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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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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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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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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5-08-14 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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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뿌리에 타는 노을. 1부)
파뿌리에 타는 노을
김 경 렬
( 1 부)
모 금융 회사에 오너로 근무하는 민 형은 나 와 속을 터놓고 지내는 막역한 사이다. 그는 부인과 딸 둘에 아들 하나 삼남매의 가장으로 재산도 넉넉한 알부자다. 시골이라 정보도 빨라 헐값의 땅과 싸게나온 집은 모조리 손에 넣어 부동산 부자이기도 하다. 평소 자기 돈으로 밥값이나 술값을 내는 법이 없어 지인들에게는 자린고비라고 소문이 나있다. 자신의 잇속에는 계산이 기막히게 빠른 이 친구가 어느 날 술 한잔하자는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생긴 것을 직감하였다. 민 형은 술잔을 거푸 들이키더니 잔뜩 궁금해 있는 나에게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에게 5년 전부터 연모하는 여인이 있다네, 그 여인은 내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데 나 혼자 이렇게 끙끙 대고 있단 말 일세”
민 형의 말은 나이 육십을 바라보며 자식들 가르치고 시집 장가보내 살도록 해주고 나니까 갑자기 쓸쓸하고 허전하다고 하였다. 다방이나 요리 집에 가면 돈을 보고 여자들이 착착 달라붙지만 그런 것들은 추호도 마음에 없고 밤마다 꿈을 꿀 정도로 그 여인만 대단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예쁜 여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사연인즉 자기애들은 어릴 때부터 돌대가리라서 돈을 쳐 발라 대학까지 해결하였다.(당시는 돈만 있으면 보결 로 대학 진학까지 무난하던 때였다)
멘토로 모시는 분 중에 학식과 인품이 훌륭한 선배님이 있어 자주 찾아갔다. 그댁에 영특한 딸을 보면서 항상 자기 자녀들과 비교가 되어 부러웠다고 한다. 그랬던 그 딸이 어느새 원숙한 부인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은행에서 우연히 만난 그 순간 온몸의 피가 멈춘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민형은 때때로 떠오르는 그 순간을 되새기며 점점 주체 할 수 없는 마음으로 치닫게 되었다고 한다. 한 달에 한두 번 서울 본점에 출장을 가는 날이면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마음이 설레고 흥분이 된다고 한다. 이번에 가면 경복궁이나 비원 뜰을 거닐며 산책을 하리라 벼르고 전화를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잘 응해 주지를 않아 애가 탄다고 했다. 어쩌다 차라도 함께마시며 얼굴 한번 보고오면 한 달을 지탱할 수 있는 활력소가 되었다.못 보고 내려오면 허탈감에 빠져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큰일이 나도 단단히 난 이 친구말에 문제의 그여인이 궁금해지기 시작 했다.
“예쁘고 멋진 여인인가?”
“아닐세, 그러나 말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내 눈에는 그 여인만한 사람이 도무지 없단 말이네.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사람 이 라네”
자린고비 민 형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병이 나도 크게 났다는 증거였다. 보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면 주체 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미칠것 같다고 하였다. 듣고 있던 나는 답답하여 한마디 해주었다.
“내가 민 형 이라면 돈이라도 펑펑 써서 환심을 사보겠네. 자네는 그 여인에게 뭘 해줘 보았나?”
“언젠가 명동 백화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나 몰래 밥값을 계산했잖은가? 미안하기에 내가 차를 사기로 했지, 찻집으로 가는 도중 보석상이 보이기에 들어갔다네. 그러나 종업원이 나가서 청해도 따라 들어오질 않아 그냥 나왔지 뭔가”
“에끼 못난 사람! 그럴 땐 선결재하고 헤어질때 그 증서를 주면 될 것을 촌놈이라 별수 없구먼 그래, 잘 만날 수 도 없다면서 그 좋은 기회를...”
민 형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민형의 체면을 생각해서 들어 주기만 했다. 그렇게 좋다면서 머리를 써야지 미련한 것도 아니고 그 많은 돈을 가지고도 방법을 모르는 건지, 돈에 장사가 없다는데 대단한 여인 인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들어 부쩍 궁금한 마음이 증폭되었다. 민 형은 내마음은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했다.
“여보게 그 여인을 보면 덧 날까봐서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네. 사람이 반듯하고 정신수준이 높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네 .외모도 반듯하지만 내면이 더 훌륭한, 기품있는 여인 이라네”
민 형은 가슴이 답답해서 하소연이라도 해야 살 것 같아 술이라도 하자고 하였다. 그날은 이 정도로 헤어 졌다.
몇 달이 지난 뒤 만난 민 형은 수척해진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수년전에 건강 문제로 금연을 한 것을 아는데 ‘왠일인가’ 물었다. 민 형은 한숨을 푹 내 쉬며 길게 담배를 뿜어냈다. 그 동안에 필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술을 한잔씩 기울이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석 달 전에 만나 차 한 잔을 하였네, 그녀는 티 테이블도 큰탁자에 마주 앉길 원했고 식사를 할 때면 큰 식탁에 앉곤 하였네, 나중에야 그 의문이 풀렸다네. 두 달 전에는 야외로 나가 점심을 먹은 후 호수가 숲길을 걸으며 손이라도 잡아 보고 싶었는데 큰길로 걸어 가지 않겠나? 분명 나를 경계 하는 것 같았네. 서운했지만 내색도 못하고 조금 걸었네, 갑자기 빈 택시를 세우고 나를 타라고 하기에 같이 타는 줄 알았는데 기사에게 택시비를 주며 ‘잘 모시라’ 하고는 나브시 인사를 하지 않는가? 택시 기사는 남의 속도 모르고 예의 바른 따님이라 칭찬을 하더군.”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고 했다.민 형은 기분이 착 찹 해보였다. 딱하기 이를 때 없다. 나는 민 형에게 언제까지 이렇게 ‘애만 태울 것’이냐, 차라리 ‘마음을 접으면 않되겠느냐’고 물었다. 민 형은 대답대신 이야기를 계속 하였다.
“며칠 전에 전화를 했더니 아들집 근처에 있는 릉에서 만나자고 하기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네, 그녀는 릉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손수건을 펴고 앉더니, 어렵게 말문을 열었네”
만나기 시작무렵 여인의 부친은 간경화로 오랜 투병중이였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려간 딸에게 ‘민 행장이 너를 자식처럼 귀애하며 늘 네 안부를 물으니, 애비처럼 생각하고 당신이 없더라도 가끔은 식사 대접이라도 하라’ 고 하였다. 민 형은 그녀에게, 얼굴만 보여주는 것으로 족하니 돈을 쓰지 말라고 당부 했었기에, 그 말이 서운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여인은 부친이 작고 한 후 허전한 마음에 아버지처럼 받들고 의지하고 싶었는데 여인으로 대하려 하므로 이제 만나는 것을 접어야겠다고 말한 것이다. 혼인 후 처음 뵐 때는 어릴 때부터 귀애해 주셨던 기억이 떠올라 반갑고 감사하는 마음 이었다. 지금은 마음이 부담스럽고 편치가 않다고 하니, 민 형의 가슴속에 바위덩이 하나가 쿵! 하고 내려앉았던 것이다. 단교 선언이었다.
민 형은 그때부터 심장이 멎는 충격을 받아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하였다. 민 형은 기관지와 십이지장에 문제가 있어서 흡연은 독약 이었다. 나는 민 형이 안타까웠다. 어쩌다가 그리 어려운 상대를 연모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5년 동안 잘도 버텨왔구나 싶었다. 그 후 민 형은 더욱 연모의 불길을 견딜 수 없어 그때마다 불현듯 올라가,마지막 할얘기가 있다고 한번만 만나자고 했지만, 여인은 한번이 두번된다며 단호 하게 거절을 하였다. 급기야 민 형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몸 져 누어버렸다. 처음에는 감기 몸살인줄 알았으나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집에는 심약한 부인과 살림을 해주는 아주머니뿐 이었다. 장남이 내려와 집안을 정리하고 서울 큰 병원으로 입원을 시켰다. 나는 한 달 후 기차를 타고 민 형이 있는 서울로 문병 차 찾아갔다. 민 형은 일주일전 에 그녀가 찾아와 빨리 추스려서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다면서 흐믓한 표정을 지으며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다.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는 그에게 힘을 주기위한 배려였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은 환자의 상태가 점점 기우러가며 회복의 기미가 없다고 걱정이 자심했다. 주치의는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게 하고 음식도 가리지 말고 환자가 원하는 것을 드시게 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말기 암이었다. 가망이 없으니 최선을 다 하라는 마지막 배려였다. 일어서려는데 단정한 모습에 품위가 있어 보이는 한 젊은 부인이 쇼핑빽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민 형 부부가 반색하는 모습을 보아 가까운 친척인 것 같다. 부인에게 심부름을 시켜 밖으로 내 보낸 민 형은 나에게 눈짓으로 그 여인임 을 암시 했다. 나는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좀 더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도록 부인과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며 한 시간여 시간을 끌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여인은 손수 토종꿀에 홍삼가루와 율무가루를 섞어서 암에 좋다는 건강식을 만들어 왔다. 더운물에 타서 자주 드시면 좋다고 하였다. 민 형의 부인도 그녀의 부모님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문병을 온다고 칭찬이 늘어졌다. 그 여인은 땀을 흘리면서 민 형의 팔다리 맛사지를 해 준다. 민 형은 즐거운 기분으로 잠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몸져누운 환자였지만 민 형은 그녀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눈빛이 달라지며 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덕분에, 주치의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로, 고통을 잘 견뎌내고 있었다. 곡기를 끊었던 민 형은 여인이 가져온 건강식을 끈임 없이 타 달래서 힘들게 한모금씩 넘기며 기운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주치의는 의학으론 믿을 수 없는 생존 상태와 환자의 정신력을 기적이라 하였다.
노년에도 그토록 지고지순한 민 형의 그 애절한 사랑이 내 가슴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가슴이 아팠지만 한편 부럽기도 하였다. 끝까지 그녀의 마음을 존중해주며 애절한 연모의 끈을 놓지 못하고 해바라기 하던 민 형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 할 진한 감동이었다.
민 형의 장례와 삼 오제가 끝나자 아들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집안에 상청을 차렸다. 며칠 후 그녀는 하얀 국화꽃을 한 아름 안고 상청 앞에 섰다. 영정에 큰절을 올리는 그녀의 눈에서는 만감으로 스치는 파노라마에, 주루륵 회한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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