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02-02 17:41

ㆍIP: 124.xxx.149

슈킹 (118회)

바지에게 1억을 주고 돈을 인출한 여자들 6백만 원과 잔고 수수료와 사무실

경비들 합하여 최대 5천만 원으로 잡았다. 그러면 이제까지 총 작업비가

1억 5천만 원이 투입되었다. 나머지 3억 5천만 원에서 지금 자기에게 3천만

원만 준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작업에 동참하고 동거 동락한 자신은 결국 바지의 3분의 1도 못 받은

것이 아닌가! 순간 억울하다는 생각을 떠나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식의

계산이라면 40억이 성공했더라도 현우에게는 2억4천만이 분배된다. 어이없고

기가 막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 현우의 배당금은 물론 동인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순간 그가 무의적으로 동인을 째려보았다. 동인이 미안한지

양심에 가책이 가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한편으로

그들은 현우가 자신의 예감이 적중한 데 대해 자못 흐믓해하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담배에 불을 붙인 현우가 억지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연기를 깊게

한 모금 빨고서 쓴 미소와 함께 내뱉었다.

“고마워, 잘 쓸게. 나도 이번 작업이 잘 되었으면 배당이 괜찮았을 텐데 아쉽군.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먼저 일어날게. 동수야, 연락해.“

그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총알같이 튕겨 차에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는 듯 매몰차게 불어왔다. 어깨가 축 늘어진 현우의

뒷모습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렇게 걸었다. 비로소 차가

안 보이자 그의 긴장되었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는 손등으로 이마에 번진 땀을 닦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온 것이다.

어느 정도 걷다가 그들과 지금껏 통화했던 대포 폰의 배터리를 빼 각기 다른

장소에 버렸다. 그들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을 때의 시간은 은행 영업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4시 30분이었다. 지금 그들의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부글부글

끊던 거품이 가라앉듯이 모든 망각 속에 묻힐 것이다.

“기사님, 신사역으로 가주세요.”

택시는 강남역에서 출발하여 가까운 목적지로 갔다. 조금 전 강남역 근처 4개의

은행에서 동수가 5억을 찾은 것이다.

신사역 안에 설치된 사물보관함에서 모자와 바바리, 청바지, 운동화를 꺼낸 그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꺼낸 옷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로 바꿔 신었다.

“지하철 명동역이요.”

택시는 남산터널을 관통하자 바로 역으로 이어져 퇴근 시간임에도 금방 도착했다.

마스크와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바바리 깃을 올리자 그의 얼굴이 완전히

가려졌다. 만약 CCTV에 찍힌다 하더라도 외모를 특정 짓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사물보관함을 향해서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CCTV가 없는 곳을 찾느라 지금의 복장으로 이 일대의 지하철역을 전부

살펴보았었다. 수십 개의 다른 CCTV를 의식하여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변장이었다. 연말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많은 인파가 그에게는 좋을 수도 있다. 한적한 거리보다 복잡한 장면이 그를

CCTV로 구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 속에 묻혀 보관함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보관함은 50개 정도 되었다. 이 10개의 34억이 있을 것이다.

그는 7번이라고 적힌 보관함에 섰다. 바짝 긴장이 되어 눈가의 주름이 가늘게

떨렸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안주머니에서 7번의 열쇠를 꺼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열쇠를 꽂아 돌렸다. 그 보관함에는 서로 다른 번호인 10개의

열쇠가 있었다.

그 중 15번의 열쇠를 꺼내 같은 번호의 보관함을 열자 가방 3개가 놓여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 가방의 지퍼를 열어 젖혔다.

첫 번째 가방에는 천만 원 다발로 11개가 있었다. 1억 천만 원이었다.

두 번째 가방에도 같은 금액이, 마지막에 가방에는 1억 2천만 원이 들어

있었다. 모두 3억 4천만 원이었다.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잠깐 숨을 들이킨 그가 그렇게 9개의 보관함을

차례대로 열어 나갔다. 마찬가지로 한 개의 보관함마다 3억 4천만 원이 있었다.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으나 누구 하나 그에게 관심을 두는 행인은 없었다. 얼른

이 자리를 뜰 요랑에 한 손에 두개의 가방을 들었지만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만원짜리 신권 한 장의 무게가 0.9g이니 구권이므로 1g으로 잡아도

1억 천만 원은 11kg라는 계산이 나온다. 양 손에 45kg 정도의 무거운 무게를

들고 이동해야 한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100여 미터를 걷자 어느 모텔 벽에

세워 두었던 승합차가 눈에 보였다. 차까지 직선거리로 왔으면 더 빨리 올 수도

있었으나 CCTV를 피해 골목길로 돌아서 오느라 그만큼 지체하였던 것이다.

그 승합차를 본 순간 처음에 멋모르고 그들을 따라 시디를 교환하러 명동

근처의 사무실에 왔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거래신청서를 안 갖고 오는 바람에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려다 어느 주차장에 숨겨져 있던 동인이의 승용차가

떠올랐다. 동인도 지금의 자기처럼 낯선 사내에게 차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왔던 것이다.

"결과는 다르지만 동인이와 난 공통점이 많단 말이야.“

그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8번을 왕복한 그는 숨을 헐떡였다. 찬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으나 어느새 속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런 후 뒷문을 열고 가방을 차곡차곡 넣었다. 겨울이라 이미 어둠이 내려 주위는

깜깜해진 지 오래였다.

역시 4억 5천만 원 정도의 금액을 보통 사람으로 들기에는 무리라 생각했다.

자신도 몇 번을 중도에서 쉬었는지 모른다. 그는 여자들에게 한 번에

1억 2천만 원씩 감당하게 한 것이 백 번 잘했다고 자화자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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