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09-0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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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가슴 아픈 모습

참으로 가슴 아픈 모습

내가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을 돌아다보며 이 글을 씁니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숲을 통한 인성 교육 시범학교였었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재량 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숲과 대화를 나누는 교육의 하나로 나무에게 편지를 썼었습니다.
각자에게 나누어 준 알맞은 규격의 종이에 색 싸인 펜으로 예쁘게 글을 써서 곱게 단장을 한 후 코팅을 해서 나무에 걸었습니다.
이 공부를 하는 날이면 아이들의 마음은 빵 반죽이 시간이 지나면 부풀어 오르듯 한 없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들뜬 마음도 점차 가라앉기 마련이지만 한 동안 매일 아침이면 자매의 결연을 한 나무를 찾아가 아침 인사를 나누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이 과정 때문에 등굣길을 서둘렀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재미로 아침 학교 가는 길은 더 즐거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행복한 길이었던 덧 같았습니다.
그 해를 마지막으로 정든 이 학교를 떠나 중학교에 진학할 6학년 아이들도 역시 어린이임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들도 내 나무를 찾아가 나무들과 이야기라도 하듯 웃고 떠들며 재잘거리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뒤 나는 정년이 되어서 학교를 떠났고 이제는 객이 되어서 그 학교에 아침 운동을 하러 가곤 합니다.
내 뒤에 꼬리처럼 붙어 있는 1년 전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내가 굳이 찾지 않더라도 그냥 거기에 그대로 그 때의 그 모습으로 나를 반겨 줍니다.
그렇게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나의 머리 꼭대기에는 하얀 눈꽃이 한 겨울 한라산 상봉을 연상할 만큼 짙어졌습니다.
늙는 모습은 늙은 사람의 눈으로는 꺼내 보이기 싫은 빈 지갑처럼 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항상 모지를 즐겨 쓰고 나들이를 합니다.
그 날도 나는 어김없이 모자를 쓰고 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동안 운동 코스를 바꾸어서 남한강 둑으로 다녔으나 무슨 꾀병이나 난 듯 학교에 가 보고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이 든 학교였기에 유독 나의 눈에만 그런 모습들이 들어오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정말 그냥 보아 넘기기가 어려운 일들이 보입니다.
나는 그저 무심히 걷지만 눈은 어느새 낯익은 나무들로 향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그 인연의 끈이라는 게 질기기는 질긴 모양입니다.
이제는 잊을 법도 하건만 무의식적이라고 말할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을 꼭 나무라기만 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인간다운 정의 표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운동장 가에 주차장이 있고 그 주차장 경계선에 그 나무들이 줄지어 있으니 나의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 그 자체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는 나무들을 쭈욱 훑어봅니다.
오랜 시일이 흘렀기 때문에 그 날의 편지는 별로 눈에 Em이지를 않지만 나무들은 훨씬 더 자라서 짙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의 밑동도 장사의 팔뚝처럼 우람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학교에 운동을 하러 온 어른들이 그 사랑하는 나무 밑동을 발로 차는 운동을 합니다.
얼마나 오래도록 시달림을 받았는지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거의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습니다.
껍데기에 상처가 난 나무, 껍질이 아예 벗겨진 나무, 오래 전에 난 상처 자국이 아물지 않고 나무로부터 흘러나온 수액으로 범벅이 되어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도 눈에 뜨입니다.
나무의 상처 자국에는 무슨 먹을 것이라도 있는지 개미 떼가 몰려들어 야단법석에 잔치를 벌이기라도 하는 모양새 입니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마음도 아픕니다.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물이 사람의 마음을 알듯이 숲도 안다고 합니다.
하나의 병에 물을 담은 후 “물아, 물아! 예쁘다 고맙다.” 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긍정의 말을 들려주고, 다른 하나의 병에 담은 물에게는 “물아, 물아! 에이 미워. 미워.” 하고 같은 기간 동안 부정의 말을 들려주고 나서 관찰하면 긍정의 말을 들은 물 분자는 예쁜 모습을 보이지만 부정의 말을 들은 물은 무질서하게 부서진 분자의 모습을 보인다 합니다.
산에서 자라는 나무도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합니다.
산의 주인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거지고 입구에 나타나면 나무들이 몸을 사린다고 합니다.
태 란 습 화 사생만이 일신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하나임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너무 뽐내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 다 함께 잘 살아가도록 마음을 사용하여야 만물의 영장다운 가치를 발하는 것입니다.
숲에서 전해오는 아름다운 향기, 어둠을 뚫고 더 일찍 활동을 시작한 새들의 노래 소리, 아침을 일깨우는 수탉들의 합창 소리가 어울려 맑고 향기로운 아침 기운이 느껴진 상쾌한 아침입니다.
하지만 이 모습들을 보는 순간 상쾌한 기분을 저 멀리 도망치게 하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입맛이 마치 소태를 씹은 듯합니다.
이제 더는 그러한 모습들을 어디에서도 보지 말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백낙은 2016-09-05 10:09	이석희 작가님. 제가 작가님의 등단작에 심사평을 썼기 때문에 작가님의 글을 많이 읽었습니다. 오래도록 교사를 하셔서 보는 눈이 예리하십니다. 나무에 감상문을 적어 매달았다는 말씀 듣고 서정적인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한답시고 나무를 발로 차는 행동을 저도 자주 본답니다. 자연을 더불어 살아야 하는 친구로 생각하는 삶이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고 우리 수필 서재를 밝혀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석희 2016-09-05 10:44	백낙은 작가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앞으로 좋은 말씀 많이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미숙하니까 많은 조언 부탁합니다.

김종근 2016-09-05 13:15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모습 잘 읽어 보았습니다. 동물이던 식물이던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나름대로의 생명의 위협에 대해서는 아는가 봅니다. 소나 개들은 죽음앞에서 눈물을 흘리는것을 익히 들어 알고있습니다만 식물들은 생각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자연을 훼손 하지않도록 생각해 봅니다. 어제 벌초를 하고 왔는데 마음이 아프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고운글 많이 올려 주세요.

이석희 2016-09-05 15:26	김종근 작가님! 감사합니다. 이제 막 님의 글 배독하고 오는 길입니다. 벌초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그래도 힘든 모습 보이지 않고 잘 하셨다 하니 참 으로 큰 효손이십니다. 조상님께 잘 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답니다. ㅎㅎㅎ 좋은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주응규

2016-09-06 08:32

이석희 작가님 좋은 글 배독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기온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좋은 계절에 두루 평안을 기원합니다


이석희	주응규 작가님! 일교차가 큽니다. 자칫하면 감기 걸릴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9/6 08:52

정찬열

2016-09-06 18:47

재직중에 정이든 학교 그리고 어린제자들에게
심어준 정신적심리등이 베여 있는 나무들
모처럼 그때의 사색으로 그곳을 찾으셨을때
목격한 그모습 눈에 보듯 선합니다.
나무껍질이 벗겨질 정도면 당연히 삼가하고
보살펴야할 사람들이 어쩌면 잔인 하다고
표현 해야 할까요? 공감하는
"참으로 가슴 아픈 모습" 가슴으로 배독하고 갑니다.
시원해진 9월에 가을의 초입에 늘 건안 하세요


이석희	정찬열 작가님!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운 글 주시니 감사합니다. 재직시에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던 추억이 산산조각이 난 걸 볼 때는 참으로 허탈하였었답니다. 일기가 고르지 못합니다. 건강하세요.	9/6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