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5-07-28 00:43

ㆍIP: 61.xxx.81

비둘기 같은 원앙
비둘기 같은 원앙

김 경 렬

라일락 향기 그윽한 화창한 봄날이다. 상담실 앞 환자들의 휴식 공간에는 몇 일째 점심 무렵이면 곱사등의 부부가 비둘기처럼 나란히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아내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황달이 심한 것으로 보아 간이나 신장에 이상이 온 모양이다. 이 부부에게 차와 간식을 내다 주도록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 부부는 퇴원을 한다며 인사차 찾아왔다. 사람들은 자기들을 이상한 눈으로 보며 피하는데 선생님들은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간식까지 챙겨주셔서 그 고마움을 안고 그냥갈수가 없었다 고한다. 아내는 여전히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으며 상태가 나빠지면 또 입원을 하게 된다면서, 그때까지 편안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여일 개미 채 바퀴 돌듯 바쁘게 지내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름도 지나고 초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 하더니 라디오에서는 태풍이 북상 중이라고 종일 떠들어댔다. 원앙 같은 곱사등이 부부가 바람에 떠밀리듯 덜컹 문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온몸이 지저분하게 누추한꼴로 아내를 떠안고 서 있었다. 아침나절 거처하던 판자 집이 날아가고 집기와 옷가지도 젖어서 아내를 입원 시키려고 왔다는 것이다. 병실이 없어 오도가도 못 한다고 도와 달라고 했다. 간호부로 올라가 어려운 상황을 밝히고 응급실로 우선 입원 조치를 했다. 다인 병실에 베드가 나면 응급으로 배정하기로 하였다.

환자는 당뇨합병증으로 신장염을 앓고 있었으며 진행이 악화되어 하루 한번씩 신장투석을 해야 하는 말기신부전 상태였다. 영세민 수당으로 생활하며 사람의 눈을 피해 새벽으로 신문을 돌리고, 우유 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오다가 아내의 병이 깊어져서 일손을 놓고 병수발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 의료보호 대상자라서 무료 혜택을 받는 환자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니 우선은 치료에 최선을 다하도록 위로해 주었다. 병실 배정을 받은 후 담요로 몸을 감싸고 벤치에 나와 해바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다정한 눈길로 서로 보듬으며 닭살 돋는 부부애를 보면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하였지만 알싸한 마음으로 가슴이 저며 왔다. 아내는 남편의 고생이 안쓰럽다고 두 손을 꼬옥 잡아준다. 남편은 아픈데도 예쁘게 웃어주어 고맙다고 볼을 비벼준다. 또 남편은 아파도 살아있어 주기만 하면 행복하다고 하니까 아내는 내 남편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육신이 멀쩡하고 살만한 부부들도 이기심 때문에 왈강 달강 사네 못 사네 시끄러운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가진 것 없이 희망이 꺼져가는 길목에서도 애틋하고 그윽한 눈길로 미소를 주고받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집안일로 이틀간 시골을 다녀온 사이 아내는 남편 곁을 떠나갔다. 새벽에 영안실로 옮겨졌다기에 내려 가보니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영안실을 지키던 남편이 눈물을 머금으며 꽃 영정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선금을 받는다하여 그냥 있는 중 이라고 하였다. 영안실 관리소장은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시고 흔쾌히 꽃 영정과 꽃 제대를 기증해 주셨다. 3일장을 치룬 뒤 남편은 쓰러진 집 더미를 정리 한 뒤 가방하나를 들고 찾아 왔다. 잠자고 먹을 수 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잠시 기다리게 한 뒤 이리 저리 전화를 걸어 어려운 사정을 알렸다.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아 실망이 자심 하던 차, 이냐시오수도회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청소와 잔심부름을 할 수 있다면 용돈도 조금씩 주겠다고 하셨다. 본인도 좋아했지만 초조하던 그 순간에 내 청을 들어주신 신부님이 바로 구세주였다. 이냐시오 수도회는 일손이 필요한 시설이 많지만 제 몸 하나 추 수리기도 힘든 사람을 허락 한 것을 잘 알기에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시켜 보냈다.

비록 몸은 불구였지만 마음이 어질고 착했던 부부는 부모 형제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떠난다는 쪽지를 남기고 몰래 집을 나왔다. 연락을 끊은 체 어렵게 살았지만 오직 사랑하나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오로지 둘만의 기막힌 사랑을 키워냈던 것이다. 남편은 영안실을 꽃으로 장식해 주고는,
“여보 기쁘지? 당신이 좋아하던 꽃을 이렇게 선물 할 수 있어서 나도 좋아”
하며 영정을 쓰다듬던 그 모습을 잊을 수 가 없었다. 비둘기 같은 원앙의 애절한 사랑을 지켜보며, 나는 이 부부의 모습에서 사랑의 위대함을 보았고 사랑의 기적을 보았다.

백낙은 2015-07-28 09:08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글이군요. 내 가슴이 찡해 옵니다. 나는 목회 40여년 동안 과연 작가님 같은 연민어린 상담자 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원앙새 같은 장애인 부부의 사랑도 위대하지만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이끌어 준 작가님의 사랑이 더 감동적입니다. 사랑은 인물, 신체 조건, 물질의 부요, 명예 등등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가 봅니다. 우리나라 이혼 율이 세계 최고라 하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드립니다. 늘 건필하소서. 샬롬을 빕니다.

김경렬

2015-07-28 22:17

목사님! 역시 일등으로 달려 오셨습니다.
위원장님이 계셔서 수필방의 등불이 항상 밝습니다.
그래서 힘이나고 열심해 집니다.
일속에서 만난 분들과 일로서의 만남인셈입니다.
그리 칭찬 받을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자리에 있으면 그렇게 해 나가야 하는 것 일 뿐 입니다.
항상 과분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백낙은	김경렬 작가님. 오늘은 서운한 말씀 드리려 들렸습니다. 제 서재에 주신 댓글 조금씩 지우셨더군요. 두고 두고 보면 좋은데 서운할라카네요.. 저는 작가님을 허물없이 대하려 하는데 작가님은 좀 거리를 두시는것 같아서요. 이런 저의 댓글도 그냥 한 번 웃으시고 넘겨 주세요. 다만 대화를 좀더 하고 싶을 뿐이랍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자주 뵙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건안 향필하소서.	8/2 08:54

김경렬	그런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오지랍이 넓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멀리서나마 목사님의 혜량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 이지만 일로써 만난 목사님이 몇분 계셨는데요, 훌륭하신 품성과 헌신적이고 자애로우셔서 느낌이 참 좋앗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만난 목사님은 더 훌륭하셔서 내심 기뻤습니다. 저는 문학회 일원으로 훌륭하신 분들을 만나게 되어 인생 후반기의 정서가 윤택해지는것 같아서 마음도 부자 랍니다. 목사님 두루두루 감사합니다.	8/2 13:23

언니를 그리며

호적이 없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