 제가 지닌 감성 만큼이라도 이해해 주고 감싸주는 정도의 수준이랄까요. 아무튼 이상하게 제 아버지는 운동, 음악, 미술, 문학이라면 아주 진저릴 쳤습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저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훼방이었지요. 그러니 가슴속에 남아있을 그 무엇도 없습니다. 아무튼 그랬던 것 같습니다.	3/25 14:19

이정연

2019-03-26 00:23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피를 나눈 가족은
이성 보다 본능과 감정이 늘 앞선다고 합니다.
예전의 우리 부모님은 못 다 이룬 당신의 꿈을 아들 혹은 딸이
대신 이뤄주길. 그래서 보란듯이 남들앞에서 어깨를 세워 보는 날을
꿈꾸셨지 싶습니다.
힘든 세월 지나 오셨지만 지금은 누구 보다 힘차게 꿈을 향해
비상(飛上)하시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건강하세요.
이정연 올림,


김상훈	요즘 많이 바쁜 시기라면서도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곱으로 반겨요. 사실 시간이란 본인이 만들기 나름인데 그게 참 쉽지 않지요. 일의 경중에 따라 혹은 마음의 경중에 따라 먼저 가볼 곳이 있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바쁘다고 끼니 건너지 마시고요. 환절기 감기에 조심하세요. 고마워요.	3/26 13:49

환영합니다

노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