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상훈
ㆍ작성일	2019-01-16 02:18

ㆍIP: 220.xxx.49

겨울

김상훈

풍만한 가슴으로 한 세상 주유하다 납작해진 가슴으로 한 생을 마감하는 여자의 일생처럼 온다. 연골이 마르고 허리가 꺾인 할머니처럼 온다. 겨울이 겨울을 다독이러 온다.

영양기 빠진 햇살에 저녁노을 붉지 않다. 서산마루 길게 누운 산 그림자 유독 검다. 찬 서리에 이완된 햇빛이 항암의 그것처럼 성성해진 나무 숲을 중풍 든 깃털로 힘겹게 일으켜 세운다. 묵념처럼 단단한 침묵을 비틀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산짐승 소리가 모든 계절의 골 깊은 추락을 알린다. 겨울 숲이 벗지 못하는 잿빛 어둠이 날짐승들의 옹색한 옆구리를 타고 어디에도 깃들 곳이 없어 허공을 부유한다. 생선뼈처럼 살 발린 나목의 가지들, 얼었던 도랑물 빗장 풀리는 날 너의 슬픔은 거기서 끝난다, 겨울이여.

언제나 마르지 않는 풀기에 겨워 삶을 주체하지 못했던 푸른 잎사귀, 극과 극이 싫어 여름을 피해 왔건만 중도를 걸었던 가을이 재빨리 환치기당하는 통에 겨울 몸은 온통 불온한 씨앗들만 품고 있다. 휴지처럼 구겨진 흰 산에 그나마 눈꽃마저 없다면 허무가 어디 따로 있으랴. 눈꽃은 죽지 않고 거듭 명멸하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비록 외투 한 장 걸친 겨울이지만 콘크리트 도시에도 한적한 산골짝에도 눈꽃 같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겨울은 단지 꽝꽝 얼어 죽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 능력을 키우는 변곡점이다.

겨울이 겨울을 다 말할 수는 없을 터다. 그런 연유로 아픔을 묻지 않는다. 한 때 융성했던 푸른빛의 비망록이야 언제든지 반추할 수 있지만 할머니가 된 까닭을 너무나 잘 알기에 추억 따위에 결코 얽매이지 않는다. 보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것,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더 우선일 따름이다. 발가벗은 몸, 비록 외투 하나 걸치고 바람처럼 온 산야를 떠돌지만 겨울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신호를 받고 은밀하게 내통을 한다. 우리가 모르는 가녀린 수액의 통과의례다.

크고 작은 봉우리 사이로 도랑물 수만 생 곡조 울리고 물 묻은 바람 산 빛에 눈 닦으며 새소리에 귀를 세워 물소리에 오장을 씻노라. 저 무생의 설법을 들려줌은 본시 생멸이 없음을 일깨워 모든 것이 찰나 생 찰나 멸이라 이르니 삶의 근을 어디에서 찾든 무생의 본만 깨우친다면 살고 죽는 것이 무에 두려우랴.

겨울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등 굽은 할머니처럼 사라진다.

- 벌목 당한 기억 사이로 -

김상화

2019-01-16 22:21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아기지기하게 묘사한 글 마치
어머니 품속 같은 글입니다
겨울도 싫은 모양입니다
따사로움과 추위가 번갈아 가더니
오늘은 추위 기가 살아났습니다
이상훈 위원장님 잘 쉬어 갑니다
늘 평안하소서


김상훈	헐, 이틀이나 지나서 답장을 드립니다. 입이 열 개라도...... 유구무언입니다. ㅎㅎ 우리 수필방 여전히 썰렁하군요. 무식하게 그냥 부지런히 오고 가야 하는데 곧 그럴 나날들이 오리라 봅니다. 김상화 작가님 첫 발걸음으로 와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1/18 23:16

정찬열

2019-01-19 10:33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김상훈 수필 분과 위원장님
그간 잘계시지요
짧고 간결하게 집필하신 "겨울" 깨달음으로 배람합니다.
이곳 광주에는 기상 관측이래 현재까지 눈이 제로점인
겨울이라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해가거듭할수록 겨울 답지 않는 날씨는
三寒四溫이 아니라 三寒四黴라는 말까지 나오며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날 입니다.
부디 편안한 주말 되시고 내일 교류회에 뵙겠습니다.


김상훈	오늘 새삼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조금 불편하신 듯해서 걱정은 했는데 잘 내려가셨으리라 봅니다. 앞으로 이사님의 많은 응원 바라겠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백그라운드라고 생각하겠습니다. ㅎㅎ, 부담 팍팍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사님,	1/21 02:40

김경렬

2019-01-20 08:26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수필분과위원장님! 축하드립니다.
겨울 배독하며 색다른 필력을 느낍니다.
늘 일취 월장 하시기 바랍니다.


김상훈	어서오십시오. 김경렬 작가님. 에구, 축하랄게 무에 있나요. 잔여 기간이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요. 많은 지도 편달 바라며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녀가심 감사합니다.	1/21 02:42

박목철

2019-01-22 19:10

한동안 수필 서재를 찾지 못해서
작가님께서 수필분과위원장이 되신 것도 몰랐습니다.
신년교례회에서 뵙기는 했지만, 반갑습니다.
백낙은 위원장님께서도 열심히 하셨듯 작가님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다시 한번 환영의 박수를 보냅니다.


김상훈	시원시원한 어투와 이해 전달 명확한 의사 전달 듣기에 참 좋았습니다. 진작에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저의 불찰도 있습니다. 자주 뵙기로 하구요. 앞서 백위원장님의 노고를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어느 일면 무겁기도 합니다만 많이 도와주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24 02:44

장선희

2019-01-25 09:52

김상훈 수필분과 위원장님~ 작가님의 글을 보면
인생의 굴곡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네요
인간과 자연은 너무도 많이 닮았지요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면서 자연을 그리워 합니다
하나씩 이루어가시는 작가님이 부럽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셔서 하시고자 하는 목표
계속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김상훈	글을 자선적 의미로만 쓰기엔 어딘가 한계를 느끼겠지요. 어차피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허구는 반드시 들어가야 할 숙명이니 그냥 글로써 보고 읽고 느끼고 쓰곤 합니다.^^ 한 때 소동파에게 빠졌던 이유입니다. 삶과 자연의 그 유사점을 잘 간파하던 시인이었기에.... 다녀가심 감사합니다.	1/26 02:40

장춘희

2019-01-30 20:22

선생 님의 겨울에 오늘로
세번째 다녀갑니다.
그냥 스처보기에는 글이
너무 깊어서 여러변 빠져봅니다.
앞으로 또 몇번은 더 다녀가고
싶은 글입니다.
자주뵙겠습니다.


김상훈	아, 그러셨군요. 사실 산문시나 다름없는 글이었지요. 책을 내면서 몇 작품을 그리 해봤습니다. 작가님 열독에 감사드려요. 저도 자주 뵙겠습니다.	1/31 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