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09-08 00:33

ㆍIP: 124.xxx.224

까치밥

까치밥

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봄철이면 먹을 것이 넉넉지 못하였던 우리네 시골 아이들은 감꽃을 주워 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감꽃이 필 때 쯤이면 동네 길모퉁이로 나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별로 이쁘지 않은 모습에 더하여 또 맛도 별로 없고 떫기만 한 노리끼리한 감꽃의 인기는 썩 높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었던 동네 아이들이 감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감꽃을 주워 먹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주워 먹다가 싫증이 났는지 미리 준비하여간 실로 꿰어서 집으로 가지고 와 형제들끼리 오순도순 다정하게 둘러 앉아 나누어 먹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납니다.
또 여자 아이들은 긴 실에 꿰어 목거리를 만들어 목에 걸고 쑥스러운 웃음을 짓던 모습도 떠 오릅니다.

그토록 풍요로운 시간도 다 지나가고 여름을 지나 늦가을이 되면 감나무는 온통 붉은 빛으로 물을 들입니다.
열정이 넘치는 감잎이 몸에 걸친 붉은 옷을 벗어 던지고 맨몸이 되어갈 때쯤이면 한 해 동안 버려둔 농심이 갑자기 관심으로 변질되어 넘쳐흐르면서 분주해 집니다.
감나무는 누구나 접붙이기를 끝마친 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감잎이 불타고 감 알갱이가 사람 얼굴 보기가 부끄러운 듯 홍조를 띠게 되면 수확을 하겠다고 덤벼 듭니다.
그 때는 감농사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저 스스로 서 있다가 저 혼자서 늙어가면서 익고 그러면 주인이 따는 게 감농사의 전부였으니까요.
매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게 일상이 된지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그런데 그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딸 때면 다 따지 않고 몇 개는 꼭 나무에 달린 채 그냥 두고 따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겠어요?
철모르던 시절 어린 나는 어른들에게 그 이유를 묻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그럴싸한 이유를 듣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평생을 보내다시피 한 뒤로 거의 잊다 시피 할 정도로 무관심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까짓 하찮은 감나무 따위가 나의 인생 프로그램에 차지할 여유가 있을 리 만무이니까요.
이런 연유로 인하여 여러 어른들에게서 들은 갖가지 그럴싸한 이유들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의 기억에서도 휴면 계좌가 되어 버렸습니다.
챙기면 돈이요 안 챙기면 휴지 조각인 그 휴면계좌의 금액들은 내가 잊고 살았으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그야말로 빈 잔의 추억쯤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요즈음에 와서야 그 이유를 알고 나서는 비로소 우리 민족의 그 넉넉한 모습에 “아! 이렇게 깊은 뜻이...” 하면서 홀딱 반해 버린 소감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까치밥이란 겨울철에 알맞은 먹을거리가 없는 까치들에 대한 인간의 자비심을 내 보인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었습니다.
“이 풍성한 수확을 나 혼자만 차지하려 하니 영 미안하구만... 너도 함께 먹자꾸나.”
이런 생각에서였을 것입니다.

작다면 아주 작은 마음씨이지요.
그렇지만 마음씨가 크다고 그렇게 큰마음을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학생이 가방이 크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또 그게 크다고 해서 그리 크게 베풀고 사는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그 조그마한 정성이 하늘을 나는 그 많고도 많은 날짐승들에게 무슨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그 갸륵한 마음씨만은 높이 사 주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차를 타고 달려서 사과 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사과 밭에도 까치밥이 달린 것이었습니다.
사과밭에는 감나무에 달린 그것만큼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과 값이 감 값보다는 비싸기 때문일까?”
“에이, 그게 아니지. 사과 농장과 감 농장의 주인이 다를 텐데 단순 비교하면 안 되지.”
“아니야,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혼자서 쓸 데 없는 돈 계산 하느라고 잔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립니다.
“흥,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그려.”
아예 나 자신을 넋이라도 나가버린 이상한 사람 쯤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듣자 하니 우리 선조들은 콩이나 팥을 심을 때에도 한 구멍에 한 개씩 심지 않고 세 개씩을 심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벌레가 먹고 또 하나는 썩어서 땅이 먹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먹는다는 뜻이었답니다.
오늘날도 콩을 심는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나는 믿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나누는 마음으로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쩌면 이런 아름다운 마음씨들은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도 곳곳에서 향기롭지 않는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은 우리 내면에 함축된 우리 본성을 찾는 지혜가 조금 어두운 사람이 아직도 도처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 일조일석에 모두가 다 한 가지 따뜻한 마음으로 통일이 되겠습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이제 머지않아 수확의 계절 그 풍요로운 들판이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입니다. 올 해 가을 추수도 넉넉한 전통을 본받아 실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를 빌어 봅니다.

백낙은

2016-09-08 10:55

이석희 작가님.
까치밥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후손들에게도 전해 졌으면 합니다.
만주에 간 우리 동포들도 三田이라고 하여
1전은 날아 다니는 새들을 위함이고 2전은 벌레들을 위함이며
3전은 사람을 위해 재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농사를 조금 합니다만 농약을 퍼 부어야 합니다.
자꾸만 땅이 오염되어 걱정입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소서.


이석희	백낙은 작가님! 반갑습니다. 참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一田二田三田이라고요. 아주 멋집니다. 좋은 공부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9/8 15:26

김종근

2016-09-09 08:45

이석희 작가님.
까치밥 이야기 잘 배독합니다.
저희 집에도 백년 가까이된 감나무가 열댓 그루가 있습니다.
상주에서 곶감하시는 분들이 따갔는데 작년에 가뭄이 심하여
씨알이 작게 달렸습니다. 다익었는데도 따가지 않게 되어
작년엔 인터넷에 무료로 따가라고 홍보하여도 서너나무만 따가고
그냥 통째로 까치밥이 되었습니다. 한나무에 보통 열접 이상 나오는데
올해는 감이 많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따주지 않아서
올해도 그 많은 감을 어떻해야 하나 걱정입니다.팔지를 못해서
우리 시인님들께 무료 감따가기 행사를 해볼까요
안 따주면 감나무가 죽습니다.수만개의 까치밥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이석희	김종근 작가님! 반갑습니다. 사람이 많이 사는 도회지야 예외이지만 시골로 가면 갈수록 노는 땅과 노는 집이 많답니다. 먹을 거리도 인스턴트에 밀려서 건강식품은 도리어 찬밥 신세가 다 되어 갑니다. 더운날 시원한 보리차가 얼마나 좋아요. 그래도 손자녀석은 그것은 싫고 하얀물을 달래요. 이게 작은 일이라고 치부해도 되는 걸까요. 참 아쉬움이 많은 세상입니다. 좋은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9/9 1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