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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06-07 15:35
ㆍIP: 203.xxx.5
슈킹 (128회)

                  - 영원한 동반자 - 

 

 12월 29일 (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수혜의 고개 숙인 모습이 커피숍 창가에 비춰졌다. 그녀


맞은편에 현우가 앉아 있었다. 은행 사고로 그녀의 대출이 힘들 것 같다고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가만 보니 그녀는 며칠 사이 꽤나 야위어 보였다.


 “정말 안 되는 건가요?”


 그녀는 허탈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의 절실한 바램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그녀가 어깨를 움츠리며 다시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비탄에


빠진 모습이었다. 두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사슴같이 선한 눈동자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그녀


앞으로 내놓았다.


 “수혜 씨가 대출이 안 되어 제가 대신 받았어요. 금액은 당신이 신청한 액수와


같을 거예요. 당신의 사정이 워낙 급하니 일단 이 돈을 쓰세요.“


 그가 동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바로 개구쟁이의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매달 이자를 잊으시면 차압 들어갈 겁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그는 현금을 수표로 이미 바꾸어 왔던 것이다.


 갑작스런 현우의 행동에 그녀는 내심 적잖게 놀랐다. 처음에는 그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곧 그의


진심을 알고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마치 잔잔한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수혜 곁으로 간 그가 손수건을 그녀의 손에 가만히 쥐어 주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고마움의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한동안 깊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던 현우가 속삭이는 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수혜 씨, 혹시 피아노 교습소에 운전기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제가 1종


면허증도 있고 아직까지 무사고 경력입니다. 기사를 원하시면 제가 차량


지입해서 들어갈 용의가 있거든요. 이제 우리는 영원한 동업자 아닙니까?


하하하... 그리고 수혜 씨가 바쁘시면 제가 대신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갈


수도 있고 남동생과 놀아줄 수도 있거든요.“


 그는 시선을 수혜에게 준 채 그녀의 대답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의 볼이 홍조를 띠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숍을 나왔을 때 그들은 다정한 모습이었다. 실로 놀라운 변화였다.


 “저기 잠깐만 앉았다 가실래요?”


 그녀의 집에 거의 다다르자 그가 미끄럼틀 옆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가까운


곳에 놀이터가 있었다.


 “수혜 씨, 혹시 저에게 부담을 느끼세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지한 그의 목소리였다.


 “아니에요. 실장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저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어요.


엄마도 아프고 남동생도 평생 돌봐야 하고...“


 그 순간 그녀의 입술 위로 그가 손가락을 붙여 말을 막았다.


 “우리 좋으면 조건 없이 만나기로 해요. 난 당신이 좋아요. 착하고 순수하고


매력이 있어요.“


 현우의 말에 그녀가 풀썩 웃었다.


 “수혜 씨, 내 말에 대한 대답은 안 해도 돼요. 난 내 감정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묘한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쥐면서 말했다.


 “당신은 아름답고 좋은 여자예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당신 눈을 보고 다


읽었으니까요.“


 갑자기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수혜가 얼굴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고


가로등에 반사된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바로 10센티쯤 밑에 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리고는 가볍게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뗐다.


그리고는 그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그녀의 상반신이 기대어 왔고 그의


입술이 숙여졌다. 그는 가쁜 숨을 고르며 그녀의 어깨너머로 우거진 나무들을


보았다.


 고혹적인 미소를 남기고 총총히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크리스마스 날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그날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아직 자기에게 커피 한 잔을 사야 하는 빚이 남아 있으니 오늘 그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처음에 망설이던 그녀가 잠깐 생각에 잠기고는 좋다고


승낙하였다.


 그들은 차가 없었으므로 전철을 타고 야외의 어느 역에 내려서 한적한 카페에


들어갔다. 거의 강제적인 그의 스케줄임에도 그녀는 불만의 내색 없이 따라와


주었다. 이 세 번째 만남에서 그에게 친밀감과 편한함을 느꼈는지 거기서


그녀는 자신의 형편을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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